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대표에 대한 최바울의 1억 민사소송, 기각


최바울은 과연 회개하였는가?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43



이인규  |  dsme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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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12월 02일 (화) 22:22:47
최종편집 : 2014년 12월 03일 (수) 01:15:11 [조회수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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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이단대책연합 대표 이인규


인터콥 최바울이 직접 필자에게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왔으나. 2014년 11월13일 판사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기각을 시켜 버렸다.


그동안 인터콥은 필자를 2번의 방송통신위원회 제소, 4번의 형사고소, 1번의 민사소송, 도합 7번의 소송을 걸어왔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필자가 승소하였다(아직 1건의 형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최바울은 이 민사소송에 대해서 다시 항소를 하였다.


2013년 4월과 6월에 인터콥의 이단성에 대해서 예장개혁과 예장합신에서 2회 인터콥 공청회가 열렸다. 그 2번의 공청회에서 필자는 인터콥의 반대측 패널로 초청을 받았다. 2회의 공청회에서 필자는 인터콥 최바울의 이단사상을 들추어 냈는데 즉 (1) 베뢰아 사상 (2) 신사도운동 사상 (3) 극단적세대주의 사상 (4) 인터콥은 지도를 받았지만 회개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잘못된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는 증거를 동영상과 스크랩자료를 통하여 보여 주었다.


그 후 2013년 9월 총회에서 통합, 합신, 고신, 합동등 국내 4개 교단은 이단성/교류금지/교류자제를 규정하였고, 미주 예장합동총회, KAPC, 미주 남침례교단 등 미주의 3개교단은 이단/교류금지/교류자제를 규정하였다.


금번 민사소송은 2014년 11월13일에 판결되었는데, 인터콥의 대표인 최바울이 직접 필자에게 1억을 손해배상 청구한 것으로서, 재판부는 이것에 대해서 피고의 주장은 명예훼손이 아니며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기각을 시켰다.


이 민사소송은 두가지인데, 첫째는 인터콥 최바울은 2013년 4월 예장개혁 공청회가 끝난 후 5월에 성락교회에서 “최바울은 성락교회 공식선교사로 파송된 적이 없다”는 확인서를 받아 필자를 고소한 것이며, 둘째는 인터콥의 간사가 형사고소를 한 건에 대해서 최바울을 고소인이라고 기사를 쓴 글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첫째 소송은 최바울 자신이 성락교회에서 1년7개월 동안만 있었으며, 성락교회의 이단성을 스스로 알고 단절하였으며, 1983년 KTM이라는 단체에서 터키선교사로 파송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최바울이 미주 아멘넷 신문에서 인터뷰를 한 정확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 터키 선교사로 파송될 때는 이미 성락교회에서 나왔기 때문에 한국개척선교단(KTM) 당체에서 파송을 받았습니다. 최바울 선교사는 1983년 KTM 파송 선교사이며, 그후 1989년 온누리교회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온누리교회 장로로 임직되었습니다.”


위의 주장은 최바울 자신이 베뢰아 출신이며 베뢰아 사상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필자는 최바울이 1983년 성락교회에서 김기동목사를 주례로 결혼식을 하고 그 다음날에 CBA에서 터어키 선교사로 파송되었기 때문에 (1) 이미 성락교회를 단절했다는 것도 거짓말이며, (2) 1981년부터 성락교회 대학부에 있었기 때문에 1년7개월 동안만 있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3) KTM이라는 단체에서 1983년에 파송되었다는 것도, KTM은 최바울 자신이 1987년에 만든 단체이므로 거짓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가장 쟁점이 되는 사항은 교리적인 문제이다. 필자는 최바울의 책 여러 권에 베뢰아 사상이 나타난다고 일일이 지적한 바 있는데, 이러한 점은 이미 미주의 몇몇 목사들(정이철목사, 김한길목사등)도 동일하게 비판한 바 있었고, 특히 성락교회 수석 부목사로 있다가 미주 뉴욕에서 건전한 목회를 하고 있는 허홍선목사는 직접 CBA를 담당했던 목사였는데, 인터콥 최바울이 “하나님의 의도”라는 베뢰아 사상을 “하나님의 사정”이라는 제목으로 이름만 바꾸어 쓴 것이라고 뉴스앤조이에서 지적하였으며, 최바울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라”고 충고한 적이 있었다.


