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유아세례, 성경가르침 아닌 사람의 전통
[특별기획] 조남민 목사의 가톨릭 분석⑥
2013년 10월 07일 (월) 23:51:39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조남민 목사 / 미국 밸리성경교회 담임, 한인성경선교회 대표

지난번에는 가톨릭의 세례를 통한 구원, 즉 의롭게 되는 것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 가톨릭의 유아세례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보고자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의로움에 관한 성경말씀을 확고히 알고, 구원에 관해 성경에서 벗어난 그릇된 소망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고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가톨릭은 성경에 많은 것을 덧붙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구약성경 외에 다른 것들을 덧붙였음을 알게 된다. 우리들이 잘 아는 탈무드도 그런 것이다.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탈무드는 유대 구전(口傳: 말로 전하여 내려옴) 율법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글 <미슈나>(Mishnah)에 대한 학문적인 해설과 주석이다. 유대인들은 성경 외에 이러한 것들을 덧붙여 따르고, 그 권위를 성경과 대등하게 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덧붙인 전통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아주 혹독하게 꾸짖으신다(막 7:1~14). (참고. 아래 나오는 많은 말씀에 강조를 첨가했다.)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 7:13)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더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더군다나 구원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길이요, 다른 복음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경의 길 외에 다른 것을 더하면 혹독하게 꾸짖으신다(갈 1:6~9). 인간의 논리대로 하다가는 현재는 그럴 듯하지만 필경 사망의 길인 것이다.


가톨릭의 이런 전통의 덧붙임은 갓 태어난 유아의 의롭게 되는 교리로부터 시작된다.


1. 가톨릭의 유아세례

유아세례일 경우 부모와 대부모(대부, 대모)가 사제신부와 함께 참석한다. (참고. 여기서 ‘대부모代父母’란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입교하는 사람에게 장차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줄 사람을 선정하여 마치 정신적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관계를 맺어 주는데 이들을 대부와 대모라 부른다 - 천주교 전례 용어로부터).


그들은 영세대 앞에 서고 의식은 그 앞에서 이루어진다. (‘영세’란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 - 가톨릭 사전). 신부는 부모와 대부모에게 인사를 하며, 세례명을 묻고 세례성사 청함을 확인한다. 그리고 신부는 부모와 대부모들이 가톨릭 신앙 속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의무에 대해 고백시키고 확인한 후 신부는 십자표를 긋는다. 그리고 사제신부는 부모와 대부, 대모가 각각 아이의 이마에 십자표를 긋게 한다.


  

그리고 ‘구마기도’가 따른다. 구마기도란 악령 추방의식 기도이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악의 세력을 저희에게서 몰아내시고 사람을 어둠 속에서 구원하시어주님의 빛나는 광명의 나라로 데려 가시려고 외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이 아이를 원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주님의 성전으로 삼으시어 성령께서 이 어린이들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후 아기에게 기름을 바르고, 세례수를 축복하고 기도한다.

축복한 이 물의 신비로 주님의 자녀들을 교회의 신앙으로 세례를 받도록 부르셨으니 이들을 영신적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이제 사제는 악령과 죄를 끊어버림과 신앙고백을 하게 한다.

“친애하는 부모와 대부, 대모 여러분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이 아이는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물과 성령으로 새 생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으로 이 아기(어린이)들을 교육함으로서 죄에 물들지 않고 하느님께 받은 이 생명이 날로 더욱 풍요 해지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이런 중요한 책임을 맡으려는 것이니 여러분 자신이 이미 받은 세례성사를 기억하며 죄를 끊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신앙을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이 고백하는 신앙은 바로 이 아기(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교회의 신앙입니다.”


이제 이렇게 악령과 죄를 끊어버림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한다.

“여러분은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아이의 부모와 대부모가 답한다. 
“여러분은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여러분은 성령과,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아멘.” 모두 한 목소리로 답한다.

이렇게 하여 세례 줄 준비가 되었다. 사제신부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러면 방금 우리 모든 이가 고백한 교회의 신앙으로 OOO에게 세례 주기를 원합니까?” 
“원합니다.” 모두 답한다.


