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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론과 기독론에 대한 최바울의 위험한 주장

 

                                                                                                          이인규

  

 

어느 교수 한분이 필자에게 어느 단체를 이단이라고 하려면 삼위일체나 기독론, 구원론과 종말론등에 정통신학과 다른 심각한 문제점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필자는 최바울대표의 신론과 기독론, 구원론과 교회론, 종말론에 모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더욱이 그의 구원관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개념이 아니라, 이원론적으로 사탄을 멸하는 것이며, 그의 종말론은 인위적으로 왕의 군대인 인터콥이 예루살렘으로 얼마만큼 빨리 서진을 하느냐는 것에 따라 늦추어질 수도 있고 앞당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가 주장하는 적그리스도와 사탄의 정체는 선악과로 비유되는 지식 자체이며, 자본주의이고, 컴퓨터경제체제를 부정하고 거부하여야 하는 것으로서,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의적인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영적전쟁의 개념은 땅끝 예루살렘이 세계단일정부의 수도이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지는 사탄의 본거지라는 것으로서 지역적이고 물질적인 개념이 되어진다. 또한 신사도운동과 아이합의 사상을 그대로 추종하면서도 그것을 수정하고 회개하기는 커녕, 그들의 사상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대외적으로 감추고 위장하는 데에 급급하고 있다.

                 

베뢰아가 이단이면 그 사상을 갖고 있는 자도 이단이고, 다락방의 이원론이 이단이면 그 사상을 갖고 있는 자도 이단이 되어야 한다. 신사도운동과 아이합이 이단성이 있고 위험한 사상이며 교류금지라면 그 사상을 갖고 있는 자는 이단성이 있고 위험하며 교류금지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극단적인 세대주의의 종말론이 이단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면 데이비드 차 혹은 구원파와 같은 종말적인 비유해석을 우리가 이단성이 없다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중국의 5대 이단에 포함되는 중생파 슈용쩌가 주장했던 백투예루살렘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모든 사상을 혼합하여 포함하는 인터콥이 이단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터콥에게 심각한 이단성이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지도와 자문을 받겠다면 도와 주겠다고 했지만, 인터콥에게 이단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결코 도와줄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혹은 모종의 커넥션의 의심이 없는지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이미 인터콥의 이단성과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수년동안 거의 다 드러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인터콥은 전혀 회개하거나 수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최바울의 양태론과 기독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양태론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최바울의 여러권의 책들에는 베뢰아사상이 많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베뢰아 출신에게는 치명적인 양태론 사상이 발견되어진다. 먼저 최바울의 양태론적인 주장을 살펴보자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완벽하게 당신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정말 엄청난 사건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에서 부활하신 이 사건은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죽으셔야 했을까요? (최바울, 세계영적도해, 21쪽)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은 당연히 성부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바로 뒤에 계속하여 "그러면 왜 하나님이 죽으셔야 했을까요" 라고 묻고 있다.   

물론 예수가 하나님이며, 성령도 하나님이라는 것은 정통신학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라고 하거나, 하나님이 성령이라고 오해가 다분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들은 "로고스" 혹은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고 하거나, "성자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표현이다. 특히 정통삼위일체는 인격적인 구별을 하여야 한다.

     

최바울의 책에는 양태론이 많이 발견되는데, 그것을 비판하면 최바울은 성자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변명을 한다. 그렇다면 그는 처음부터 성자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을 일부러 사용하고 있을까? 차라리 성자하나님이라고 기록하거나 로고스라고 하였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래 구절에서 나타나는 세 하나님이라는 주어가 동일하게 하나님이라는 표현이라면 최바울은 양태론이 분명하다.

               

-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영으로 증거하시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육체를 입고 오셔서 천국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해진 성도들의 육체 가운데서 임하셔서 천국복음을 증거하게 합니다(최바울, 왕의 대로, 75쪽)

               

위 글에서 최바울은 동일한 하나님의 명칭으로 세 번을 지칭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 하나님은 성부하나님을 지칭한다고 보아야 하고, 두 번째 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을 지칭하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하며, 세 번째 하나님은 의미적으로 당연히 성령하나님을 지칭하는 내용이다. 즉 최바울은 위 본문에서 세분의 인격적인 구별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내용이 신학적인 무지나 혹은 착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최대한 인정하여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이 계속 고의적이며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양태론이라고 밖에 볼 수 밖에 없다. 그가 여러권의 책에서 보여준 베뢰아 사상으로 판단하건데,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계열 인사들은 모두 양태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양태론적인 표현을 더 살펴보자. 만약 아래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이라면, 더욱 이해가 안된다. 더욱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이라는 구절에서 전자의 하나님과 후자의 하나님이 다른가?

