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감독 <제3성전>, 유사 시한부 종말론에 기름붓나?
왜곡된 성경해석의 연장선상··· 휴거, 베리칩 그리고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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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03  0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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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행림 목사(독자투고, 늘푸른빛교회)



  

▲ 예수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제 3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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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다큐멘터리 <회복>, <용서>로 널리 알려진 김종철 감독이 최근 <제3성전>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교계에 내놓았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성전 제사를 위해 성전을 재건할 준비를 하고 있고 이를 반대하는 이슬람 세력과 제 3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될 것이며 결국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증표라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교계의 일부 신종·불건전 종말론 추종자들이 선호하는 주제인데다가 이미 AD 70년 이후 더 이상 이스라엘의 성전 내의 짐승의 피의 제사가 끝났다고 믿고 있는 교계는 <제3성전>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관이 아닌 한국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제 3성전>이 11월 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 동안 상영되면서 교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을 마치 기독교의 문제처럼 그린다는 점과 성전 재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불건전 종말론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더 자극을 받아 자신들의 종말론을 더욱 확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보며 필자는 <제 3성전>이 불건전 종말론자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영화 환영하는 우자매 샬롬하우스,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 카페


교계는 <제3성전>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하지만 종말론에 관심이 많은 성도들에게는 먹혀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가 다음 카페 ‘우자매 샬롬하우스’(우자매)의 적극적인 홍보다. 우자매는 종말론과 마지막 때에 관련한 각종 정보를 알려주는 카페다. 이 카페의 왼쪽 디렉토리에는 김종철 감독의 코너가 있다. 이스라엘 리포터 등 이스라엘과 중동 상황, 그리고 영화 관련 각종 홍보를 하는 코너다. 이 카페의 회원수는 2만1천명이 넘는다.



  

▲ 영화 <제 3성전>을 적극 알리고 있는 우자매 샬롬 하우스(카페 갈무리)


<제3성전>의 또 다른 홍보 창구는 다음 카페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신부카페)이다. 베리칩과 각종 종말 현상을 중계하듯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는 이 카페의 회원수는 3만5천명이 넘는다. 신부카페는 우자매보다 좀 늦게 시작했지만 두 카페 모두 <제3성전>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베리칩에 대해 홍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열망하는 이들은 재림과 관련한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매우 적극적으로 퍼 나르기를 한다. 필요한 재정도 후원한다. 신부카페의 경우 카페지기가 나서서 홍보하고, 필요한 후원도 독려하고 있다.


우자매에 올라온 <제3성전>과 관련된 글 중에 ‘감상평’ 일부를 보면 얼마나 문제가 심각한가를 볼 수 있다.

“방금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어제하고 오늘 이틀동안 그야말로 종로구 연지동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기적의 현장이었습니다. 970석짜리 대강강에서 6회 상영예정이었지만 몰려드는 관객들로 인해 긴급하게 2회 추가 상영하여 아직까지 정확한 집계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7천명이 넘었다는 겁니다. 예정되었던 6회 상영은 모두 초만원 매진 사태···매회마다 970석을 뛰어넘는 약 1천 2백명씩 대강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현장에 와서 보신 분들은 이미 목격하셨겠지만 1층 복도의 땅바닥에 앉아서 보시는 분들과 맨뒤에 보조 의자를 깔고 그것도 모자라 뒤에 서서 보시는 분들 그리고 2층엔 계단에까지 쪼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하나님의 메시지를 경청하는 모습···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오지? 단 한번도 신문이나 잡지에 광고를 낸 적도 없고 그냥 단지 페이스북에 소식을 알린 것 밖에 없는데도 입소문과 입소문으로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는 건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메시지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저는 페이스북은 젊은 사람들만 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관객들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일 줄 알았는데 어제 오늘 찾아온 관객들은 그야말로 연령층이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어떤 장애인은 자기가 전단지를 나눠주겠다며 찾아와 사정하듯 부탁했었습니다. 누군가 티켓을 4장 구했지만 약속했던 한 분이 오지 않았다며 한장의 티켓을 돌려주겠다고 하자 대기표를 받고 있던 분들이 한꺼번에 몰려 그 티켓을 자기에게 달라고 손을 뻗쳐 아우성 치는 그들의 손등은··· 제 눈에 마치 한송이 꽃처럼 보였습니다. 얼마나 갈급했으면, 얼마나 듣고 싶었으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마치 천국 가는 기차에 올라타는 티켓을 향해 몸부림 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이들 종말론에 많은 관심을 가진 두 카페가 김종철 감독의 <제3성전>을 반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김 감독의 <제 3성전>에 나타난 종말론이 건강치 않고 부정적이라는 측면에서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종철 감독이 제작한 <제3성전>이 무엇을 담고 있기에 문제가 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뒤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하여 만든 것이 ‘성막’이다. 성막은 죄사함을 위한 제사와 함께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자 그의 백성을 만나는 교제의 장소이다. 이 성막은 나중에 솔로몬 왕이 성전으로 발전시킨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열망했지만 그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성전을 허락하셨다. 이것이 오르난 타작 마당인 모리아산에 세워진 제1성전이다(대하 3:1).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고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하신다. 솔로몬 성전은 BC 586-587년 사이에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다. BC 520년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포로들이 제 2성전을 건축한다. 이것이 헤롯성전이라고도 불리는 스룹바벨성전이다. 유대인이 아니었던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세웠던 헤롯 성전 역시 로마군에 의해 AD70년에 파괴되었다.