민사재판 소송에서 필자는 최바울이 현재에도 베뢰아 교리적 사상을 갖고 있으며, 1년 7개월 동안만 있다가 성락교회를 단절한 것이 아니며, 1983년에 KTM이라는 단체에서 터키 선교사로 파송된 것이 아니라, 성락교회 대학부 CBA에서 파송한 것이라는 여러 증거자료를 제출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1) CBA 홈페이지 자료

2) CBA 창립 31주년 기념 잡지

3) 외국어대학 CBA 약력

4) 최바울과 함께 1981년에 성락교회 대학생부에서 활동했던 증인의 확인서 (1983년 결혼식에도 직접 참여하였다고 증언)

5) 허홍선목사의 뉴스앤조이 기고

6) KTM이 1987년에 개칭되었다는 인터콥 약사


  
▲ CBA외대약사
  
▲ CBA잡지
  

▲ CBA홈피


또 1981년에 성락교회 대학부에서 최바울과 함께 활동했던 한 증인의 중언은 최바울의 베뢰아 가입이 1982년부터라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말하여 주며, 이 사실은 외대 CBA 약사에서도 1981년부터 외대에서 최바울이 성락교회 대학부를 만들었다는 것이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증인에 대해서는 CBA를 담당했던 허홍선목사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 증인의 확인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서울의 대학권역을 넷으로 나누고 남부는 최현0, 중부는 김명0, 동부는 최한우, 서부는 김원0이 각각 대표를 맡아 운영하도록 하였다. 역시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부는 잠시 정체를 보이다가 연말부터 다시 부흥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1981년은 끝이 났으며, 나는 그곳을 떠났다. 1982년에 제3대 대학부 회장으로 최한우 형제가 선출되었다고 들었다. ....


또한 30년도 더 지난 요즘 최한우 형제가 쓴 책에 김기동씨의 베뢰아신학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고 도마에 올라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1983년 CBA에서 처음으로 파송한 터키 선교사로 알고 있다. 그가 성락교회를 떠난 것은 성락교회 교리가 잘못된 줄 알고 떠난 것이 아니라, 당시에 김기동씨가 해외선교에 대하여 전혀 비젼이 없음을 확인하고 떠난 것으로 들었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김기동목사의 베뢰아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 지에 대해서 알았을 턱도 없다.”


“000 자매는 최한우씨의 아내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여대 출신이었지요. 그날 김기동씨가 1층 소강당이란 곳에서 주례한 그 결혼식은 ....(사생활 보호로 삭제)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가 터어키로 갔으니까요. 태권도 사범으로 유학생으로 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출발점의 소속은 분명 성락교회였고, CBA는 아마 자기들이 파송한 첫 선교사로 터키 선교사 최한우를 기억할 것입니다.”


최바울은 이미 성락교회를 단절하고 나왔다고 하였는데,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에 단절한 사람이 김기동목사를 주례로 성락교회에서 결혼식을 할 수는 없다. 이미 베뢰아와 단절하고 1983년 KTM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고 주장한 것도 거짓말인데, KTM은 최바울이 1987년에 자신이 스스로 만든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식을 하고 터키로 떠난 그 다음날부터 성락교회와 단절하였을까? 이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 날 결혼식은 CBA 출신 교인들이 많이 참여하였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더많은 증인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있다. 만약 최바울이 성락교회와 정말로 단절할 생각이었다면 CBA 교인들을 하객으로 초청하지 않았어야만 했다.


또한 1982년부터 성락교회 대학부에 있었다는 주장도 거짓말인데, 1981년에 최바울은 대학부 모임 동부 대표를 맡았기 때문이며, 외대 CBA 약사에 의하면 1981년에 외대 성락교회 대학부 모임을 최바울이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콥의 조옥0 간사는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어 “이 증거자료가 게시중단되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자신들이 게시중단하였다고 하여 법적인 증거자료가 없어진 것인가?


무엇보다도 베뢰아의 사상이 최바울의 여러권의 책들에 지금도 남아있다는 것이 가장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다. 베뢰아만이 주장하는 매우 특이한 교리와 용어를 최바울이 그의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최바울의 교리적 사상이 베뢰아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최바울은 후에 세계영적도해의 하나님의 사정을 수정하였다고 주장하였지만, 다른 책에도 여전히 베뢰아 사상이 계속 기록되어있다.


허홍선 목사의 충고와 같이 최바울은 처음부터 베뢰아 경력과 사상을 모두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수정을 하였어야만 한다.


심지어 KWMA의 지도를 받은 도중에 제목을 바꾸어 발간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책에도 베뢰아 사상이 그대로 있으며, 선악과를 지식으로 보고 음녀를 자유의 여신으로, 적그리스도를 정치가로, 666을 컴퓨터 시스템으로 보며 프리메이슨과 음모론을 주장하는 극단적이고 변질된 위험한 세대주의 사상도 책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자신의 사상을 감추기 위하여 고소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으며 수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민사소송의 두 번째는 첫 번째 형사고발에 대해서 <교회와 신앙>이 “고소인 최바울”이라고 기사를 쓴 것에 대해서 소송을 걸어왔다.