                 

-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하나님도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 인간계에 진입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이 연상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사단은 가장 간교한 육체인 뱀의 모습을 입고 들어왔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은 가장 고위한 육체를 입고 들어왔다는 사실이, 분명 아주 근본적인 천국의 비밀을 말해 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27쪽)

                

"하나님을 닮은"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뜻할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성자하나님의 형상으로 해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약에서 엘로힘은 복수명사이며, 엘로힘이 성자하나님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엘로힘이 복수명사이므로 인칭대명사가 "우리"라고 사용되었지만, 창1:37의 "그의 형상"은 남성단수명사 His image 가 사용되었다.  더욱이 예수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성경은 표현을 한다. 

            

특히 아래 구절에서 하나님이라고 한 주어가 인격적으로 같은가 다른가? 누가 보아도 동일한 표현이다.

만약 최바울이 양태론자가 아니라면, 그는 삼위의 인격적인 주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음 구절에서도 명확하게 양태론이 나타난다.

                 

-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어찌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육신의 옷을 입고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35쪽)

                  

누구라도 위 본문을 읽으면, “여자의 후손”은 예수를 말할 것이고, 그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성부하나님을 뜻한다고 해석할 것이다. 그런데 최바울은 “여자의 후손”이 “하나님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셨다”고 표현을 하고 있다.

                   

이것이 양태론이 아니라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내용을 올려놓고 "놀라운 사실"이라고 설명까지 하고 있다.                  

최바울의 변명대로 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인정하여 주자.  성자하나님이 언제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는가? 더욱이 예수님이 성자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오셨는가?

           

특히 인터콥의 최바울이 자신의 여러 책에서 반복하여 말하는 것으로서, 영이신 하나님과 사탄이 인격이 없으므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신들의 전쟁을 벌이는 것이 "인류역사의 실체"라는 것에 유의를 하여야 한다.

                        

최바울이 반복하여 밝히는 이러한 이원론적인 대결은 당연히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을 뜻하며, 이것을 성자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 "인류역사의 실체"가 과연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동일하게 육신을 입은 사탄과 싸우는 것인가? 만일 그 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이라면, 성자하나님이 계속 육체로 오셔서 지금도 사탄과 전쟁을 하고 있다는 이상한 뜻이 되어 버린다.

                      

최바울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것과 사탄이 육신을 입은 것, 두 부류로 구별하여 전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신들의 전쟁을 "인류 역사의 실체"라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은 실수나 착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그의 책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사건은 오직 예수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하여야 한다.

                    

성령이 내주한 성도들도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나타난 것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양태론뿐이 아니라 기독론에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최바울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나타난 것을 인류역사의 실체이며 영적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책에서는 인간계의 실상이며 실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그러자 하나님도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등장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단이 인간세계에서 마치 “신들의 전쟁‘을 전개하는 듯 합니다. 이러한 사건을 무시하고 인류역사를 해석할 수 없습니다. 사단의 에덴침입과 하나님의 성육신을 떠나서 “인간 역사는 무엇인가?”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인류 역사의 실체는 영적 전쟁 그 자체입니다.(최바울, 왕의 나라, 10쪽)

                        

- 그후 세월이 흘러 하나님도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십니다. 사단은 사악한 뱀의 육체를 입고,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단이 육체로 오자 하나님도 육체로 임하십니다. 그리고 일종의 ‘신들의 전쟁’이 시작됩니다(최바울, 왕의 군대, 19쪽)

                      

-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혈육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망 권세 잡은 자 마귀를 없이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아닌, 인간을 자유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단도 육체로 인간계에 들어오고 하나님도 육체로 인간계에 임하십니다. 사단도 육체를 입고 인간계 곧 에덴에 진격하고 하나님도 결국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진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영적전쟁이 계속됩니다, 이것은 엄청난 하늘의 전쟁, 영적전쟁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계의 실상이요, 실제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이러한 하늘의 전쟁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최바울, 왕의 군대, 21쪽)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오신 것을 최바울은 "인간계의 실상이며 실제"라고 말하며, "인류역사의 영적전쟁의 실체"라고 말한다. 즉 인류역사를 통하여 성령이 내주한 기독교인을 최바울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싸우는 영적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방교회와 같은 또다른 이단사상이다.

