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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esus114.org/ 

(한국 기독교 이단 상담소)


신옥주 목사(영적군사훈련원) 성경해석 문제많다(1)

이단 신천지보다도 못한 방식··· ‘원숭이가 백두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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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주 목사는 예장(합동서울신학교중앙총회신학대학원대학교 등을 나왔다저서로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가 있고 현재 경기도 용인 은혜로교회 담임목사영적군사훈련원장으로 활동 중이다이단문제 전문지 <현대종교> 2011년 11월호에 바울사관아카데미 신옥주 목사의 비유풀이라는 제목으로 문제제기된 바 있다신 목사의 성경해석적 문제를 지적한 이인규 대표(평신도이단대책협회)의 글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신 목사의 서적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라는 책을 중심으로 비평함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세이연 연구위원 이인규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 카페(cafe.naver.com/anyquestion) 대표시삽

 
   
▲ 신옥주 목사가 쓴 책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본문은 누가 보더라도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꽹과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울리는 소리”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반복하지만 사랑이 없는 방언은 “아무 의미 없는 소리”일 뿐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신옥주 목사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꽹과리는 제금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면 제금에 대한 원문을 보자 제금은 ‘찰랄(딸랑 울리다), 덜컥 소리내다 / 부딪히다’ 에서 유래되어 ‘덜컥소리, 날개소리, 귀뚜라미, 쨍그렁 울리는 징, 메뚜기, 그늘짐, 창, 소리내며 나는 메뚜기’라는 의미이다. '울리는 꽹과리'라는 말은 바로 제금이 내는 소리이며 이 소리는 곧 위의 의미들이다.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울리는 꽹과리는 제금을 뜻하고, 제금은 메뚜기와 관련된 말이 된다. ···메뚜기는 무엇을 뜻하는지 그 해답을 찾아보자.

메뚜기는 곧 너의 방백을 지칭하는 말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지도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은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제금)와 같은 말이며, 제금은 메뚜기를 지칭하는 뜻으로 메뚜기에 대해서 더 넓고 깊게 들어가 보면, 메뚜기는 바로 방백(메뚜기-지도자)를 뜻하는 말로 이들이 하는 말은 돈과 관련한 말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길이를 찾아 들어가서 캐낸 보화이다”(<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신옥주, 242-243 쪽).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것은 바나나. ···높은 것은 백두산··· 이라는 어린이들의 말잇기가 있습니다. 신옥주 목사의 성경 해석은 원숭이가 백두산이라는 코미디와도 같은 해석입니다.

신 목사는 꽹과리는 제금, 제금은 메뚜기, 메뚜기는 방백, 방백은 지도자, 지도자는 “돈”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또 소리나는 구리는 “돈과 관련된 설교”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꽹과리”가 “지도자의 돈과 관련된 설교”입니까?
“제금”은 구약에 나오는 단어이고, 유대인들의 타악기의 일종입니다, 꽹과리가 제금이 되고, 제금에 메뚜기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여, 제금이 메뚜기가 되며, 메뚜기가 나훔 성경구절에서 방백에 비유된 적이 있다고 하여 갑자기 방백이 되며, 방백이 지도자가 되어서, 결국은 꽹과리가 “목사들이 돈 받고 하는 설교”가 되어 버립니다.

즉 고린도전서에서 사도바울이 방언의 은사남용을 비판하며 사랑을 강조하는 구절이 현재 기독교의 목사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목사가 하는 성경해석인지요? 저는 신천지도 이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신 목사의 성경 해석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 14:27~28, 개역성경).

본문은 방언과 같은 신령한 은사적인 기도를 행할 때 교회에서 무질서를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다불과’는 ‘많아야’(at the most)라는 뜻으로, 즉 방언을 할 때는 2명 혹은 많아야 3명 정도가 순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신 목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성경에서 두 사람과 세 사람이라는 단어를 다른 성경구절에서 찾아서 그 다른 구절의 의미를 적용시키는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성경에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언급되는 구절을 찾아서 그 구절의 의미와 혼합을 시키는 방식입니다.

그 과정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말이 안돼서 생략하고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 목사의 결론적인 해석이 무엇일까요? 신 목사는 ‘두 사람’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뜻하며, ‘세 사람’은 삼위일체의 비밀을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불과’(많아야)는 비유와 상징을 뜻하는데, 많은 사람과 많은 일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또 차서(순서)는 부분, 몫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또한 통역하는 방법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두 사람, 즉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다불과(많은 사람과 주의하신 많은 일 등), 차서(부분적으로, 또는 몫/조각), 세 사람(요일5:8,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방언으로 통역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같은 책, 208쪽).

