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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뢰아 귀신론 비판

                                                                                          이인규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은 무속신앙적인 귀신과 전혀 다르다. 무속신앙적인 귀신의 개념은 죽은 자의 영혼, 혹은 혼백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은 타락한 천사의 무리들로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귀신을 죽은 자의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락교회 김기동목사이며 그로부터 빗나간 귀신론이 한국교회에 침투되어진다.

 

"저는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는 것은 저의 학설이며 이론입니다."(마귀론 상 175쪽)

 

이것이 귀신쫓는 목사로 유명한 소위 성락교회 베뢰아의 김기동목사의 귀신론이다. 물론 김기동목사(성락교회)의 이단성은 귀신론에 국한 된 것은 아니며, 전체적인 신학사상에 이단성이 널리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베뢰아 성락교회는 보기 드물게, 모든 정통교단으로부터 한결같이 이단이라고 발표되었는데, 김기동목사의 귀신론은 성경적이 아니고, 무속신앙과의 혼합적 신앙의 형태이며, 김기동목사의 개인적인 학설이며 이론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성경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체험으로 안다고 주장을 하며 귀신을 축출할 때에 귀신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한다.

왜 그는 성경말씀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귀신의 말을 더욱 신뢰하는가? 기독교의 교리와 신학이 어찌 성경말씀에 근거를 두지 않고 귀신의 말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김기동목사로부터 배웠거나 그 사상을 같이 하는 추종세력들을 살펴보면, 신사동 소재 그레이스 아카데미의 서울대 국악과 교수인 한만영과 요즘 잠실 체육간에서 자주 집회를 여는 예수중심교회의 이초석(본명. 이춘석)과 마산 소재의 산해원 부활의 교회 이태화(이갈렙), 미국 로스엔젤레스 소재 벧엘교회의 김요한, 은혜 한인교회의 김광신, 인터콥의 최바울(최한우)등을 들 수가 있으며, 최근에는 연세중앙교회의 윤목사가 베뢰아와 유사한 주장을 함으로서 이단논쟁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윤목사가 베뢰아 10기생이었음이 밝혀지므로 충격을 주고있고, 김기동목사로부터 베뢰아교육을 받았다고 알려진 목회자는 부지기수이며, 베뢰아 귀신론은 류광수목사의 다락방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직도 정통교회라는 이름아래 베뢰아의 주장을 하는 목회자가 부지기수임을 알아야만 한다.

 

물론 성락교회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주장중에서 오직 귀신론만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귀신론만으로 베뢰아를 이단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양태론적인 삼위일체 신론, 인간론, 구원론, 성령론, 기독론, 원죄론, 성경론등 많은 면에서 이단적인 견해를 가졌으며, 그러나 김기동목사의 귀신론이 왜 비성경적인가에 대해서는 일반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여 이단인가?”라고 반문을 하기도 한다.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 귀신론에 대해서 성경적인 근거로서 살펴 보자.

첫 번째, 김기동목사(성락교회. 베뢰아)는 귀신을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라고 주장한다. 즉 불신자가 제 명에 죽지 못하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다가 그 자손들에게 들어가 병이나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귀신을 쫓는 자체가 이단적이라든지 비성경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귀신을 쫓았기 때문이며, 질병의 원인이 귀신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모든 질병이 다 귀신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베뢰아 귀신론을 추종하는 주장을 이원론적 귀신론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불행, 사고, 질병, 심지어 가난까지도 모두 귀신때문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불행과 사고와 질병이 없으며 모두 부의 축복을 누리는가?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이란 제명에 죽지 않은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기동목사의 비성경적인 주장은 성락교회 김기동목사가 주장한 것처럼, 감기, 배탈과 같은 모든 질병도 귀신때문이며 (마귀론 하 166쪽), 모든 사고조차 귀신때문 (마귀론 하 166)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술과 담배도 마귀때문”이며(마귀론 하 168쪽) “차멀미나 배멀미도 조상 중에서 차사고나 배사고로 죽은 귀신이 들어왔기 때문”(마귀론 하 190쪽)이라고 주장하며, “연탄가스 중독과 임신 헛구역질조차 귀신탓”이라고 주장하며, “신경통, 관절염등은 귀신이 병균을 파송하는 것이므로 귀신을 쫓아도 즉시 병이 낫지 않는다”(마귀론 하 192쪽)고 주장하는데, 아마 귀신을 쫓아내도 신경통과 관절염은 치료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귀신론은 성락교회 계열의 목회자들마저 토론을 회피하면서, 자신들조차 귀신론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실정이다.