사제신부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아이를 영세대 위에 놓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의 이마에 물을 부으며 세례를 준다. 세례 후 신부는 성유를 아이 이마에 도유하고 기도한 후 흰옷을 입힌다. 그리고 사제신부는 빛의 아들, 딸이 되었다는 의미로 대부모들에게 촛불을 켜서 준다. 대부모들은 앞으로 나와서 촛불을 받아 가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빛이 되십시오.”라고 한다. 이어서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와 대부, 대모 여러분에게 이 빛을 맡겨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 아기(어린이)들이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언제나 빛의 자녀로 살아가며 항구히 신앙을 지키다가 마침내 천국에서 모든 성인과 함께 재림하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그리고 사제신부는 주님의 기도와 강복을 구한 후 유아 세례 예식은 마친다.

이 얼마나 성스럽고 거룩한 의식인가? 하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 세례의식의 내면의 교리를 올바로 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1262항이 말하는 “세례의……두 가지 중요한 효과는 죄의 정화와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신부는 아이에게 세례를 준 후에, 흰옷을 입히게 하며, 이렇게 말한다.

“OOO는 이제 새로이 창조되어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으며, 이 흰옷은 그리스도인의 새 품위의 표지이니, 가까운 친척들의 말과 모범으로 도움을 받아 이 품위를 깨끗이 보존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십시오. 아멘.”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OOO는 이제 뱁티즘을 받음으로 새로이 창조되었고 이제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의식을 소중히 여기며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성경에서 벗어난 그릇된 소망이라고 말하면 그들의 반응은 어떨까? 하지만 어떤 말이든 제하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라고 하신(계 22:17~19)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러한 모든 것은 안타깝게도 그릇된 소망을 주는 것이다. 이 모습이 아주 거룩하고 성스러운 의식이어서 무엇인가 일어날 것 같고, 실제 여기서 말하는 대로 될 것 같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릇된 소망을 주는 것이다.


2. 유아세례 통한 가톨릭 가르침의 요약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세례를 통해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790, 977, 1214~1216, 1227, 1250~1252].

△ 사탄의 권세에서 구출된다(어두움의 세력에서 해방된다). 
△ 원죄에서 자유롭게 된다. 
△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 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 있지 않다. 
△ 하나님 앞에 순결하고 오점이 없게 된다. 
△ 거듭나게 된다(새로 태어난다). 
△ 새 사람이 된다.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무한한 은총을 받는다. 
△ 성스러운 생활의 은사를 받게 된다. 
△ 영생을 갖게 된다. 
△ 성령의 전이 된다. 
△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 
△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 
△ 성령의 성전이 된다. 
△ 교회에 입문하게 된다. 
△ 가톨릭교회의 신앙 안에서 양육된다.


이 중에서도 가톨릭의 세례의식은 다음 두 가지 사항이 중요시된다.


1) 원죄가 제거됨 [977~978, 1250, 1263, 1279, 1673]: 가톨릭은 세례가 아담으로부터 받은 죄인 원죄를 없앤다고 가르친다. 가톨릭교회는 세례를 받은 아이는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죄가 없다고 한다. 만약 그 순간에 아이가 죽으면 그가 천국으로 가는 것을 막을 것이 없다고 한다.


2) ‘성화케 하는 은총’을 받음 [374~384, 1265~1266, 1279, 1999, 2023~2024] (참고. 성화케 하는 은총 - 이 은총은 성화 은총, 성화의 은총, 성화하는 은총, 의롭게 하는 은총, 의화(義化)하는 은총, 의화의 은총, 의화 은총, 신화 은총 등의 용어로 사용된다. 본 글에서는 그 의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화케 하는 은총’ 혹은 ‘성화 은총’으로 표기한다). 가톨릭 신학에 따르면,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초자연적인 선물을 주셨다고 한다. 그 선물이란 하나님의 생명(divine life)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과 계속되는 교제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죄짓기 전에는 성스럽고 의로웠다. 가톨릭은 이를 ‘원초적인 의로움’[原義]이라 부른다[376].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그들은 그들 영혼에 있었던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원초적 거룩함의 은총”을 잃었다[399]. 그들은 영적으로 죽었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존재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유아는 성화케 하는 은총이 없이 세상에 태어났고, 원죄를 갖고 태어났으며, 악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이는 고통과 죽음을 갖는 존재로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한 절대적인 치료책이 바로 세례이다. 가톨릭교회는 단지 세례만이 원죄를 없앨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의 영혼으로 돌이킬 수 있다고 가르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405항은 “세례는 그리스도 은총의 생명을 줌으로써 원죄를 없애고 하느님께 돌아서게” 한다고 말한다. 신부가 “……이 아이에게 이 영세대로부터 그의 생명의 선물을 [부어] 주시기를……”이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의식을 하면서 이 믿음을 진술한다. 가톨릭교회는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이 부어지는 것을 ‘성화케 하는 은총의 주입(infusion)’이라고 한다[1266, 1996~1997, 1999, 2023].


