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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교수들의 박윤식 이단연구보고서(1)
본 연구보고서는 박윤식 씨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 설교 <씨앗 속임>(1981.7.5)에 대하여 평강제일교회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배포한 녹취록(학산합동속기사무소, 2005.6.10)에 주로 기초한 것이며, 필요한 경우 가능한 한 다른 관련 자료들을 참조하였다.
2005년 8월 31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일동
서론
한국 교회에서 오랫동안 이단 시비가 있었다. 근래 2004년 한기총과 1991년 통합 총회가 이미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며, 1986년 본 교단 제 71회, 1996년 제 81회 총회가 그 이단성을 결의 한 바 있는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씨와 관련된 최근의 사태에 자극받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회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본 연구에 착수하였다. 우리 교수 일동은 이 연구가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이단의 홍수에 처한 본 교단과 한국교회에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데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윤식 씨에 대한 이단 시비 논쟁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인데, 주로 신앙계와 현대 종교, 풀빛목회, 목회와 신학 등에 관련 논문 혹은 기사들이 게재되었다.
'박윤식 씨와의 대담에서 나타난 그의 생애' <신앙계>(1978년 5월),
'대성교회의 내막: 박윤식 씨는 이단인가?' <성별>(1979년 9월),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에 대한 질의' <성별>(1982년 5월호),
'말씀의 아버지 박윤식 목사, 그는 과연 이단인가?' <현대종교>(1983년 3월호),
'박윤식 소속 교단, 총회 특별위에서 이단으로 제명' <현대종교>(1983년 9월호),
'박윤식 교리 성서적으로 짚고 넘어 갑시다' <현대종교 (1985년 4월),
'박윤식의 이단교리를 공박한다' <현대종교>(1985년 6월),
'박윤식 교리, 정통 칼빈주의자인가?' <현대종교>(1985년 7-8월),
'박윤식의 이단적인 주장 철회하기를 촉구한다' <현대종교>(1985년 7-8월),
'장로교 간판 쓴 이단자 박윤식의 비밀 말씀 공부 요약', <현대종교>(1985년 9월),
'박윤식 씨와의 인터뷰 기사' <풀빛목회>(1985년 7월),
'왜곡된 진실에 대한 우리의 입장' <목회와 신학>(1991년 2월),
'박윤식 교리의 이단적 핵심' <현대종교>(1991년 2월),
'대성교회 박윤식, 그는 과연 이단인가?' <현대종교>(1991년 6월),
'박윤식의 비밀말씀 교리는 표절 작품인가?' <현대종교>(1991년 6월),
'자칭 말씀의 아버지 박윤식 씨는 누구인가?' <현대종교>(1994년 4월).
본 연구를 수행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박윤식 씨에게서 나온 원 자료들을 사용하였다. 박윤식 씨에 대한 통시적인 연구를 위해, 또 그의 사상의 일관성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그의 설교와 강의, 글, 교회에서 발간한 자료들, 10단계 성경공부를 비롯한 중요 자료들, 필요할 경우 그 외 관련 자료들도 참고하였다.
둘째, 이 자료들을 공정하게 검토하고 해석하는데 주력하였다.
셋째,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필요할 경우 원문을 그대로 실어 누구라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넷째, 우리가 사용한 판단의 기준은 칼빈주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장로교 전통, 또는 개혁주의이다.
박윤식 씨와 관련된 최근의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단 시비가 일기 시작한 1970년 대 후반 이후 박윤식 씨는 자료들의 유출을 절대 금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80년 초 저녁 예배 시 설교에서 박윤식 씨는 이렇게 교인들에게 설교했다.