 

1. 용어적인 구분

 

사단(사타나스), 마귀(디아볼로스), 귀신(다이모니안), 천사(앙겔로스)

 

정통신학에서는 사단(사타나스)과 마귀(디아볼로스)를 같은 동의어로서 타락한 천사로 보며, 귀신은 사단(마귀)의 무리들, 즉 졸개나 부하들로 본다.

본래 사단이란 “대적자”란 의미를 갖는다. 즉 하늘로부터 하나님께 범죄한 한무리의 타락한 천사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대장이 사단(마귀)이며, 그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을 귀신으로 보는데, 그 성경적인 근거는 유1:6과 벧후2:4등으로 본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앙겔로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앙겔로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즉 하나님께 범죄한 한 집단의 천사들이 있었는데, 대장인 사단(마귀)를 포함하는 일부 집단은 심판 때까지 무저갱에 갇혀 있으며, 일부는 아직 제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날에 이러한 사단과 귀신들은 잠깐 풀려나서, 최후의 전쟁을 하고 모두 영영한 불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이러한 언급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는 천사들이 천상회의를 갖는데, 그 중에 사단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사단이 천사였다는 것은 분명하며, 성경상으로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욥1:6, 2:1)

 

또 구약중에서 이사야14:12-15의 구절도 일차적인 본문의 의미만으로는 바벨론의 왕을 가르키지만, 전통적인 해석으로는 계명성을 곧 타락한 천사장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 구절중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리기라”는 표현은 천사들의 반역을 시사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또 스가랴 선지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하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고(슥3:1) 있음으로, 사단이 천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또 신약에서도 마귀와 천사를 상반되게 대조되어지는 동격으로 보는 이러한 언급도 있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마13:39)

 

성경은 더 이상의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분명 일단의 타락한 천사들의 집단이 하나님께 반역하였고, 그 사단(마귀)과 일부는 큰 날의 심판때까지 갇혀 있으며 일부는 지금껏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마귀와 사단이 같은 의미인가를 알려주는 구절에 대해서 우선 살펴보자.

계시록의 기록은 용이라고 불리는 옛뱀, 그리고 마귀가 곧 사단이라고 불려진다는 구절이며 마4:10-11은 사단이 곧 마귀라고 불려졌다는 구절이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계20:1-2)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계12:9)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0-11)

 

마귀가 사단이라는 것은 분명한 성경적인 내용이며 그것에 대해서는 베뢰아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사단이라는 명사는 “대적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 일반 단수명사이며, 정관사와 함께 사용되어질 때에 인격체적인 사단을 의미한다. 마귀는 보다 구체적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집단적인 우두머리의 개념을 의미하는데, 사단의 다른 명칭이기도 한다. 단지 귀신은 복수명사로서 무리를 말하며, 사단과 마귀의 부하, 악한 영적존재들을 총괄하여 말한다고 보는데, 우상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2. 귀신이 사단(마귀)의 부하라는 성경구절

 

앞서 보았듯이 사단이 마귀이며 타락한 천사라는 것을 베뢰아도 인정한다.

다만 베뢰아는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영혼이라고 주장하는데,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영혼이라는 베뢰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그러한 주장은 동양적인 무속신앙의 설화일 뿐이며, 더욱이 김기동목사는 “무당들도 귀신을 달랠 수가 있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귀신이 사단(마귀)의 부하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성경에는 아주 상세하게 구체적으로는 설명되어 있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다만 몇몇 구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파악하여 이해할 수가 있다.