이 ‘주입’을 통해 아담의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아이의 영혼은 다시 살게 된다.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이는 영적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해지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연합되고, ‘은총의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의 교리는 아담의 죄로 인해 “원초적 거룩함의 은총”을 잃고 하나님의 생명을 잊었는데, 이를 세례로 인해 “성화케 하는 은총” 혹은 “성화 은총”이 주입되면서 아이는 원죄가 없어지고, 교회와 연합되고, ‘은총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며, 새롭게 태어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성령 안에 사는 사람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은총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후에 보겠지만 죽을 때 이 은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판가름이 나기 때문이다. 또한 가톨릭교회에 따르면, 성화케 하는 은총이 부어지면서 ‘성령의 은사’가 오고, ‘신학적인 덕목’ 중 가장 뛰어난 사랑이 온다[1812~1832]고 한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학은 흔히 은총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사랑이 있다는 것과 동등하게 여긴다. (신학적인 덕목: ‘대신덕’ 또는 ‘향주덕’이라고도 함.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갖는 기본 관계의 덕으로 믿음, 소망, 사랑의 신덕, 망덕, 애덕을 말한다. 이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어주신 은총이다. 이 은총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사랑할 수 있다 - 가톨릭 대사전으로부터) 그러므로 유아의 의롭게 됨을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는 것이다.


  


3. 가톨릭의 세례는 의롭게 되는 수단


이와 같이 가톨릭은 세례가 “의롭게 되는 수단”이다. 실제 트리엔트 공의회(주후 1545~1563년) 문헌에 “의롭게 되는 것(의화)에 관한 법령” 7장에 세례가 의롭게 되는 수단이라는 것을 명시해 놓았다.
(한글 번역을 찾지 못해 영어 문헌대로 기록한다.
http://www.ewtn.com/library/councils/trent6.htm#1).


  


이 글은 죄인이 의롭게 되는 근거에 대해서 말하는데, 그 효과적인 근거가 ‘자비하신 하나님’이고, 그 수단이 되는 근거가 세례성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이 세례성사가 없이는 결국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가톨릭의 교리에 의하면 세례를 행치 않아서는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가톨릭에서는 세례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세례를 받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아의 경우 출생 후 가능하면 빨리 세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250항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한다. 일반 성당들의 유아세례 규범은 유아가 태어난 지 100일내에 세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위의 교리서 1250항은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못 박아 말하고 있다. 그러니 갓난아이에게 세례를 빨리 베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적이 아니라면 부질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에서 유아에게 세례 주는 것을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성경에는 없는 가톨릭 자신들이 만든 교리 때문이다. 이미 지난번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우리가 잘 아는 어거스틴(가톨릭은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함: 가톨릭 35 박사 중 가장 큰 두 박사 중 한명)은 그의 해박한 성경지식과 그가 믿기 전에 갖고 있던 플라톤 철학을 더해서 ‘원죄’에 관한 말을 했고, 이 ‘원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뱁티즘이 필요하다는 소위 ‘뱁티즘으로 의롭게 됨’(The Baptismal Justification)이라는 교리를 정리했다(http://www.newadvent.org/fathers/15011.htm). 그의 글을 요약한 부분은 “원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유아들은 뱁티즘을 받는다(……He then proceeds to prove that in Adam's sin his entire offspring is implicated, showing that infants are baptized for the express purpose of receiving the remission of original sin)”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존경하는 어거스틴이 이런 교리를 썼다고 하면 믿고 싶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어거스틴이 성경적으로 잘 연구하고 분석한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에 도움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것들은 성경에 근거한 것들임으로 성경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고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어거스틴이 성경에서 벗어난 것들을 정리 기록한 것이 사실이고, 가톨릭은 이런 글을 취해 그들의 중요한 구원의 교리로 만들었다. 이를 보면 하나님 외에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다.


이 어거스틴의 논리는 사람의 논리로 논하자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논리를 근거로 가톨릭교회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지은 ‘원죄’가 새로 태어나는 유아에게 영향을 끼쳐, 모든 유아는 영혼에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모든 유아는 이 원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유아가 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은총을 어떻게 얻는가? (참고. 은총과 은혜: 가톨릭에서는 은혜를 보통 은총으로 표현한다. 가톨릭교회가 사용한 성경의 공동번역서는 은혜도 사용했지만 많은 부분을 은총으로 번역했고, 개혁한글은 많은 부분을 은혜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가톨릭과 관계된 것은 일반적으로 은총으로 기록한다.)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갓 난 유아는 세례의 성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의 은총을 얻게 된다고 한다[790, 977, 1214~1216, 1227, 1250~1252].