                          

최바울의 책을 보면 성자하나님 혹은 로고스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다고 썼다고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바울은 "하나님이 직접" 또는 "하나님 자신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삼위의 인격적인 구별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최바울이 양태론이 아니라면 아래 구절들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재림예수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오시는가? 이런 주장은 우주적이며 가시적, 신체적인 재림예수를 부정하는 주장이 되므로 완전한 이단적인 주장이 된다. 그러나 최바울이 말하는 다시 오시는 예수는 곧 성령이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온 성령을 예수로 표현한 것이다. 양태론자들은 성령의 내주를 개인적인 예수의 재림으로 생각한다.

                  

- 메시야(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믿음의 계보를 통해 오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오신 것입니다. 다시 오심도 동일하게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오실 것입니다.(최바울, 왕의 대 로, 190쪽)

                    

예수의 초림은 분명히 다윗의 족보를 통하여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오셨다. 그러나 재림예수가 동일하게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오실 것인가? 이것은 예수의 우주적이며 가시적인 재림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주장이다.

위 글과 아래 글은 동일한 내용이라고 보여지며, 결국 성령과 예수, 성부를 구별하지 못하는 양태론을 뜻한다. 최바울은 예수가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이 성도들의 육체 가운데 임한다고 말한다.

                  

-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영으로 증거하시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육체를 입고 오셔서 천국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해진 성도들의 육체 가운데서 임하셔서 천국복음을 증거하게 합니다(최바울, 왕의 대로, 75쪽)

                   

또한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에 예수님이 이미 어린 양의 모습으로 계시는가? 최바울은 우주적이고 가시적이며 인격적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를 부정하는가? 아래 구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나 양태론적으로 볼 때에는 성령이 곧 예수이므로 성령이 내주한 사람들의 성령을 곧 재림하신 예수로 “이미 계시다”고 표현되어질 수 있다.

 

- 마지막 때에 사악한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입니다. 그 자는 세계통합제국을 지배하는 짐승입니다. 그는 절대권력을 가지고 세계를 통치하여 성도들의 권세를 꺾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포악한 짐승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포악한 행패를 부리는 바로 그 때 예수님은 어린양의 모습으로 계실 것입니다(최바울, 왕의 나라, 12쪽)

                    

2) 성육신

 

이러한 양태론적인 증거가 최바울의 책을 통하여 수없이 나타나는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방교회와 같이 사람이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골적인 증거가 나타난다. 또 정통교회와 정통신학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글은 최바울의 책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최바울은 캘빈주의를 종교이데올로기의 포로, 종교기계라고 비난한다. 다시 말하면 최바울대표가 주장하는 ‘성육신의 사상’은 개혁주의의 신학과 전혀 다르며 캘빈주의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이론이라는 증거가 된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하신 성령과 성육신은 다르다. 성령내주를 성육신으로 표현하는 곳은 지방교회와 다락방이다. 성육신의 영은 성령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성육신적 사역의 개념이 캘빈주의와 다르다고 장로교를 종교 기계와 종교 이데올로기의 포로라고 맹비난한다

 

- 성육신의 영이 권능으로 임하신 것이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입니다. 이것은 오순절의 프락시스(Praxis)라고 합니다..... 많은 논쟁 끝에 최근 귀결된 결론은 성령적 영적 리더쉽은 성육신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역 역시 성육신의 사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우 적절하고 성경적인 선교신학적 관점입니다. 영적 리더쉽을 성육신과 연계하고 성육신의 사역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사역이 어떤 고도의 지식이나 기술 또는 전략과 전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영적 리더쉽은 종교적 테크닉이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종교적 테크닉을 과도하게 추구하면 종교기술자로 전락합니다. 이는 타락입니다. 교회성장을 추구하면서 과도하게 프로그램에 의존하면 성도들이 종교 기계로 전락합니다. 종교기계는 감동도 없고 열정도 없고 결코 헌신도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성도들을 종교의 노예로 만들어 죽이게 됩니다.... 그렇게 칼빈의 후예들은 갈수록 칼빈주의 종교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회가 경직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칼빈은 제자들은 결국 칼빈의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종교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최바울, 왕의 나라, 186- 187쪽)

 

오순절은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신 사건이다. ‘성육신’은 성자하나님이 육신을 취하신 사건을 뜻하는 용어이며, 사람에게 성령이 내주한다고 하여 그것을 성육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독특한 용어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가 사용하는 주장이며, 사람도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사상의 배경은 곧 양태론이기 때문이다.