 

칠십문도가 전도를 하고와서 “귀신들도 주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예수님께 이야기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도다.”(눅10:18)

 

즉 귀신은 그 머리인 사단이 떨어짐으로서, 칠십문도에게 항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아니라, 사단을 우두머리로 하는 한 집단인 것이며, 사단의 추락은 곧 귀신들의 대장으로서의 패배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어 있다.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다이모니안)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사타나스)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눅11:18)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12:26. 참고: 막 3:23,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마12:24. 마9:34)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막3:22)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눅11:15)

 

성경은 세 복음서에서 모두 귀신의 왕이 바알세불이라고 언급하면서, 동시에 그를 사단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라면, 왜 귀신의 왕이 귀신을 쫓아낸다는 유대인의 비난을, 예수님은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는지에 대해서 베뢰아는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귀신의 왕(사단),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하였고, 그것이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영혼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귀신을 사단과 같은 무리의 존재의 개념으로 본 것이다. 이와 같이 귀신을 사단 혹은 마귀와 같이 표현하거나 귀신을 사단과 마귀의 부하라고 표현하는 성경구절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이 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디아볼로스)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예수님이 귀신(다이모니안) 들린 자를 고치셨다는 것은 4복음은 모두 나오며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행10:38에서는 예수님이 "마귀(디아볼로스)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언급하고 있으므로 귀신과 마귀의 사실상 구별이 없다. 귀신이 불신자의 영혼이라면, 성경은 귀신들린 자를 왜 타락한 천사인 마귀에게 눌린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귀신에게 눌린 자가 따로 있고, 마귀에게 눌린 자가 따로 있다고 보아야만 하는가?

사도행전의 기자인 누가는 귀신들린 자를 마귀에게 눌린 자라고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행19:12-16에서는 바울이 쫓는 귀신을 “악귀”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도행전에서 언급되는 귀신과 악귀가 서로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사도행전 5:16, 8:17, 16:18등에서는 귀신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악귀라고 하는 단어는 “프뉴마 포네로스”로써 죽은 자의 영혼이 아니라, “사악한 영” 혹은 “악독한 영”을 가르킨다. 이 포네로스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많이 언급되어지며(마5:1, 5:37. 히13:12, 약2:4, 요이 1:11, 요삼1:10, 계16:2등) 주로 “악한”이라는 형용사로 사용되어진다. 즉 프뉴마 포네로스는 악한 영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저희는 귀신(다이몬)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계16:14)

 

“천년이 차매 사단(사타나스)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모래 같으리라.“(계20:8)

 

이 두 문장을 비교하면 귀신과 사단의 구별이 사실상 없다. 즉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아니라 사단의 무리라는 것을 증거하여 주고 있다.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라고 한다면,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큰 날에 하나님과 전쟁을 하려한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불신자가 죽은 후에는 하나님이 그들의 영혼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무저갱에서 심판까지 결박되는 자들은 마귀(사단, 용, 옛뱀)와 그의 범죄한 천사들(복수)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유1:6. 벧후2:4. 계20:1-2에서는 마귀(사단)뿐 아니라 함께 범죄한 천사들로 무저갱에 갇힌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다른 성경에 무저갱에 귀신들도 갇힌다는 것을 암시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즉 함께 결박되는 범죄한 천사들이 곧 귀신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귀신들(다이모니안)이 주님께 무저갱으로 들어가지 말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이 있다. 만일 귀신이 불신자의 영혼이라면, 주님께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저갱으로 가는 자는 사단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계9:1-2. 9:11. 11:7-8. 20:1-3등)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다이모니안)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눅8:30-31)

 

또한 예비된 불에 마귀와 그의 사자들이 들어간다는 성경구절도 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엥겔로스)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또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아니라는 이러한 증거는 또 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데리온)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계11:7)

 

이 계11:7에서 무저갱에서 나오는 것은 짐승이다. 즉 용과 뱀과 마귀, 사단은 곧 짐승과 같은 부류이다. 무저갱에 들어가는 자들은 사단과 범죄한 천사들인데,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키려고 준비하는 이 짐승(데리온)은 무엇일까?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데리온)의 입과 거짓 선지자(프슈도프롭헤테스)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다이몬)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계16:13-14)

 

이 계16:13에서 나오는 용의 입과 짐승(데리온)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세 영은 "귀신(다이몬)의 영"이다. 그 귀신의 영이 전쟁을 위하여 백성들을 모은다는 것이다. 만일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라면, 용의 입과 집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올 수가 없으며, 어떻게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 용(사단)의 입에서 나오며, 마지막날 하나님과의 전쟁을 위하여 세상 임금들을 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용이 사단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용의 입에서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 나온다는 것인가?