이런 교리 속에서 <가톨릭교회 교리서> 1213항은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고 성령 안의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라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톨릭이 세례가 의롭게 되는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런 것을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면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후에 덧붙여진 말이다. 꼭 유대인들이 구약성경 외에 구전으로 다른 것을 덧붙인 것과 같은 것이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 외에 성경을 덧붙인 것이 사람이 덧붙인 것이고, 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너희의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신약성경에 없는 것이 덧붙여졌다면 이는 사람이 덧붙인 것이 틀림없는 것이요 이것도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을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주후 100년까지 모두 기록되었는데 세례로 인해 죄가 용서되고 의롭게 된다는 말은 성경에는 없는 것이다.


가톨릭은 어거스틴의 논리로 인하여 성경에 덧붙인 교리가 확정되고 그것을 믿고 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는 잠언 말씀처럼 사람의 논리로는 바른 것 같지만, 이 길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길이 아닌 것이다. 사실 성경의 잠언에는 이 말씀을 두 번이나 기록했다. 14장 12절과 16장 25절이다.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면 두 번씩이나 기록하였겠는가? 사람이 만든 교리는 논리적으로 보기에는 바른 것 같지만 그것은 사망의 길임으로 이런 가르침 앞에서 우리는 심각해져야만 한다.


4. 유아세례는 사람의 전통이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가톨릭은 유아세례가 역사적으로 신구약 성경 이후에 발생한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신약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살아 복음을 전파하던 1세기 내에 모두 기록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물론 가톨릭은 트리엔트 회의(1545~1563년)에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신구약 성경 외에 외경을 더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252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교리에 의하면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고, 교회의 전통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으로 2세기부터 확인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에서 지지하는 구절을 참고했다. 여기 참고 47은 사도행전 16장 15, 33절, 18장 8절과 고린도전서 1장 16절에 관한 것이다. 이 말씀들을 보면 어느 말씀도 유아가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추론해 낼만한 말씀이 아니다. 그것도 이런 구절들로 구원의 교리(천국에 가냐 지옥에 가냐의 교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지면상 참고 구절들 중에 두 구절만 읽어본다.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공동번역을 사용한다.)

“회당장 그리스보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고 그 밖에도 많은 고린토 사람들이 바울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어 세례를 받았다”(행 18:8).


“하기는 스테파나 집안 사람들에게도 세례를 베푼 일이 있으나 그 밖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푼 기억이 없습니다”(고전 1:16).


먼저 행 18장 8절은 여기서 세례를 받는 조건은 “주님을 믿어”, “예수를 믿어”이다. 후반 절에는 “예수님을 믿어 세례를 받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장 16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안 준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이 문맥 중에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의 문맥을 알고자 하면 그 앞에부터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밖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고전 1:14). ……


하기는 스테파나 집안사람들에게도 세례를 베푼 일이 있으나 그 밖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푼 기억이 없습니다(고전 1:16).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말재주로 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고전 1:17).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고전 1:18)”.


사도는 본인이 직접 세례를 준 것이 기억에 별로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자신을 보낸 것은 복음을 전하라고 보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아세례나 일반세례가 구원의 수단이라면 이렇게 말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유아세례가 아주 중요하다면 어느 곳에 가든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원죄를 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후 빨리 세례를 받아 원죄를 없애고 은총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니 마땅히 그렇게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그리고 스테파나 집안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푼 기억이 있지만 그밖에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푼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세례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런 말씀으로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교리를 만들어 낸다는 자체도 말이 안 되고, 이 말씀들을 참고하며 성경에서 유아세례를 베풀었다는 말을 증명하려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안 되는 일이다.