첫 번째 형사고발의 실제적인 고소인은 인터콥의 간사 박철0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고소인이 최바울이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으며, 단지 <교회와 신앙>의 기자가 “고소인 최바울”이라고 기사를 썼던 것을 카페에 올려 놓은 것이다.


물론 첫 번째 형사 고발사건은 불기소되었으며, 검찰의 불기소 사유서에는 “고소인 최바울”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교회와 신앙의 기자는 이 사유서를 보고 그대로 기사를 작성한 것뿐이었다.

또 이 사건을 조사 받을 때에 필자는 조사관에게 “최바울의 책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인데 왜 제 3자인 인터콥 직원이 고소를 하느냐?”라고 반문을 하자, 조사관이 직접 인터콥에 전화를 하여 최바울과 통화를 하였다.

 조사관이 질문을 하자 최바울은 이 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있었으며, 고소를 한 문제점에 대한 설명과 해석도 전화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답변하였던 것을 보면 그 고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마지막에 형사가 “이인규를 형사처벌하기를 원하느냐”고 묻자 “처벌을 원한다”고 최바울이 답변하였고, 이 사항이 그대로 당시 조서에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었으므로 법정 증거자료로 제출되었다. 즉 담당 검사는 고소인을 최바울로 볼 수 밖에 없었으며, 판결문의 사유서에 고소인을 최바울로 기록하였고, 이것을 본 교회와 신앙의 기자는 고소인을 최바울로 기사를 올렸다.


더욱이 이 고소는 미주의 정이철 목사도 함께 고소하였는데, 미국까지 조사를 할 수 없으므로 취하를 하였고, 그 고소를 취하한 것이 바로 최바울 본인이었다. 만약 이 사건의 고소인이 최바울이 아니라면 왜 최바울 자신이 직접 고소를 취하하였는가?

무엇보다도 인터콥 간사들의 고소는 결국 인터콥의 대표자인 최바울에게 그 책임과 대표성이 있다고 본다. 인터콥의 조옥0 간사라는 자는 합싱이단상담소장 박형택 목사와 필자를 형사 고소한 후에 불기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내용이 민사로 다시 소송되었지만, 또 동일한 내용을 다시 형사 고소한 적도 있다.


아래는 최바울이 CBA 파송 선교사라고 한 부분에 대한 판결문이다

“피고(이인규)는 원고(최바울)의 이단성 검증의 목적에서 위 컬럼을 작성한 것이고 종교적 비판의 행위가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이인규)가 위 컬럼을 작성한 것은 위법성이 없다. 따라서 위 컬럼 작성행위가 불법행위 임을 전제로 한 원고(최바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없다.”


판사는 이 두가지가 모두 피고에게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기각을 시켰다.

즉 최바울의 베뢰아 경력에 대한 민사소송은 스스로의 이단적인 교리를 감추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는 2013년과 2014년에도 계속 인터콥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증거자료와 함께 이단사상을 주장하는 기사와 동영상을 폭로하여 왔는데, 그 자료에 의하면 인터콥 최바울은 아직도 회개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도 수정하겠다고 약속한 내용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고, 고치겠다고 하는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예를 들면 회수하여 폐기시키겠다는 책들은 2014년에도 그대로 판매되고 있었으며(필자는 실제로 2014년 8월에 최바울의 책을 구매하여 보았다), 또 중단하겠다고 하는 비젼스쿨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었으며, 문제가 많은 평신도 강사들은 종전과 같은 강의와 설교를 계속하고 있었다.


 최바울 자신조자 “지식의 나무”라는 극단적세대주의적인 글을 인터콥 홈페이지에 그대로 올려놓고 있었으며 최바울의 책은 아직도 극단적세대주의 내용이 발견되어진다. 최바울은 소위 극단적세대주의, 변질적세대주의라고 불리는 사상을 갖고 있으며, 많은 교단 이대위와 교수들은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2012년에 최바울은 자신이 세대주의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동영상이 발견되었는데, 2014년에도 최바울은 인터콥 내부에서 설교하는 동영상을 통하여, “한국에서 일부 무지한 사람들이 우리를 극단적세대주의라고 비방한다”고 하면서 비난을 하는 내용이 있다. 심지어 KWMA에서도 극단적세대주의에 대한 내용을 지도하겠다고 발표하였으며, 교수들을 비롯하여 합동교단, 고신교단, 합신교단에서도 극단적세대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에 최바울은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 전혀 회개를 하지 않았고 수정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회개하고 수정하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내부에서는 자신을 비판하는 교수와 목사들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동영상을 보면 단기선교를 보내는 것에 대해서 담임목사의 허가를 받겠다고 약속한 것조차 지키지 않고 “우리가 배후에서 메일을 보내고 있으니 단기선교를 가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최바울은 자신의 사상과 인터콥의 방향을 회개하고 고치고 수정하는 대신에 교계에서 유명한 목사와 교수들을 이사장, 고문으로 방패를 세워서 그 그림자에 숨는 수법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현재 강승삼 목사가 인터콥 이사장으로, 길자연 목사가 이사, 김명혁 교수와 박종순목사가 고문으로 세워졌고,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가 최바울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글과 김재성 교수가 인터콥을 지도하자고 하며 선처를 부탁하는 글, 또 예장개혁에서 인터콥은 이단성이 없다고 확인서를 써주었던 글을 파일로 묶어서 국내외의 교단과 단체에 배포를 하였던 적이 있었다.