 

3. 베뢰아가 주장하는 성경적인 증거

 

베뢰아는 귀신이 죽은 자의 사후영혼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유일한 성경적인 증거를 이렇게 제시한다.

 

“또 저희가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시 106:28)

 

베뢰아는 귀신이 죽은 자의 사후영혼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성경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하면, 유일하게 시편106:28만을 제시한다.

히브리 이방인들은 제사를 죽은 자에게 지내지 않으며, 다른 신적 존재,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시편106장에 오직 단 하나의 기록이 있다. 베뢰아에서는 시편106장 28절은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므로,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곧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죽은 자가 귀신이라는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으며, 개역성경의 해석을 그대로 보더라도, 단지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뿐이다. 물론 이러한 성경해석도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다. 이 시편 106편은 민수기 25장 1~3절의 말씀에 대한 인용이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여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진노하시니라“

 

시편106:28을 읽어 보면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이라고 되어있는데, 민수기 25장1-3절과 비교하면, 제사를 드린 대상은 “그 신들”이다. 다시 말하여 바알브올을 곧 "그 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알브올과 죽은 자, 둘에게 제사한 것이 아니라, 바알브올이라는 신이 곧 “죽은 자”인 것이다.

히브리인들에게는 죽은 자에게 드리는 제사라고 하는 풍습은 없다. 성경이 말하는 히브리인들의 제사란 이방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가르킨다. 민수기 25장1-3절을 보면,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다......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바알브올에게 제사한 여자들과 음행을 하고, 그 신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은 것인데, 그러한 행위가 바알브올에게 연합되고 부속된 결과가 되어진 것이다. 공동번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브올에서는 그 곳 바알신에게 굴종하고 <생명도 없는 것>들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었다.”(시106:28)

 

즉 “죽은 자”라고 번역된 것은 “생명도 없는 신”이란 의미이다.

시편 106편에서 "연합하다"는 단어는 "짜마드"로서 민수기 25장 3절과 5절에 사용된 "부속되다"는 단어와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믿고 예배에 참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부속되고 연합된 것과 같이, 바알브올을 숭배하는 여인들과 음행을 하고 그 제사음식을 먹는 것이 곧 바알브올에게 연합되고 부속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여 바알브올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곧 죽은 자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며, 바알세블이 곧 생명이 없는 죽은 자란 것을 말한다.

바알이란 여러 가지 형태의 우상을 말하는데 바알들이라고 복수로 표현되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삿2:11. 3:7) 또 바알 하솔(삼하13:32), 바알 헤르몬(삿3:3), 바알 세붑(왕하1:2), 바알 브릿(삿9:4)등의 다양한 이름은 바알이 여러 가지 형태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바알 브올이라는 단어는 “광장의 신”이라는 뜻이 되어진다. 특히 바알 세붑은 “파리(곤충)의 신”이라는 뜻이며 비, 우레, 풍요의 신등을 바알이라고 하였고, BC 1500년전의 것으로 시리아지역에서 발굴된 바알신은 진흙으로 빚은 조상(彫像)이었다.(아가폐 성경사전 573쪽)

즉 바알이라는 신은 죽은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죽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로 아노라."(고전8:4)

 

우상이란 죽은 것이며 생명이 없는 것이고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분이다. 히브리어 "쉐드"란 단어는 오직 구약성경에 두 번 사용되었는데, 시편106:37과 신32:17이다. 신명기32:7에서는 "마귀"라고 번역하였으며,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하였는데 그 "신"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죽은 자의 사후영혼이 아니라, 신적존재(귀신, 마귀)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신적존재가 아닌 죽은 사람의 영혼에 사용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쉐드)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엘로힘), 근래에 일어난 새 신(엘로힘),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신32:17)