또한 세례가 그렇게 중요하면 -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의 지체가 되고 등등 - 다른 성경말씀에 모두 언급했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우선 세례를 주어라”, “세례가 죄를 용서 한다”, “유아에게는 빨리 세례를 주어라”, “유아세례를 주어야 의롭게 된다”는 등등 구원에 필요한 모든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죄가 들어온 후 앞으로 심판이 있을 때까지 성경 전체가 구원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위의 1252항은 유아세례가 역사적으로 2세기에나 발견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말 외에 어느 것도 확신할만한 것이 없다. 결국 이 교리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전통”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실제 교회 역사를 보면 1세기에서 2세기까지 믿는 자에게 뱁티즘을 주는 것에 대해 뱁티즘의 의미가 변개되어지는 기록은 있지만 유아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은 찾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사도들이 사역하던 1세기에는 찾을 수가 없다. 유아세례가 죄를 용서하는 구원의 길이라면 사도들이 그렇게도 침묵하고 있었을까? 누가 생각해봐도 답은 뻔한 것이다.


앞에서 보듯이 실제적으로 성경에는 유아가 뱁티즘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하나도 없다. 유아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근거로 “집안”이 세례를 받았다는 구절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전후문맥은 모두 “믿었다”는 것에 근거를 둔다. 그리고 거기에는 꼭 복음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연령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인 것이다.


5. 성경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한다.


성경에 의하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로마서 8장 33절은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고, 로마서 4장 5절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가치 없는 죄인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 의롭다 함을 인정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만 가능케 되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의를 받게 하신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그리스도]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그리스도]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복음이 전해지고, 어떤 사람은 이 복음의 진실을 믿게 되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 예수님을 신뢰한다. 이렇게 믿는 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하나님 면전에서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서나 ‘믿음’으로 의롭게 됨은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성경이 무엇을 말 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롬 4:3)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6.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뱁티즘을 베풀라고 하셨다.


지난번에도 살펴보았지만 성경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그런 믿음을 가진 자, 즉 의롭게 된 자, 다른 말로 구원을 받은 자가 세례를 받았음을 일관적으로 말하고 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공동번역 마 28:19)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어 제자가 된 후에 뱁티즘을 베풀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후의 모습들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즉 구원을 받은 후에 뱁티즘이 베풀어졌다.


특히 위의 말씀에 예를 든 것처럼 사도행전 18장 8절 말씀은 이를 분명히 한다. 회당장 그리스보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고 그 밖에도 많은 고린토 사람들이 바울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어 세례를 받았다.


이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에게 세례를 준 것이지, 세례를 주어 구원을 받게 한 것이 아니다. 갓난아이가 복음을 듣거나 회개하거나 예수님을 믿거나 할 수 없으므로 유아는 뱁티즘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말씀이다.


7. 그릇된 소망을 주지도 말고 갖지도 말자.


자녀가 어떻게 구원에 이르나?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것은 자녀들이 유아세례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르는지에 관한 말씀이 성경에 있는 진리 인가에 관한 것이다. 물론 ‘어린아이가 어떻게 구원에 이르는가?’를 이해하려면 자녀들의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봐야 하는 것이지, 전통적으로 유아에게 세례를 주었으니 그렇게 하자고 한다면, 성경에 없는 전통을 고수하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이를 따른다면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야단치시는 것을 상기해야할 것이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들의 전통으로 떡 먹을 때에는 반드시 손을 씻었다(마태 15:2). 그런데 그 때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고 있었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를 예수님께 고발했다. “당신의 제자들은 왜 조상들의 전통을 어기고 있습니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공동번역). 그들은 이 전통을 심각하게 지키고 있었음이 그들의 말투에서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이것이 올바른 것인데 왜 지키지 않습니까? 라고 다그쳐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너희는 왜 너희의 전통을 핑계 삼아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느냐?”(공동번역: 마태오 15:3)

손 씻는 것이 나쁜 일인가? 음식 먹기 전에 손 씻는 것은 권장해야할 만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형식주의로 가고, 이것이 전통적인 교리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면 이것은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전통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은 예수님의 혹독한 야단을 맞고 정죄를 받아야 마땅하다.


아무리 거룩해 보이고, 아무리 웅장해 보이고, 아무리 경건해 보이고, 아무리 성스러워 보이고, 아무리 신비스러워 보이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꼭 맞는 것처럼 보이고,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사람이 만든 전통이라고 한다면, 이는 예수님으로부터 크게 정죄를 받을 일인 것이다. 특히 구원에 관한 일이라면 큰 심판을 당할 일인 것이다.


더군다나 구원의 교리를 변개시키는 행위는 얼마나 큰 형벌을 받을지 각자가 상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릇된 소망을 자녀들에게 주어서도 안 되고, 어른들이 그릇된 소망을 가져서도 안 될 것이다.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공동번역: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개역한글: 골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