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과 선지자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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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는 것이다.

[행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행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롬3:21, 22]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사도들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증인이다.

[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행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행 13: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선지자는 예언을 했고 그 예언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오셔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사도들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증인이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세우시어 증인으로 내어보내실 때 권능을 주셨다.

사도의 직분은 증인이며 그 증언을 세우기 위하여서는 권능이 필요했던 것이다.

선지자와 사도로 하여금 이미 교회가 세워졌으나 먼저는 유대교회였으며 나중은 이방인교회였다.

이방인교회를 위한 공식 사도는 바울이며 당시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구약의 예언이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있었던 계시의 예언을 이방인들의 삶에 결합시키는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최초 이방인교회의 대표적인 선지자는 아가보였다.

그가, 또는 교회마다 있던 선지자들이 예언한 내용이 성경에는 남아 있지 않는다.

과거 구약시대에도 예언을 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있었고 그들의 예언들이 기록되어 전해지지 않았던 예가 많다.

그것들은 구약성경의 예언들의 중복이거나 새 시대의 교회를 위한 연결구실을 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성경으로는 남아 있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아가보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바울이 체포될 것에 대한 것과 천하에 흉년이 들 것이라고 한 것이다.

[행21:10~14]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바울이 체포될 것에 대한 예언은 믿음이 굳세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이제 자신들의 신앙적 연약성을 깨닫고 또 바울 없이도 신앙생활을 잘 해 아나가야 할 결심과 각오를 촉구한 신령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행 11:27~30]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이 예언은 이루어진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대교회를 위하여 바울을 중심으로 하는 이방인교회가 헌금을 모아 부조를 함으로써 예루살렘교회와 흩어져 있는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참된 교제가 이루어진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 시행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당시 성경이 구하기 어려웠고 또 있어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흔치 않던 시대에 선지자들의 역할은 구원계시의 전달자로서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돕는 일에 대단히 중요한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에는 5대 직분이 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이다.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고린도교회는 좀 사정이 다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예언은사를 아주 자세하게 다루기도 하였다.

또 로마서 12장에서도 은사를 다루었는데 이는 직분과 은사를 구별하지 않았다.

직분과 은사는 교회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보아야 하겠다.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롬12:6~8]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그러나 교회의 5대직분이라고 하는 것은 각 지역의 단위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지역과 시간을 초월하는 우주적 교회, 불가시적 교회, 신령한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의 경우에 그런 표현을 썼고 로마교회의 경우에는 사도나 선지자 이야기를 회피하였다.

아마도 자기가 세운 교회는 물론 아니었고 또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를 보더라도 이신득의의 교리가 제대로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으며 설립자가 누군지도 일려지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서는 여기저기서 모여든 교인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서 바울은 직분 이야기를 피하고 은사만을 거론하였던 것 아닌가 한다.

직분은 엄연히 조직적 의미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편지에서 로마교회의 책임 지도자를 거론할 수 없었던 이유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사도와 선지자는 교회의 공식 직분으로서는 다른 직분이나 은사에 비하여 독특하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예언과 그 예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행과 증인으로써의 사도직분은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터전 노릇을 한 것으로서 이미 설립된 교회에서는 더 이상 그 직분자가 남아 있을 이유가 없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벧후 3: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교회사를 보자면 사도들이 모두 순교하거나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고 나서 사도들의 뒤를 바짝 이어가는 지도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시대를 속 사도시대라고 한다.

이들은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았거나 사도들의 직계 제자들이었다.

신령한 교회로서의 터전이었던 사도가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으나 지교회들에 있어서는 여러 면에서 전의 사도와 거의 동일 수준의 인사들이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었으니 이들은 사도의 권위와 신앙을 이어가는 연속선상의 사도, 즉 속 사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속 사도 시대를 지나서 지 교회들을 이끌어가는 뛰어난 지도자들의 시대를 교부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교부란 교회의 아버지라는 말인데 다분히 로마 천주교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직분이다.

오늘날의 목사가 과거 사도들의 직분을 뒤 이어가고 있으나 사도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현금의 사도라 할 수 있는 목사라는 직분은 최초 교회의 사도와 같은 산 증인들은 아니지만 사도적 정신과 책임감을 가지고 교회를 유지발전 시키고 있다.

또한 성령의 권능으로 역사하면서 세상과 사단의 궤계를 쳐부수어야 한다.

선지자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터로서의 원래의 선지자는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감당했던 크고 작은 선지자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방인교회에서의 선지자들은 옛 선지자들의 선지활동 범위 안에서 생소한 문화의 이방인교회를 원 교회였던 유대교회와의 신령한 연결을 이룩하는데 힘을 썼다.