 

그리고 NIV, KJV등 영어번역본은 devil, 혹은 demon 이라고 번역하고 있고 "신"을 소문자 god 으로 표기하고 있다. 공동번역은 귀신으로, 한글킹제임스는 마귀로 번역하고 있다. 과연 죽은 자의 영혼이 근래에 일어난 새 신인가? 열조들이 두려워 하지 않던 새 신인가?

 

“저희가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여 이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열방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邪神)에게 제사하였도다.”(시106:34-37)

 

베뢰아 한 사람이 본인과 토론중, 위 성경구절을 예로 들면서 “사신”이라고 기록되어있으므로 죽은 자를 말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신은 한문으로 死神이 아니라 邪神(사악한 신)이다. 즉 이방신들을 섬기던 신은 죽은 자의 사후영혼이 아니라, 사악한 신, 즉 우상이라는 신적존재를 가르킨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고전10:20)이라고 바울이 말하였을 때에, ”귀신“이란 불신자의 사후영혼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적존재의 우상인 이방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방인의 제사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이방신들에게 하는 제사였다. 히브리의 이방인들은 동양적인 무속신앙형태와 같이 죽은 자의 사후영혼이나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다른 신적존재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을 알아야 한다.

 

4. 벙어리 귀신

 

또 베뢰아가 주장하는 것은 소위 “벙어리귀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귀신이 들려 벙어리가 된 것이 아니라, 귀신 자체가 벙어리 귀신이라는 것이다. 즉 조상 중에 벙어리였던 불신자가 제 명을 살지 못하고 죽은 후에, 그 사후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들어와 벙어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기동목사는 배멀미와 차멀미도 조상중에 배사고나 차사고로 죽은 귀신이 들어와서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어쨋든 그들의 주장을 다음 성경구절로 인용해 본다.

 

막 9: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NIV) When Jesus saw that a crowd was running to the scene, he rebuked the evil spirit. "You deaf and mute spirit," he said, "I command you, come out of him and never enter him again."

(KJV) When Jesus saw that the people came running together, he rebuked the foul spirit, saying unto him, Thou dumb and deaf spirit, I charge thee, come out of him, and enter no more into him.

 

윗구절을 굳이 베뢰아의 주장에 맞추려고 하여 직역한다면, 귀신이 벙어리 귀신이며 귀머거리 귀신이 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매우 우스운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벙어리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 귀머거리귀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아이에게서 나갔을까?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막9:26)

 

즉 이 귀신은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아니라, 이 귀신이 들어옴으로 인하여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영적존재가 어떻게 벙어리가 있으며 귀머거리가 있는가? 고막이 없는 영혼과 성대가 없는 영혼도 있는가?

   

이 똑같은 구절이 마태복음에도 기록되어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 귀신이 마가복음과 달리, 눈멀고 벙어리 귀신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데, 어쨋든 마태복음에서는 귀신이 눈멀고 벙어리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귀신들린 사람이 눈 멀고 벙어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귀신들려”라는 구절은 “귀신에게 사로잡히다”(다이모니조마이)이라는 뜻이며,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즉 눈 멀고 벙어리가 되는 것은 사람(아우투스)이라는 명사를 서술한다. 즉 예수님께 귀신이 들린 사람을 데려 왔는데 그가 눈 멀고 벙어리라는 것이다.

 

마 12:22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NIV) Then they brought him a demon-possessed man who was blind and mute, and Jesus healed him, so that he could both talk and see.

(KJV) Then was brought unto him one possessed with a devil, blind, and dumb: and he healed him, insomuch that the blind and dumb both spake and saw.