인터콥을 영입한 예장개혁에서는 인터콥 지도위원장인 한창덕 목사는 타교단의 이대위원장에게 인터콥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 적이 있었으며, 인터콥 조사위원장이었던 황호관 목사는 미국 KAPC 총회에 직접 가서 인터콥에 대한 재심청원을 하였으나 재심불가라는 답변을 얻고 창피를 당하고 돌아 온 적도 있었다.


또한 2014년 총회에서는 고신의 전태 목사가 인터콥의 지지와 변호에 대한 기사를 코람데오닷컴에 올리며 변호하였고, 합동에서는 신학부 서기인 정희수 목사가 인터콥을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 재심을 요청하였다는 기사가 신문에 올라왔다.

그들은 왜 인터콥을 도와주고 옹호하여 주는가? 인터콥의 교리적 사상과 정체를 모르기 때문일까? 혹은 인터콥과 교류가 있기 때문일까?


문제가 있는 줄을 알면서도 해외선교를 하기 때문에 인터콥을 살려야 한다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해외진출을 하는 구원파를 비롯하여 해외에 전도를 하는 적지 않은 이단들은 왜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왜 인터콥보다 이단성이 가볍지만 규모다 작은 단체에 대해서는 살려야 한다는 변호를 하지 않을까?


인터콥이 거짓말을 한 증거를 보자.

인터콥이 2008년 예장합동에서 이단성으로 규정된 G12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타나게 되니, 인터콥은 일부 대학생들이 스스로 G12를 하였으므로 금지시켰다고 변명을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터콥의 자체 컬리큘럼 교육항목에 G12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고, G12 홈페이지에는 인터콥이 파트너로 등록되어 있었다.


또한 인터콥이 신사도운동을 하였으며 아이합과 연합하였다는 증거와 자료는 갖고 있으며, 이러한 비판을 받게 되자 최바울은 인터콥 홈페이지에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다.

역시 베뢰아에 대한 비판을 하자 역시 최바울은 인터콥 홈페이지에 베뢰아의 이단성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다.


책을 모두 회수하고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약속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비젼스쿨을 중단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최바울이 올린 글과 그의 책들에 기록된 극단적세대주의에 대한 내용이 수없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극단적세대주의가 아니라고 변명을 해왔으며, 한국 교계에서 일부 무지한 사람들이 자신을 극단적세대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하였지만, 최바울의 책을 연구한 교수들과 이대위 목사들은 한결같이 그의 극단적세대주의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회개를 할 수 있는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고소와 고발을 남발하는 자가 어떻게 회개를 하였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


기독교 신문기자들에게도 기사를 내리지 않으면 고발을 하겠다는 협박전화를 하였다고 하며, 어느 신문기자는 최바울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협박한 내용을 녹음하였다. 심지어 모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어 글을 삭제하라고 하였으며, 인터콥 간사 한명은 “사단의 앞잡이에게”라는 제목으로 필자에게 메일을 보냈고 몇몇 이단연구가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미국의 이단연구가들도 내용증명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증언을 하고 있다.


필자는 누구든지 진정으로 수정하고 고치겠다고 한다면 아무 조건없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용의가 있다. 실제로 몇몇 단체는 필자가 아무 조건없이 많은 도움을 주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단과 문제단체의 지도자는 대외적으로는 고치겠다고 쉽게 말하지만, 대내적으로는 고치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자신이 옳다고 가르친다. 첫째, 뿌리깊이 박혀있는 사상은 쉽게 바꾸기 어려우며, 둘째, 대내적으로 그동안 가르쳤던 것들을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그 자체가 곧 자신의 카리스마적인 권위까지 무너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인터콥 최바울은 많은 교단들이 지적하였다.

그 중에서 예장합신은 심각한 이단성, 교류금지를 내렸고,

예장합동은 교류단절을 내렸으며,

미주 예장합동총회는 이단으로 규정하였고,

미주 KAPC는 재심불가를 결의하였다.

다른 교단들은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단체임을 감안하여 교류금지, 교류자제, 예의주시를 규정하였는데 인터콥 최바울이 아직도 자신의 문제점을 감추고 위장하면서, 수정을 하지 않고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이단으로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문제단체의 앞에서 도와주는 인사들에 대해서 교단은 철저한 조사를 하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