이 두 직분은 이방인교회 설립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서 이 두 직분의 효력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과 싱앙은 보수 정통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

이 사실은 신령한 교회의 영원성에 관련되는 것이며 옛 사도를 잇는 목사의 직분은 가시적 교회의 유한성에 관련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만일 지나간 2,000년 동안 사도가 계속 있었다고 본다거나 지금은 마지막 때이므로 선지자와 사도가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이론이 나타난다면 성경 계시는 추가되거나 수정되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작업을 막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또 사도들이 없던 시대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반석위의 교회가 음부의 권세아래 놓여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니 이는 아주 심각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과거 큰 부흥 운동 때마다 사도와 선지자의 이야기가 나타났었으나 실상은 과도한 기적의 나타남에 관심을 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신사도 운동도 역시 사도와 선지자의 복권을 이야기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사도직이나 성경에서 다루고 있는 계시적 예언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증인으로서의 사도보다는 사도적 권능에 더 깊이 연연하고 있으며 고대의 위대한 선지자들과 같은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기대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그 이상을 지나치면 정말로 곤란하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모든 직분과 은사를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한다.

사도적 권능과 선지자적 예언이다.

그런데 권능이란 사도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행할 수가 있다.

최초의 사도들의 이야기에서도 보자면 12사도들보다 먼저 가장 큰 기적을 행한 사람이 있었다.

첫째는 최초 순교자 스데반 집사였으며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으로써 핍박과 환란을 무릅쓰며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을 때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 가서 많은 기적을 동반하는 복음전파를 성취하였고 바울이 회심할 때 그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충만케 한 사람은 사도가 아닌 무명인사 아나니아였다.

뿐만 아니라 12사도 모두가 알려진 바와 같은 베드로, 바울 등의 희한한 기적을 다 행한 것도 아니며 일생동안 언제나 기적을 행한 것도 아니다.

특히 바울을 보면 그는 자신의 안질 하나도 고치지 못하고 애를 태우기도 하였던 것을 우리는 목격한다.

사도의 직분은 권능을 행하는 일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증인으로서의 직분인 것이다.

말로만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생애-삶과 죽음-전체가 증인으로서의 삶이었으며 심지어는 부활을 증거한 이유로 목숨을 내어 놓아야 했으니 죽음으로써 증언한 증언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확고부동한 증언이었던 것이다.


거짓 사도와 거짓 선지자

권능을 행한다고 다 사도가 아니며 사도적 권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예언 한다고 다 선지자가 아니며 예언이 잘 맞는다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도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예언과 기적이 이루어지더라도 성경에서 벗어난 것은 이름이야 뭐라 하든지 가짜이며 사단이며 잡귀신들에 지나지 않는다.

[신13:1~3]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신비적 경험을 중요시 하는 경험주의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이나 예언들은 다 진실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1930년대 이북에서의 신비주의 운동에서 그 대표적인 것 2가지를 소개하겠다.

여자 김 성도라는 권사는 병자들을 치료하는 특별한 재능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이웃의 교회들을 능가하는 큰 힘을 발휘하였으며 작지만 교단을 형성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이 새 주님이라고 주장하는 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믿고 따랐다.

이들을 새주파라고 부를 정도였다.

당시에 기성 교단에서는 그녀를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그쳤고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성경에 위배되면 거짓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지도하려 한 예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새 예수 유명화라는 유명한 접신녀는 원산에서 아주 이름을 떨쳤다.

이용도 목사는 당시 수제자로 데리고 다니던 필자의 선친과 함께 유명화를 만나러 갔었다.

도중에 단발령에서 내려 촌가에 들어가서 입은 양복과 촌로의 바지저고리를 바꾸어 입고 걸어서 원산에 도착하였다.

유명화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우렁찬 목소리로 “용도야! 왜 이제야 오느냐?”하고 탄식하면서 처음 둘이서 만나 원산에 가자고 의논하던 이야기로부터 해서 무슨 기차를 타고 어디서 내렸으며 단발령에서의 이야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읊어대니 이용도 목사는 놀라서 넙죽 엎드려 절하며 “오, 주여!”하고 무릎을 꿇었다.

유명화는 예수(=유명화)교회를 세우라고 지시하고 필자의 선친에게는 장가들면 첫 아들을 볼 것이니 빛날 혁(赫)자를 넣어 이름을 지으라고 하였다.

필자의 모친에게서와 큰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며 모친께서는 선친께서 수첩에 빛날 혁(赫)자를 적어가지고 다니는 것을 직접 보셨다고 한다.

필자의 큰 형은 첫 아들이었으며 이름자에는 빛날 혁자가 들어 있다.

늦었지만 카나다 연합교회 토론토 노회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선친께서는 이용도 목사가유 명화를 만나고 돌아간 직후부터 폐병이 도져서 눕게 됨을 보고 이는 필시 잘 못 된 일이라 여겨서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용도 목사는 돌아가서 예수교회를 설립하는데 힘을 쓰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유 명화가 옳지 않다는 점을 밝히지도 못하였다.

우물쭈물 하는 동안에 유명화의 독촉에 의하여 예수교회는 세워지고 이용도 목사는 총회장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되나 거절도 못하고 병으로 인하여 업무도 보지 못한 채 김백문의 손에 마지막 토혈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갔다.

김 성도를 따르던 많은 이들이나 이용도 목사의 이러한 모습이 당대의 신앙적 모습이었다.

유명화는 나중에 본 교회로 복귀하여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였지만 당시에 여러 많은 이단들이 우후죽순같이 일어났는데 모두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적과 예언을 하는 형태였던 것이다.


2011 10/14 금 정 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