최바울대표가 정통신학과 한국교회를 비난하는 이러한 내용은 다른 책에도 수많이 나타나는데,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정통신학 체제를 비판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만 역사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 성경교리를 정리하여 배운다고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성경의 원리를 신학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한다고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똑같은 성경본문을 가지고 증거하고 설교하는데 왜 증거자나 설교자에 따라 역사하는 능력이 다르게 나타납니까? 말씀은 로고스이지 존재하는 단순지식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될 때 그 말씀이 역사합니다(최바울, 왕의 군대, 179쪽)

                                             

최바울대표의 성육신은 성령론의 정통신학에 정통하여도 모르는 비밀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최바울이 주장하는 성육신의 개념이 정통신학과 다르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성육신의 영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 성령론에 대한 신학적 지식에 아무리 정통하더라도 성육신의 영성이 결핍되면 결코 성령의 역사의 나타나심과 역사는 없습니다. (왕의 나라, 188쪽)  

               

IHOP의 마이클비클도 동일한 주장을 한다

                  

- 하나님은 우리가 예언의 메시지를 실증해 보이기를 원하신다.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예언의 멧세지를 가지고 있으며 예언 사역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전에 우리가 선포하는 메시지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에 하나님은 그 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육화되어지기를 원하신다.(마이클 비클, 예언사역의 여정, 138쪽)

                  

- 베니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위치’라는 카셋트테이프 시리즈물에서 자신이 예수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곧 그리스도이다. 내 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고 주장까지 한다. (빈야드운동 평가, 61쪽)

 

다시 말하면 양태론자들이 주장하는 성육신은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다는 것을 뜻하므로, 결과적으로 성도와 예수의 차이점이 없는 개념이다. 그래서 지방교회는 예수가 God-Man의 첫 번째 샘플이었다고 주장을 한다. 영이신 성부 하나님이 예수의 영의 자리에 들어오셨다는 주장으로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기독론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성육신은 성자하나님이 육신을 취하신 것인데, 양태론자들에게는 성도들에게 성령이 온 것도 성육신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다락방(류광수목사)에서도 예수의 성육신과 성도들에게 내주하는 성령을 동일하게 보는 사상이 나타난다.

                   

“영접이란 말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내주한다. 그러니까 이 말을 이해해야만 영접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오셨다. 말씀이 육신을 입어 오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뭐라고 말하느냐? → 성령의 내주! 이것을 이해해야 이해되는 말입니다. 주님이 여러분 속에 오셨다는 그 말이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뭘 주셨으니? 권세를 주셨으니….”(류광수, <기본멧세지>, 2쪽,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성부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성자 하나님은 이 땅에 와서 그 말씀을 다 성취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셨는데 그분이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우리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이 뭐라고요? 성령 하나님. 맞지요? 너무 너무 놀라운 구원의 비밀입니다. 당장 여러분이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 성삼위 하나님이 내 속에 오셨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 때문에,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여러분 속에 이 하나님이 계십니다. 어떻게? 성령 하나님으로, 이것을 보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인 것입니다”(류광수, <기본멧세지>,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

                            

하나님이 우리 속에 아예 오신 것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육이고, 우리의 마음이지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신다”(류광수, <현장복음>, 2과 - 새로운 생명 (3) 성령의 내주란 무엇인가?).

                                        

종합해 보면, 결국 예수의 성육신도 양태론적으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영의 자리에 들어온 것이고, 양태론적인 개념의 성부 하나님, 즉 성령이 신자 속에 들어오는 것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온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으로 간주하여, “성도 = 예수”라는 신인동일적인 개념을 주장한다. 윗트니스 리의 글을 보아도 동일한 사상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해 주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그분 ‘자신’ 만을 우리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9~10쪽).