 

NIV 영어성경이 헬라어를 잘 번역하고 있는데, they brought him a demon-possessed man who was blind and mute, 으로서 blind 와 mute는 demon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man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demon이란 명사가 아니라(다이모니안), 귀신들린(다이모니조마이)이라는 동사이기 때문이다. 공동번역도 마귀가 들려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된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 “그 때 사람들은 마귀가 들려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된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려 왔다. 예수께서는 그를 고쳐 주시자 그는 말도 하고 보게도 되었다”

 

5.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대한 예

 

불신자의 사후영혼은 부자와 나사로에서 보듯이 음부에 갇혀 있었다. 불신자의 사후 영혼은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았으며 고통 속에 있었던 것이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신의 아버지 집에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부자는 나사로를 자신의 아버지 집에 보내어 형제들에게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전갈을 전하여 달라고 부탁한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7-28)

 

부자가 만일 맘대로 다닐 수가 있었다면 왜 나사로에게 아버지의 집에 보내달라고 간절하게 요구하고 있었을까? 어떻게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맘대로 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들어갈 수 있는가? 하나님이 음부에 가두어 고통을 받게 하는데도, 사후영혼이 하나님보다 더 강하여 음부에서 탈출하며 자신들 마음대로 활동한다는 것인가?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

 

심판을 받는 불신자의 사후영혼은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베뢰아의 주장처럼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하나님의 통제에서 벗어나,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들어가며 자신들 마음대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귀신이 성도의 몸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귀신을 제어할 수가 없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을 수가 없다는 것이 되지 않는가?

 

6. 그 밖의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잘못된 주장

 

베뢰아의 귀신론은 모든 질병과 모든 사고가 다 귀신,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말이 안되는 주장이다.

김기동목사는 감기도 안걸리고, 배탈도 평생 한번 안걸리는가? 김기동목사가 감기나 배탈이 나면 그것은 귀신이 들어온 것인가? 역으로 말하자면, 성령이 거하는 성도들은 감기나 배탈도 안걸리고, 사고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김기동목사 자신은 왜 오랜 지병인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자신의 질병이 낫기를 소망하고 있는 다른 교회보다 훨씬 많은 성락교회의 지체부자유 교인들은 왜 치료가 되지 않는가? 성락교회에는 새생명부라고 하는 정신장애 지체자 아동들의 선교단체 모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지체자 아동 중에 단 한명도 치료된 예가 없으며, 단 한번도 치료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성락교회의 한 전도사의 고백은 무엇인가? 김기동목사의 안에는 조상 중에 당뇨병을 앓았던 불신자의 영혼이 들어있단 말인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물론 사단은 믿는 성도들을 유혹할 수는 있으며 시험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도들에게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없다. 불신자의 사후영혼이 음부에서 고통을 받지 않고, 성령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도들에게까지 마음대로 드나들며 질병과 사고를 일으킬 수가 있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에게도 귀신이 수시로 자주 드나들 수 있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인도한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으로 능히 마귀를 이김을 언급하고 있다.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 하지 말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1:28)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또 성경은 귀신이 들었다가 떠난 후에 즉시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이 그 안에 거하게 함으로서, 더이상 귀신이 들지 못하도록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베뢰아는 예수를 믿는 성령이 거하는 성도들에게도 반복적인 귀신들림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실제로 자주 귀신축사를 받는 교인들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예로 보면 베뢰아의 교인들은 귀신이 한번 쫓겨나간 후에도 성령이 없고 비어있단 말인가?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 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마12:43-45)

 

게다가 임신부의 헛구역질도 귀신탓이며, 배멀미, 차멀미도 조상중에서 차와 배 사고로 죽은 조상의 영혼이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기초과학적인 상식조차 없는 무지한 궤변이다. 차멀미나 배멀미는 죽은 조상의 영혼이 아니라, 귀 속에 있는 균형감각기관의 이상 때문이다

 