신 목사는 지금 방언 통역의 질서와 관련된 말씀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많은 사람과 주의하신 많은 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방언으로 통역하라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번역 성경만 봐도 이 말씀의 참 의미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개역개정판).
“만일 누가 방언을 하려면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대로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통역하십시오”(현대인의 성경).
성경에서 모든 단어가 항상 동일한 의미로 비유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이 모두 비유라고 하는 이런 해석은 요즘 신천지라고 하는 이단집단이 사용하는 해석입니다. 신 목사의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라는 책은 이러한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을 일일이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것 같으며 이러한 유치한 해석은 일일이 비판할 가치조차 없다고 봅니다. 즉 이러한 해석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성경을 짜맞출 수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이만희 씨를 이 시대의 재림주로 만들고,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만들고 정명석에게 여성이 순결을 바치는 게 믿음이라는 방식으로도 변조, 왜곡이 가능합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의 신앙적인 표준이 되어야 하며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석해야만 합니다. 신 목사는 자신이 해석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일이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예수의 일이라고 하면서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별하고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보이는 문자적인 기록은 예수의 일이요, 문자 속에 담겨져 있는 말의 뜻은 그리스도의 일로 보면 가장 정확하게 보는 방법으로 실수하지 않고 정경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해석법이라고 생각한다”(같은 책, 10쪽).
이런 세미나를 일부 목회자들이 돈을 주고 듣는다는 것이 한심합니다. 필자가 신 목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그는 저에게 손해배상 1,000만원을 하라고 제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법원은 이미 기독교 공공의 유익을 위하여 이단성의 교리를 비판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여러번 내렸습니다.

신 목사의 동영상을 들으면 자신이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하면 아마 쫓겨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책은 중요한 것을 30% 정도를 걸러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세미나에서 첫날과 둘째날에는 문제가 있는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간첩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정통신학과 다른 문제가 있는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고의적으로 정체를 숨긴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할까요?

우리는 왜 신 목사가 신천지와 같은 성경해석을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저는 신 목사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이미 짐작이 갑니다. 이곳에 빠진 교인들의 증상은 신천지와 거의 유사합니다. 성경해석 외에도 영적군사훈련원의 중요한 교리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방교회(위트니스 리)와 유사한 양태론적 삼위일체와 기록론의 문제점
- 예수와 그리스도는 다르다는 주장  
-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
- 정통신학의 부정
-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와 전혀 관계가 없는 성경구절에 대한 해석을 인위적으로 비유풀이하여 짜맞추기

2) 신천지식의 임의적인 비유풀이
- 자의적이며 알레고리적인 풍유 해석
- 성경이 모두 방언이며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는 주장
- 동일한 단어를 다른 성경에서 찾는 비유풀이, 짝풀이

(중요 교리) 지방교회와 유사한 부류들의 공통점은 예수와 그리스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신옥주 목사에게도 그러한 내용이 계속 반복되며 강조되고 있는데, 예수는 육체적,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보는 개념입니다, 즉 예수는 사람(육체)이고 그리스도는 양태론적인 하나님(영)이라는 주장으로서, 예수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들어온 것으로 해석합니다, 신 목사는 성경은 모두 방언으로 되어있어서 이 비밀을 깨달아야만 하며, 성경을 문자적(육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예수이고, 성경의 비밀을 깨닫는 해석(영적)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을 신학대에서 하면 곧 쫓겨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책은 중요한 것은 걸러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적군사훈련원(신옥주 목사)의 엉터리 성경해석(2)십자가 좌우편 강도는 ‘목회자’···

신천지와 다를 바 없는 비유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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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이인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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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왕상 7:21).