                    

3) 기독론

                       

초대교회때에 아폴로내리우스라고 하는 이단이 있었다.

예수라는 인간의 영의 자리에 하나님이 들어오셨다고 주장하므로서, 예수라는 인간을 영이 없는 불완전한 인성적인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기독론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즉 예수는 혼과 육만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영은 로고스로 대체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곳이 바로 지방교회이다.

정통적인 기독론은 예수는 100% 온전한 인성과 100% 온전한 신성을 갖고 연합되었지만 두 개의 인격을 가진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바울은 하나님이 영이므로 인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육체를 가져야만 인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므로서, 하나님의 인격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베뢰아의 주장을 하고 있다. 더욱이 하나님이 인간을 육체를 입고 들어왔다고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기독론에서 심각한 이단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그(아폴로내리우스)는 사람이 신, 혼, 영의 3부로 구성되었다는 헬라철학의 3분설의 개념을 가지고 로고스가 죄의 좌소인 영의 자리를 취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신체와 혼만을 가지셨고 영의 자리는 로고스가 채웠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축소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영이 없는 인성을 입으신 것이다.(신복윤교수. 기독론에 나타난 이단, 102쪽)

                                  

- 아폴로나리스는 인간의 구성 요소를 육과 영혼과 이성으로 삼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린도전서5장23절에 의해서 제시된 견해로부터 추론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은 육체와 영혼과 그리고 인간의 이성 대신인 로고스로 이루어졌다고 가르쳤다. (기독교교리사. 서남동역, 대한기독교서회, 256쪽)

                                      

지방교회의 주장도 동일한 아폴로내리우스의 주장이다. 그들은 예수를 영과 혼과 몸으로 삼분하여, 신성(영)과 인성(몸+혼)으로 분리하여, 예수의 몸과 혼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 그 분이 육체 안에 사셨을 때에 그분의 한 부분은 다만 사람, 곧 다윗의 씨였다. 그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 그것은 죽음과 부활을 거쳐 인정됨을 통해서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5쪽)

                      

- 성육신 되신 후에 하나님은 성육신 되기 이전과는 달라지셨다. 성육신 이전에 그 분은 다만 하나님이셨지만 그러나 성육신되신 후에 그 분은 사람의 껍질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54쪽)

                                                   

다락방(류광수)도 동일한 주장이 나타난다

                                              

(1)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1:14)

▶ 우리가 만날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길을 여셨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 그러므로 그분은 죄가 없고 그 영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15:45)

▶고전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3)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입니다(마16:16-19) - 영은 하나님이시고 몸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다. (류광수, 복음편지 -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5. 신약의 성취적 의미:

(4)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

그 영은 하나님인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신약에 참으로 중대한 말이다. 여러분 중심에 정말 주님이 역사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참으로 중요하다.(류광수, 현장복음 18과 - 예수께서는 왜 죽어야 하는가)  

                                                                                               

기독론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는 조직신학적 내용이 있다.

                                          

- 성육신(incarnatio)이란 “말씀이 육신이 되다”이다.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인카르티오”를 탁신(託身)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성육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성경에 표현되어 있는 “도성인신(道成人身)의 본래의 의미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의미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육신을 입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으신 것이 아니라, ”육체를 취하시고“, 혹은 ”가지시고“(assume, take), 사람과 같이 되셔서(became) 세상에 나타나셨음을 의미한다. (조직신학 상, 조석만, 대한신대원 출판부, 439쪽)

                                                               