게다가 김기동목사는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영혼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매우 심각한 비성경적인 행위를 초래한다. 성경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고 대화하는 무당과 접혼자의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를 죽이라고까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김기동목사가 귀신을 죽은 자의 영혼이라고 정의한다면, 귀신과 대화하며 귀신을 불러내고 쫓아내는 행위는 죽은 자를 불러내고 대화하는 행위가 되어 버린다.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모두 직접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의 경험담을 정리한 체험담이라고 하였다. 김기동목사는 성경말씀을 진리로 믿는가? 아니면 귀신의 주장을 진리로 믿는가? 또한 그가 만일 죽은 자의 영혼, 즉 귀신을 불러내어 대화를 하며 그 귀신을 축출하였다고 한다면 그는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가 없고 그는 신접자나 초혼자라고 불리워져야만 한다. 그는 죽은 자의 혼백을 불러내 대화를 하고, 욕설을 하고, 그 혼령을 쫓아내고 있음으로 그는 성경에서 절대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하는 반기독교인이 분명하다. 성경은 신접한 자. 초혼자, 박수무당등을 죽이라고까지 말하며 철저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18:11. 레19:31. 20:6. 출22;18)

 

그러나 "제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가 귀신이 된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어긋나는 말로서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되는 말이다. 인간의 수명을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으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마10:29). 만일 인간의 수명을 하나님이 정하고 또 하나님이 죽게 하는데, 남은 자연수명만큼 귀신으로 일하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불의한 분이며, 귀신으로 만드시는 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표적과 기사로 인한 믿음을 좋아하지 않으셨으며 책망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아무리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도 주님은 그것을 불법으로 인정하여 주님 앞에서 떠나가라고 말하실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7) 귀신이 거하는 곳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에 거하며, 귀신은 육체로 거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마귀론 하 154쪽)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마귀론 하 63쪽)

 

즉 하나님은 사람의 심령에 거하며 귀신은 육체로 거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믿는 성도에게도 그 영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육체에는 귀신이 거한다는 주장으로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동시에 하나님과 귀신이 함께 거하게 되어진다는 해괴망칙한 주장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의 몸 안에 하나님과 귀신이 동시에 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김기동목사의 이러한 주장은 사람을 전인적(全人的)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과 육의 이원론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죽어서만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지며, 살아 생전에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는 전인적(全人的) 존재라는 것이 성경적인 견해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김기동목사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지방교회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주장과 동일한 것이다.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글을 읽어보자.

 

-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왕국, 218쪽)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주장과 동일하다. 게다가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양태론적 삼위일체도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와 동일하며, 기독론과 인간론등 비슷한 점이 너무나 많이 발견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헬라철학적인 이원론이 비성경적일까?

성경은 영혼과 육체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

 

- 내 영혼(soul, 네페쉬)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니"(시63:1)

 

또 사도행전에서는 구약 욜2:28-30에서 예언한 것을 그대로 인용하여, 성령을 "육체"에 부어준다고 하였다. 즉 육체는 귀신이 거하는 곳이라는 베뢰아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또 바울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라고 말하였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그렇다면 베뢰아의 주장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김기동목사의 귀신론은 일관성조차 없다.

 

“육신은 끊임없이 귀신들의 공격과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령이 거룩함같이 우리의 육신도 거룩하면 이를 대항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주님의 보혈로 거룩해지고 육체도 말씀을 순종함으로 거룩해지기에 우리에게는 귀신이 들어와 머물 수가 없습니다.”(마귀론 하 155쪽)

 

김기동목사는 우리의 심령과 육체가 별도로 분리되고 구별되어진다고 주장한다.

심령이 거룩한 사람도 그 육신은 거룩하지 못할 수가 있다는 주장으로서, 심령과 육신을 분리시키는 주장으로 헬라적인 이원론이 분명하다. 더욱이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면 육체가 거룩하여 진다는 것도 이상하다. 인간을 전인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영혼 따로, 육체 따로 말하는 것도 참으로 황당하다.

성경에서 "육신의 소욕"이라는 말은 언급되지만, 그것은 누가 보아도 영혼을 배제한 육체만의 소욕이라는 뜻이 아니라, 육체적인 욕망을 언급하기 위함이다.

김기동목사의 다음 주장을 살펴보자. 또 바뀌게 된다.