A는 B가 되고, B는 C가 되며, C는 D이므로 A는 D라고 하는 신옥주 목사의 비유풀이 성경해석을 살펴보자. 신옥주 목사는 솔로몬 성전 우편의 기둥과 좌편의 기둥을 비유풀이에 맞춘다. 그의 설교는 모두 신천지식 비유풀이이며, 성경에서 동일한 단어 찾기를 하는 것이다

그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을 오른손은 예수이고 왼손은 그리스도라고 해석하여 예수와 그리스도가 다르다는 이상한 해석을 한다. 그 말씀을 심지어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 우편과 좌편에 맞추는 방식으로 시도한다. 위 성경구절 역시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계시록 2장 3장에 보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기둥에 뭐 된다? 기둥이 될 것이요 자~ 그 어느 누구에게 준거야? 어디 교회에? 빌라델비아교회에, 빌라델비아교회는 즉 6일 동안 또 잘 따라오는거야, 몽학선생으로, 문자 그대로 믿고 따라 오고 7일 째 당연히 어디 들어가? 그리스도안에 들어가는 거야.”(신옥주 목사, 2010년 7월 11일 <반열반차>).

6일 동안은 문자(예수)대로 믿다가 7일에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좌편과 우편의 비유를 다시 겉옷과 속옷의 비유로 짜맞추기를 시도한다.

“자, 이제 좌편 얘기 합니다. 좌편은 뭐 였다? 보아스고 또 지금은 겉옷 이야기하잖아, 그러면 열심으로 뭘 삼고? 예수, 예수 믿는 열심 때문에 열심이 나를 뭐했다고? 삼켰다쟎아~ 자, 삼켰다는 말은요, 죄가 어디 들어왔다? 내속에 들어 왔다는 거여, 계명으로 말미암아 이해됩니까? 로마서에서 했어? 안했어? 로마서에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가 내 속에 들어 왔다.

이것은 열심으로 말미암아 뭐? 나를 열심히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뭐했다? 삼켰다. 이해됩니까? 이거 이걸 깨달은 바울이 말하고 또 하고 고민 하고 또 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을 다간 후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도무지 나를 모른다 할까 내가 두렵고 떨린다 두렵고 떨림으로 주의 일 한다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열심은 겉옷 이야기야 그럼 이 열심만 있으면 자기를 뭐해?

도로 삼켜, 자 이걸 어떻게 삼키느냐? 이제 이 열심을 또 나가야되니까 갈 수 없어 겉 옷 이야기해야 되니까, 예수 예수만 하고 있으면 그렇게 하고 문자적인 기록만 갖고 계속 목회를 하면 성도들을 뭔 옷만 입혀? 겉옷만 입혀서 뭘 만들어 놨어? 거지로 만들어놔~ 그리고 수치스럽게 만들어놔~ 안 만들어 놔? 아까 오전에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했죠? 그렇다면 지금 교계가 왜 사람들한테 바깥에 사람들한테 지탄을 받고 욕먹고 우리가 우리끼리라도 목사가 목사를 봐도 장로가 장로를 봐도 도무지 예수쟁이가 왜 이러냐고 할 정도로 정말 챙피할 정도로 십자가를 목에 달고 못 다닐 정도로 지금 왜 이리 됐냐?

뭔 옷만 입혀서? 겉옷 만, 당연한 거였어, 왜요? 육의 파종이라서! 사람의 방법으로 파종해서 그래서 사람을 심었단 말야! 예수, 예수, 예수만 말하고 있으면 벌레에 해당되는 거요. ···목사가 겉옷만 계속 입히고 가면 성도들을 천 명 데리고 있으면 그 천명의 피 값을 누구에게 찾는다? 그 자기를 삼켜 안 삼켜? 그렇지 열심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그 목사는 얼마나 열심히 목회를 잘 했겠냐고? ···이는 그 겉옷 겉옷은 무슨 편이라? 좌편! 좌편에 기둥은 이름이 뭐였어? 보아스! 이해됩니까? 겉옷은 좌편이요. 좌편 기둥은 보아스여!”

죄편과 우편을 비유풀이를 하다가 이제는 겉옷과 속옷의 비유풀이를 하는데, 겉옷은 예수이고 속옷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기존교회에서 목사들은 성도들에게 “예수, 예수, 예수만 강조하다가 겉옷만 입힌다”는 것이다.
신옥주 목사는 이제 다니엘서3:21-22를 인용하여 속옷과 겉옷에 대한 해석을 한다.

“이제 겉옷 시작하는 거여, 아 참 좌편은? 좌편은 뭐다? 겉옷! 그러면 우편은 무슨 옷? 속옷 이야기여! 속옷 이야기는 아직 안했쟎아! 우편 하면서도 자~ 그담에 또 다니엘 3장 21절, 21절 자 시작 ‘이 사람들은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자~ 여기에 보면 또 겉옷이 나옵니다. 자 이 사람은 누군가 하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야기야 그러면 이들을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첫째 입은 게 뭐였어? 이 사람들은 뭐, 뭔 옷? ···이 고의는요 세마포를 두고 한 말이여! 성경 찾아 갑니다.

