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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괴망칙한 웃음의 캐네스 해긴
이인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주장)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고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의 삶 밖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서 수행되고 있지 않습니다.(기도의 기술, 케네스 해긴, 믿음의 말씀사, 12쪽)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케네스 해긴의 주장이 과연 기독교적인 주장일까? 그는 하나님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그는 성령의 기도는 신음소리의 기도라고 주장하며, 성경을 짜맞추기를 하고 있다.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바울은 이 사람들을 위해 신음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며 해산의 수고를 하였고 결국 그들은 거듭났습니다(해산이란 말은 고통과 신음과 아픔 가운데 아기를 낳은 여자의 수고를 의미합니다) (기도의 기술, 117쪽)
큰믿음교회 변승우가 성령의 사람이라고 극찬하는 케네스 해긴은 성경본문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성령의 기도는 “신음으로 하는 기도”라는 이상한 해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기도를 할 때에 짐승의 소리나 가래끓는 소리를 내며 기도를 하면 그것이 곧 성령의 기도라는 해괴망칙한 등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황당한 주장은 성경의 본질을 무시하고 이상한 해석으로 인하여 현상에 치중하는 기도를 만들어서 그것이 마치 성령의 기도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신사도운동의 정체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해산은 “신음소리”가 그 주제가 아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해산은 “분만까지의 과정”이 곧 본질적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즉 바울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태어나는 분만으로 비유하였으며, 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은 성화의 과정을 다시 분만의 과정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저 본문을 신음으로 해석하여 성령의 기도, 방언의 기도로 해석하는 케네스 해긴은 정말로 무지한 자가 아닌가? 바울이 방언과 신음기도를 하면 그리스도인이 성화적 과정을 종결하는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라는 구절은 오히려 기도를 구별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성경을 인용하였으되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성령 안에서 하고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는 내용은 구별하라는 뜻이 아니다. 케네스 해긴은 왜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할까?
더욱이 케네스 해긴은 “믿음의 기도를 할 때에 ‘만일 이것이 당신 뜻이라면’ 이라고 마무리하는 기도는 그 분의 뜻, 그 분의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응답받기 어렵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고 기도하던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지 못하였을까?
케네스 해긴은 자신이 기도를 정의하고 기도를 만들고 있다.
그가 만드는 이상한 기도와 이상한 성경해석을 살펴보자
그는 새 영어성경(The New English Bible)을 인용하여 롬8:26을 “우리가 발음할 수 없는 신음을 통해 성령님 스스로 우리를 간구하신다”로 해석을 한다. 그리고 “신음으로 하는 기도”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성령께서 도와주는 기도라고 언급한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다른 한글 번역성경은 모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번역하였다. 과연 본문이 발음할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라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아래 성경구절에서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신음소리를 내며 기도하라는 것으로 해석이 되는가? 케네스 해긴은 왜 이런 쓸데없고 불필요하며 유치한 성경해석을 하는가?
결론적으로 그가 집회에서 웃는 가래가 끓는 웃음소리는 곧 성령의 탄식이라는 것인가?
필자에게는 귀신의 웃음소리로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