"불평, 불만하는 데 오열이 숨어듭니다. 말씀을 도적질하는 간첩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도적절해서 말씀의 뜻과 상관없는 그것들한테 전해주는 이러한 자가 교회에 있다는 것이다. 저는 윤 목사한테 명령합니다. 만약에 녹음테이프나 어떠한 노트를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게 전해주는 자, 말만 들어도 당장 제명하기 바랍니다. 가짜 예수 믿는 것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의 뜻을 깨달았습니까? 피눈물로 기도하는 가운데 얻어진 것이다.” '창세기 16장 강해'(본문 창 1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회는 연구에 필요한 중요한 자료들을 상당량 입수하여 박윤식 씨의 신학을 적절하게 연구 할 수 있었다.
I.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의 박윤식 씨의 신앙 배경
박윤식 씨의 출생 배경에 대해 여러 자료들이 불일치하지만, 대략 1928년 5월 17일 출생했고, 원적은 황해도 서흥군 신막면 신막리 108번지로 알려져 있다. 박윤식 씨는 1967년 2월 자유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자유감리교회는 현재 그 활동과 본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64년 10월 전도사로서 가정 집회를 시작하여, 1968년 10월 원효로에 일석(一石)교회를 개척하고, 1969년 대방동에 일석교회를 건축하고, 1977년 7월에 대성교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의 오류동으로 이전한 것은 1992년이며, 1994년 2월 18일 탁명환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대성교회의 명칭을 평강제일교회로 변경하였다.
1983년 10월 박윤식 씨가 직접 작성한 기록(이단 시비가 일던 1983년 10월 박윤식 씨가 직접 작성하였다. <작은 문선명 박윤식 씨와 대성교회>(정정조 지음) 11~18쪽에 '총회 질의에 대한 답변'이란 제목으로 전문이 그대로 실려 있다)에 의하면, 그는 1967년 2월 자유감리회 신학교 4년을 졸업하고, 1978년 호헌 총회 신학교를 졸업했으며, 1973년 2월 국민산업대학 기업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교단 관계는 1974년 ICCC 예장교단에 가입했고, 1978년에 예장 호헌교단에 가입했으며, 1992년 12월 합동 보수 교단에 가입했다.
박윤식 씨는 자신의 가르침이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기도하여 직접 깨달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확한 기간은 본인의 진술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1960년 11월 13일부터 1962년 8월 14일 14시 14분까지(1981년 10월 25일 장안산 설교), 또는 1960년 11월 13일부터 1964년 8월 14일까지(1978년 월간 <신앙계> 5월호 자술내용. 1983년 10월 박윤식 씨가 직접 작성하여 합동개혁 총회장에게 보낸 '총회 질의서에 대한 답변') 두 가지로 진술했다.)
1980년 10월 25일 <大聲>지는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20년 전 박(박윤식) 목사는 혈혈단신 지리산을 찾았다. 3년 6개월 7일 깊고 험한 산속, 말 할 수 없는 공포감, 고독, 절망, 슬픔, 굶주림, 추위,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온갖 고생과 싸우면서 오직 신구약 성경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몸부림쳤다.
사람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거늘 모두가 덧없이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을 차마 수수방관할 수 없는 희귀한 양심. 뭇 인간사 속에 서려 있는 온갖 추악하고 허망한 죄악의 냄새를 그대로 외면하고 살 수 없는 살아 있는 양심이 있어 마침내 목숨을 내어 놓고 지리산 속에서 하나님과 담판을 벌였다."
"3년 6개월 7일. 낮에는 성경보고 밤에는 피눈물로 기도했다. 이미 내 놓은 목숨이다. 40일 단식기도를 작정했다. 무서운 고난의 40일이었다. 작정기도를 끝냈으나 아무 응답이 없다. 그 절망감, 그 허무감, 탈진감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기고 다시 40일 단식기도에 들어갔다. 하늘 아래 그 눈물, 그 간절함을 알 자 없으리라.
