사랑의 교회에 불지르려 했다는 ‘용팔이’   김용남씨 “나라도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이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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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아 나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나빴을지 몰라도 내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최근 자신이 다니는 ‘사랑의 교회’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용남씨(63·사진)는 사건의 발단을 이렇게 얘기했다.

김씨는 ‘정치깡패 용팔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1987년 벌어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인 일명 ‘용팔이 사건’의 주범이다. 신앙인으로 변신해 성실한 삶을 사는 것으로 알려졌던 그는 지난해 6월30일 교회 내부 문제에 불만을 품고 서울 서초동 사랑의 교회 본관에서 경유 10ℓ를 들고 “나 하나 죽어 문제가 해결된다면 죽겠다. 가까이 오지 말라”며 소동을 벌였다가 현주건조물 방화예비 혐의로 얼마 전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그는 “불을 지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올 봄부터 개척교회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김씨는 지난 2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이 소란을 피운 이유에 대해 “교회 내부에서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당회가 해결에 나서지 않아 나라도 나서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주먹은 쓸 수 없다. 그래서 그냥 겁만 주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랑의교회 본관 4층 당회 회의실에서 불을 지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용남씨가 25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사랑의 교회는 지난해 교회 신축과정에서의 땅 고가 매입 의혹과 오정현 담임목사에 대한 자격 논란 등으로 내홍을 겪었다. 사랑의 교회 설립자인 옥환흠 목사(사망)의 아들인 옥성호 집사와 원로 장로들을 중심으로 오 목사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오 목사를 옹호하는 쪽도 맞대응에 나섰다. 김씨는 오 목사를 옹호하는 쪽이다.

김씨는 “어렵게 시작한 새 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 내가 직접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조폭 출신이라 어쩔수 없다’고 하는 것을 알지만 내 나름으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교회에 불을 지르려 했다는 것은 극구 부인했다. 김씨는 “내가 직접 몸에 기름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말리는 사람들과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넘어지면서 경유가 몸에 쏟아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경찰 조사에서도 나왔지만 나는 당시 라이터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주변 사람들이 ‘라이터를 빼앗았다’, ‘불꽃이 터졌다’ 등의 말을 했지만 그런 말들은 거짓말”이라며 “그 사건 이후 나도 반대파 청년 신자들에게 폭행을 당해 그들을 고발 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폭력조직 전주파 두목 출신인 그가 폭력 세계를 떠난 지는 10년이 넘었다. 후배에게 배신을 당해 교도소에 다녀온 후 지인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간 것이 계기가 됐다. 2002년부터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사랑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술과 담배를 끊은지 12년이 넘는다”고 했다.

김씨는 “사랑의 교회 설립자인 옥환흠 목사가 날 많이 사랑해주셨다”며 “옥 목사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맡고 있는 교통봉사도 10년 넘게 한 주도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조폭 세계로 돌아오라는 유혹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주변을 정리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정의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에 그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신앙생활을 하다 다시 폭력조직으로 돌아간 김태촌, 조양은씨에 대해서도 “그 사람들도 한다고 결심하면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옆에서 확실히 붙잡아 주는 사람이 없어 결국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교회의 힘과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라며 “처음에는 교회 나오면 사람들이 환영하는 척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색안경을 끼고 ‘얼마나 가나 보자’고 한다”며 “그런 점이 힘들었지만 오기를 가지고 더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랑의 교회 사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99%의 교인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며 “1%도 안되는 사람들이 교회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내려놓지 못해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범을 보일 사람들이 신자들을 부추겨 내분을 일삼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교회가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처음부터 교회가 이런 줄 알았으면 다니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씨는 요즘 청소년들이나 교도소를 찾아가 전도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에게 ‘담배 피우지 마라’고 하면 대부분 ‘상관하지 말라’며 대든다. 그때마다 ‘너희들이 가진 휴대폰으로 인터넷에서 용팔이를 검색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바로 담배를 끈다”고 했다.

김씨는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수십만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 폭력세계에서 살았지만 그 세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김씨는 지난 13일 순복음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내가 이래뵈도 조폭 출신 석사”라며 웃었다. 조폭과는 왠지 어울려보이지 않지만 후배와 함께 꽃집을 운영하는 ‘꽃집 아저씨’이기도 하다. 그는 “다음 달에 목사 시험에 합격하면 오는 5월부터는 개척교회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사랑의 교회 관계자는 26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교회도 김용남 집사의 돌출 행동에 당황했다”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김 집사가 12년 동안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셨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