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백악관 차관보 강영우 박사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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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 박사



시각장애인으로 한국계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 직급까지 올랐던 강영우 박사가 23일(현지시간) 6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강 박사의 가족은 이날 “장애인 인권 운동의 선구자인 강 박사가 오늘 투병 중이던 암으로 소천했다”고 밝혔다.


다음달 4 워싱턴 소재 한인교회에서 장례


14세 때 시력을 잃은 강 박사는 연세대 졸업 후 미국 피츠버그대로 유학, 교육학으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됐다.


이후 2001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임명으로 상원 인준을 거쳐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다.


백악관 정책차관보로 6 동안 일하면서 미국 5400 장애인을 대변,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는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박사는 지난해 10 췌장암이 발견돼 투병해 왔으며 1월에는 국제로터리 재단 평화센터에 평화장학금으로 25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석은옥 여사와 아들 진석(39 폴 강) 안과전문의, 진영(35 크리스토퍼 강)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이 있다.


저서로 7 국어로 번역 출간된 <빛은 가슴에> 비롯해 <원동력: 자녀 교육과 리더십> <오늘의 도전은, 내일의 영광>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 < 안의 성공을 찾아라> 등이 있다.


장례식은 워싱턴 D. C. 인근 버지니아 주의 한인 중앙장로교회에서 오는 3월 4일 추모예배로 그려진다.


눈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며 매일 교회를 찾았으나


아버지를 여윈 강영우 박사는 중학교 시절 축구공에 맞은 것이 원인이 돼 실명했다.

아들이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말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강 박사는 불광동 천막교회에 가면 조용기 전도사가 있는데 많은 병자들이 기도 받고 고침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물어물어 불광동 비탈길을 올라간 강 박사는 허름한 천막교회를 발견했고, 거기서 조용기 전도사를 만났다.


그는 눈물로 눈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며 매일 교회를 찾았다.

그러던 중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마저 과로사로 잃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조용기 목사는 과거 설교에서 천막교회 시절 자신을 찾아왔던 강영우 박사를 기억하며 박사는 긍정적 믿음의 소유자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한 위대한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소개했다.


눈을 뜨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박사는 간증을 곳마다하나님이 원망스러웠지만 만약에 그때 눈을 하나님께서 뜨게 해주셨다면 저는 소년 가장으로 동생들을 먹여 살리느라 아무 것도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2030 뒤를 내다보시고 놀라운 축복을 주신 겁니다라고 고백했었다.


박사는 지난해 연말 의사로부터 달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지인들에게 보낸 이별 편지에서도하나님의 축복으로 저는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저의 실명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상상조차 수도 없는 역사들을 이루어 내셨습니다라고 간증했다.


실명 이후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세대 문과대를 졸업한 뒤 1972년 도미, 피츠버그 대에서 교육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해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됐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장애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장애인 최초 정식 유학생, 시각장애인 최초의 박사.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고 장애인들의 희망이었다.

1994년에는 그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