두 번째 40일 단식기도가 끝나던 날, 마침내 온 우주의 흑암을 깨고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 첫 마디가 (롬 3:4) 말씀이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그날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이 임하여 (렘 1:1-3, 겔 1:1-3)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 끝까지 한 줄기로 꿰뚫어 흐르는 하나님의 중심에 부딪친바 되었다."('지리산 산상 구국 기도' 1980년 10월 25일 <大聲> 7쪽)
박윤식 씨는 자신의 가르침의 권위를 이 사건에서 찾으며 기회 있는 대로 이 사건을 강조한다. 박윤식 씨의 가까운 교역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삼각산에서 150일 동안 첫 번째 단식기도를 했고 이때 방언을 받았으며, 장안산에서 47일 단식기도할 때 "천사들이 나타나서 지리산으로 가라고 인도하여 지리산 1915m 천왕봉까지" 가서 "2백 명쯤 들어갈 수 있는 동굴"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1천2백 번 성경을 상고"했고 "이 말씀이 무엇일까 무슨 뜻일까 생각하면 구절로 응답을 받았다"고 한다. "2년 6개월 되어 기도 중에 밝은 빛 가운데 몸이 뜨는 기분이 되었고 눈을 감아도 떠도 빛이었으며, 두루마리 성경이 나타나는데 당신이 보신 성경과는 달랐다"는 것이다.(<십단계 말씀공부> 77~78쪽)
"그 다음에 총천연색 필림같이 J(예수님)이 말구유에서 나시므로 또 사생활 공생활 J(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까지 다 보여주심. 성경을 통해 계시를 받았고, 주님의 사생애와 공생애를 J(예수님)이 사생활 30년 동안에 요셉이 자기 子(아들) 아니니 돌려놓고 자기 자식 때때옷 입히고 J(예수님)을 처마 밑에 서 있는 것을 어머니인 마리아가 몰래 음식 갔다 먹이시고 3년 동안 핍박 받으며 말씀 증거하셨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고자 한 자 그 상을 결단코 잊지 않겠다고 하셨을까?"(<십단계 말씀 공부> 79쪽)
박윤식 씨는 이처럼 자신의 권위를 지리산에서 받은 직접 계시에 두고 3년 6개월 7일간 기도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기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더욱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는 의미로서 계시와 영감과 조명의 차원에서 볼 때 조명의 차원을 뜻하는 것임. 즉 하늘의 지혜를 뜻함", "3년 6개월 7일 홀로 억만 사탄과 싸워 이긴 산 역사가 이루어진 곳", "3년 6개월 7일간의 기도생활 중 많은 시험을 이겨내고 조명을 받아 성경의 깊은 뜻을 깨달은 것, 은혜 받은 곳이라는 뜻"(박윤식 답변서). 대성교회에서 장안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대성교회가 연례적으로 '장안산 기도회'를 갖는 것에서도 나타난다.(<휍시바> 1995년 4월 22일)
최근 서북노회가 제출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의 이단성 여부에 관한 보고서'에서도 이 사실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 기간 동안 성경을 1천 독 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있다. 3년 동안 매일 신구약 성경 전체를 완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변호한다.(평강제일교회 가입 사실 확인 특별위원회가 제출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 목사의 이단성 여부에 관한 보고서'(서북노회, 2005년 6월 21일) 49~50쪽) 그러나 이 때 받았다는 그의 가르침은-본 소논문을 통하여 밝혀지겠지만-상당 부분이 김백문, 문선명, 변찬린의 가르침과 너무도 유사하다. (박윤식 씨의 가르침은 통일교 계통의 이단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에서 빌려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1983년 1월 18일 변찬린이 박윤식 씨에게 보낸 편지' <현대종교>(1998년 1월) 80~81쪽)
박윤식 씨는 신학교도 설립하여 신학생을 양성했다. 그는 성지신학교를 1971년에 설립하여 1976년 2월까지 총 121명의 학생들을 졸업시켰으며, 박윤식, 강의방, 윤성택이 주로 교수했다. 졸업생은 박윤식 씨가 시무하는 교회의 목사 장로 평신도가 70%였고 타 교회 목사가 10% 그리고 기타가 20%였다.(박윤식, '총회 질의에 대한 답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