출애굽기 39장 28절 세마포는 누구 이야기야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 이야기입니다. 자~ 이 고의는 고의가 다른 게 아니고 세마포로 고의를 삼고, 했어요. 세마포 옷 입는 것을 무슨 옷 입는다? 고의! 자~ 이 28절 시작 ‘세마포로 두건을 짖고 세마포로 빛난 관을 만들고 가는 베실로 짜서 세마포 고의들을 만들고’ 고의는 뭐라? 세마포 고의, 자~ 이 그러면 여기에 본문에는 속옷은 그럼 뭐냐? 속옷 또 찾아갑니다. 레위기 16장 4절, 레위기 16장 4절 자~ 시작 ‘거룩한 세마포···’ 뭘? 자~ 아까도 세마포 고의로 세마포 뭐여?

왜냐면 마지막 환란에 던져질 사람들의 모종(?)이란 말야, 이해됩니까? 풀무불 같은 환란에 즉 진짜 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던져진 풀무불 같은데 던져질려면 반드시 고의도 속옷, 겉옷, 별다른 옷을 다 입고 있어야 된다니까? 이해됩니까? 다니엘서를 아직 여러분이 접해보지 않아서 그래. 다니엘서를 지금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속옷은 곧 속옷은 누구 이야기야? 그리스도 이야기 맞지요? 고의는 즉 진리의 성령으로 진리 가운데 인도하는 방법으로 뭘 의미한다? 그렇지, 그리고 인제 겉옷 나오죠? 또 다니엘서 3장으로 가자, 21절 겉옷이여? 아녀? 겉옷 이죠? 그런데 겉옷하고 뭘 입었어요? 또 별 다른 옷, 자~ 별 다른 옷이 뭔지 또 찾아가 봅시다.”(신옥주 목사, 2010년 7월 11일 <반열반차>).

“별다른 옷”이라는 성경구절은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다. 이제 신옥주 목사는 “별다른”이라는 단어를 찾아 짜맞추기를 한다

“히7장11절 다시 읽기, 그래서 히브리서가 아주 깊고 오묘하다고 했쟎아! 시~ 작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쫓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별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봐~! 멜기세덱 반차를 쫓는 별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이유가 없다. ···멜기세덱은 최종 누구냐?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지만 그리스도를 본 자는 누구를 볼 것이요? 하나님을 볼 것이요. 결론은 누구 족보라? 하나님 족보여! 이해됩니까?”(신옥주 목사, 2010년 7월 11일 <반열반차>).
신옥주 목사에 의하면 이렇게 되어 별다른 옷은 그리스도의 비밀로 해석되어진다. 십자가의 강도가 목회자를 뜻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니까 신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우편 강도는 뭐했어요? 욕 했쟎아! 그러니까 그 강도는 강도가 아니고 누구였어? 목회자! 맞지? 목회자여! 왜 그러냐면 욕하는 것은 ‘성경에 욕한다’ 그러면 욕하는 게 아냐! 강단에서 뜻을 드러내지 않을 때는요 100% 뭐하고 있는 거여? 지금 방언 말하면 전부 욕하는 거여!”(신옥주 목사, 2010년 7월 11일 <반열반차>).

성경에서 나오는 겉옷과 속옷이라는 단어를 찾아내어 모두 비유풀이로 해석을 하여 예수와 그리스도가 다르다는 지방교회식 사상에 짜맞추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겉옷은 예수를 뜻하고, 속옷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뜻하는지, 성경을 살펴보자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3).
위 본문은 바울이 두기고에게 예수(겉옷)를 갖고 오라고 해석하여야 하는가?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 대”(행 12:8).
위 본문은 천사가 감옥에 갇힌 베드로에게 예수(겉옷)를 갖고 따라오라고 해석을 하여야 하는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 13:4).
위 본문은 예수가 예수(겉옷)를 벗은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는가?

어느 단어는 비유풀이를 하고 어느 단어는 비유풀이를 하지 않는가? 신옥주 목사의 뜻대로 비유풀이를 하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것인가?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 5:40). 
위 본문은 속옷(성령)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예수)을 가지게 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야 하는가? 

이런 엉터리 신천지식 비유법을 돈을 주고 강의를 듣는 목회자들이 있다고 하니 그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