베뢰아, 지방교회, 다락방, 구원파등이 모두 인간의 영의 자리에 양태론적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신 것으로 주장을 한다. 최바울의 여러 책들에서 베뢰아의 하나님의 의도 사상이 지금도 나타나 있으면서 그가 모든 책을 폐기시키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베뢰아사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독론도 최바울의 신학적인 무지나 착각,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면 필자는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탄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신들의 전쟁을 싸우는 것이 인류역사의 실체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은 최바울의 일관된 중요사상이고, 여러권의 책에서 그가 강조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필자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무엇보다도 최바울 자신이 이러한 이단성을 자각하고 진정으로 수정하겠다고 한다면 필자는 오히려 그를 도와줄 용의가 있음을 이미 천명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회개를 하였다는 진정성도 발견할 수 없고, 잘못된 점을 부정하고 감추며 오히려 상대방을 공격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심각하고 위험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물론 최바울의 이단성과 문제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베뢰아사상에서 비롯된 양태론과 기독론의 문제점 외에도 신사도운동과 영적도해사상의 영향, 아이합의 영향, G12의 영향,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 극단적세대주의 종말론과 신귀신론이라고 불리는 철저한 이원론등 수많은 문제점들을 포함하는 곳으로서 인터콥은 여러 가지 위험한 사상이 혼합된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콥의 문제점은 필자뿐만 아니라 모든 정통교단의 이대위, 선교부에서 조사한 내용과 거의 동일하며, 많은 신학교수들과 이단을 연구하는 목사들도 동일한 지적을 하고 있다. 오직 인터콥만이 자신들에게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데 왜 지도와 자문을 받았는가?

                                                         

최바울은 자신을 지도하고 자문해 주겠다는 단체들 앞에서는 “모든 것을 수정하고 고치겠다”고 약속을 하며 수없이 많은 각서와 서약서를 쓰기도 하였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인터콥 내부에서 최바울은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며,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단지 몇사람뿐이라고 설교를 하는 동영상을 보아도, 또 자신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인신공격적인 비난을 서슴치 않는 것을 보면, 그는 아직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과오와 오류를 인정하고 지도를 받겠다는 진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예장개혁은 다락방을 영입한 곳과 분열되어 자신들에게 신학대학이 없는 것을 빌미로 최바울을 영입하기로 작정하고 이미 2012년에 한반도신학대학과 MOU를 체결하였고 경인노회(박영길부총회장 노회)로 가입을 시켰다. 그리고는 인터콥을 영입하려는 형식적인 절차를 위하여 공청회를 개최하고, 인터콥은 “이단성이 없다”고 미리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비판의 화살로 돌아오자 결국 “심각한 이단성이 없다는 뜻이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게 되었다.

                                                   

예장개혁의 인터콥 조사위원장인 황호관목사는 “죽을 병을 가진 인터콥을 살려보자” 또는 “동네병원에서 고치지 못한 병을 종합병원에서 고치도록 도와달라”고 필자에게 간곡한 요청과 도움을 청하였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단성이 없다”고 기자회견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황호관목사는 죽을 병에 걸린 환자에 대해서 병에 걸린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고, 환자도 아닌 사람을 종합병원에서 치료하자고 필자에게 도움을 청하였는지 묻고 싶다. 예장개혁은 다락방을 영입하는 과정에 반대하고 분열된 곳으로서, 다락방을 영입하는 것은 불륜이고, 인터콥을 영입하는 것은 로맨스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문제는 인터콥이 지금도 예장개혁의 “이단성이 없다”는 공문을 미국과 한국에서 살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필자의 실명과 교회명까지 기재하여 필자를 비난하는 문서를 살포하고 있으면서 또 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였다. 명예훼손의 내용은 “사람들”이라는 본문을 “사람”으로 글자 하나를 틀렸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미국에서 거주하는 정이철목사를 고발한다는 자체가 고의적인 목적이라고 보며, 강원도 홍천경찰서에 고발한 것도 고의적이라고 본다. 만에 하나라도 최바울과 인터콥은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을 하지 않기 바란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제3자가 어떻게 최바울의 명예훼손에 대한 고소를 하는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최바울과 전화확인을 하였다"고 답변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원한다면 언제든지 고소를 하기 바란다.  그 고소가 무혐의가 된다면 그 내용을 자세하게 카페와 신문에 올려 주겠다. 

                                          

인터콥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보일 수 있는 “이단성이 없다”는 일부 내용의 자료들만 선택하여 배포하므로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우지 말고, 통합 이대위와 고신 선교부를 비롯한 많은 신학교수들과 이단연구가들의 보고서들을 모두 수용하고, 고치려고 하는 자세를 보이는 진정성이 먼저 있어야만 한다. 인터콥은 가장 먼저 최바울 자신의 사상부터 바꾸어야만 하며, 인터콥 내부의 강사들과 그동안 가르쳐왔던 비젼스쿨과 선교사 교육의 과정 자체까지 모두 바꾸어야만 한다.

                                             

현재 인터콥은 매우 심각한 이단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