 

“귀신이 영적존재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과 육체 어느 부분에나 쉽게 침범 할 수 있으며 또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마귀론 하 113쪽)

 

이 주장은 무엇인가? 방금 전까지 영혼에는 귀신이 들어 올 수가 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마음과 육체 어느 부분에나 쉽게 침범할 수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다음 주장을 한번 보자. 또 달라진다....

 

“귀신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의 중간계통에 들어가 신경계통과 의지 속에 있게 됩니다. 귀신은 신경계통과 의지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동물 속에도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동물은 비인격체이기에 귀신이 인격적인 역사는 못하나 신경동작으로는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신경이 통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거처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귀론 하 173쪽)

 

이젠 귀신이 육체와 영혼의 중간계통인 신경계통과 의지속에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신경계통이 영혼도 아니고 육체도 아닌 중간단계라는 주장도 황당하지만, 이번에는 영혼도 아니고 육체도 아니고 중간단계로 들어온다는 주장이다.

원래 베뢰아 김기동목사가 주장하는 "귀신"이란 제 명에 죽지 못한 죽은 자의 영혼이다. 그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모두 귀신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며, 차멀미, 배멀미, 임산부의 헛구역질도 모두 귀신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제 그가 말하는 또 다른 주장을 들어보자......

 

“예를 들어 발가락 끝에 신경이 있다면 귀신은 그곳에 고통이 있게 하며 그곳을 사역할 수 있는 장소로 삼습니다. 이 신경계통을 의식 또는 마음이라고도 합니다.”(마귀론 중 110쪽)

 

앞에서는 신경계통을 육체와 영혼의 중간계통이라고 말하다가, 이젠 신경계통을 의식,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김기동목사가 의학적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발가락 끝의 신경을 김기동목사는 마음 혹은 의식이라고 하는가? 김기동목사가 이가 아프다고 가정하자. 김기동목사는 치신경이 아픈 것인가? 혹은 치아의 의식과 마음이 아픈 것인가? 더욱이 김기동목사는 이가 아픈 것이 육체와 영혼의 중간단계가 아프다고 하는가? 치과에 가서 신경치료를 하면 그것이 의식과 마음치료인가? 이번에는 또 어떤 주장을 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귀신은 사람의 의지를 속이고 들어 오기 때문에 7세 이하의 아이들은 의지가 어머니에게 있어 그 어머니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면 됩니다. 그러나 7세 넘은 아이들은 엄마에게서 의지가 벗어나 아버지에게로 옮겨갑니다. 이들의 의지가 엄마속에 있을 때는 엄마를 무서워 하지만 엄마에게서 벗어나면 말을 잘 듣지 않고 아버지를 더 무서워 하는 것입니다. 대략 8세부터 15세 까지의 의지는 아버지에게 속합니다. 그러나 그 때의 의지는 자기의 의지 절반, 아버지의 의지 절반입니다.”(마귀론 중 116쪽)

 

즉 7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의지가 엄마에게 있으므로 귀신이 그의 어머니의 의지로 들어오고 8-15세의 어린이는 의지가 아버지에게 있으므로 귀신이 아버지의 의지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도가 지나쳐 마치 코메디를 보는 듯 하다. 즉 7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어머니의 의지 안에 있고, 8-15세의 어린이는 그 의지가 절반이 아버지의 안에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7세 이하의 어린이를 꼬집으면 어머니가 아프며, 8-15세의 어린이를 꼬집으면 아버지가 아픈가?

신경계통이 마음과 의지를 말한다는 김기동목사의 주장이 맞는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신경계통이 청결한 자는 복을 받는다는 말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의지)을 다하여....."는 신경계통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인가?

 

김기동목사의 무지와 비상식은 일단 덮어두자.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도대체 귀신이 육체로 들어 온다는 것인가? 신경계통으로 들어 온다는 것인가? 육체와 영혼을 맘대로 드나든다는 것인가? 마음과 의지로 들어온다는 것인가? 게다가 7세 이하의 어린이는 어머니의 의지로 귀신이 들어 온다면, 7세 이하의 어린이는 마음과 의지도 신경계통도 없는 허수아비란 말인가?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마음과 의지와 신경계통이 반은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