  

▲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고든콘웰신학교의 월터 카이시 명예총장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다시 건국되면서 디아스포라를 통해 전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 중에 다시 성전 재건에 대한 꿈을 꾸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성전 재건을 위한 준비를 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성전 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오고 있다. 이스라엘 랍비와 종교 그룹, 그리고 유대종교지도자 산헤드린을 중심으로 성전설립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축에 필요한 재정과 각종 기구를 만들고, 레위 혈통을 찾아내어 피의 제사를 위한 토라 전통의 교육도 하고 있다.

김종철 감독이 이스라엘 내의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을 영화화한 것이 <제3성전>이다. 그런데 김 감독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만을 말하지 않고 그것이 주는 시대적 의미를 해석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이미 눈에 보이는 성전에 대한 문제를 끝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을 기독교와 연관지어 해석하고, 제 3성전으로 인해 그것을 방해하는 이슬람 세력과 세계 제 3차대전이 일어나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시키려한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하게 성전재건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내에 최근 일어나고 있는 종말과 관련해 휴거, 환란, 세계정부, 베리칩 등을 통해 성도들에게 매우 혼란을 주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제3성전>이 그런 주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제 3성전 건립 →세계대전 → 그리스도의 재림?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이 <제3성전>에 대한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은 유대인들이 아주 치밀하게 성전 재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재건의 걸림돌, 재건되기 위한 조건, 재건과 함께 일어날 일을 다루고 있다. 김 감독은 이스라엘에 내에 성전 재건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했지만,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내의 성전 재건에 대한 열망과 회의적인 분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성전 재건에 대한 의견이 세 갈래로 나뉜다. 예루살렘 성전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제사에 필요한 제사 기구만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과 성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 더 이상 성전이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제3성전>은 그 중에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난센스다. 영화든, 책이든 의도 없이 진행될 수 없다. 명백하게 김 감독은 이스라엘 내의 성전 재건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때를 접맥하고자 했다. 김 감독은 이스라엘의 여러 주장 중에 성전 재건을 선택해서 영화를 진행하고 있다. 성전 재건의 필연과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것에 대한 종말론적 관점에서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가 의도하는 것을 동조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좋은 시한부적 종말론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셈이다.


성전 재건에 대한 이스라엘과 주변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 정부는 성전 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이슬람 국가들과의 전쟁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성전 재건 시도들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슬람들 역시 매우 민감한 일이기에 그런 움직임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호멧이 승천했다는 자신들의 메카가 사라지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의 일부에서는 유대인들의 숙원사업인 성전 재건이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성전 재건으로 인해 일어날 충돌을 예상하며, 그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촉매제가 성전 재건이고 그것을 통해 마지막 때의 대환란과 휴거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날 것이라는 논리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만약 성전 재건을 해야 한다면 솔로몬성전이 세워졌던 모리아산에 세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이슬람의 성지인 황금동 사원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스라엘에 원한다고 해도 유대인을 원수로 여기는 이슬람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제3성전>도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영화는 성전 재건의 대안으로 정치적 타협을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3성전>이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에 대한 역사의 필연처럼 꾸며져 있지만 영화 스스로 모순을 보여준다. 월터 카이져 등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들을 내세워 기독교적 이론을 제공하려고 하지만 성전 재건의 신학적 이론을 뒷받침하는 이들은 미국 신학자들로만 구성되어 있고(그나마 인터뷰에 나온 미국 신학자들은 탈봇·달라스신학교 등 세대주의신학을 가르치는 학교의 신학자들이다) 국내 신학자들은 전무하다.


  
▲ <제 3성전>의 김종철 감독(홍보 사이트 갈무리)

또한 성전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상황적 설명을 하면서도 영화는 성전 재건은 반드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논리적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신학자들을 동원해서 신학적 논리를 세우고, 정치적 논리로는 2000년 7월 11일 미국 메릴랜드주의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 바라크, 클린턴 대통령의 3자 회담을 예를 들었다.


영화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중재 아래 예루살렘 평화를 위해 성전 세우는 문제를 거론하자 아라파트가 아주 단호하게 거절한다. 클린턴은 자신이 중재할 테니 잘 이야기 해보자고 한다. 이 장면을 예로 들어 <제3성전>에서는 정치적인 협상을 통해 성전 재건은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영화에서 성전 재건이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장면을 생각 없이 집어넣었다. 첫 번째 모순은 성전 재건을 위한 설계도와 계획서가 이슬람의 정치적 협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과 대립되고 있다. 영화는 성전 재건이 이루어질 경우 성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각종 시설을 만드는 성전 설계 계획서를 보여준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올 것이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숙소와 도로 건설이 담긴 성전 재건 도면들이 영화에 등장한다. 이 계획은 황금동 사원을 없애는 것을 전제로 한 계획이다.


만약 정치적 협상을 통해 황금동 사원이 그대로 존재하는 가운데 제3성전이 세워지면 예루살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았는가? 물론 절기를 따라 이슬람 순례객이 다른 시기에 몰려온다면 혼잡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너무 기계적인 예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설계에서는 황금동 사원의 존재를 없애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또 다른 정치적 협상을 이야기 하는 것은 서로 모순된다. 물론 정치적 협상을 할 경우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화면에 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성전 재건이 무조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황금동 사원과 성전의 공존을 위한 공상적인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맞지 않다. 더구나 성전 재건 문제 황금동 사원을 동시적으로 보려는 기독교 시한부적인 종말론을 가진 이들이 놓치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가 세계정부, 종교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두 개의 종교가 일치 않는 정치적 타협을 통한 성전 재건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또 하나는 정치적 타협이 가능한가이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유대인들을 원수로 취급하는 교리가 있다. 이것은 협상으로 타결될 문제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유대인들이 황금동 사원 근처에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세웠던 성전을 기억하며 기도문을 외우다가 무슬림들로부터 제지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슬림들은 굉장히 기분나빠하며 유대인들에게 황금사원 근처에서 행하는 기도문 행위를 하지 말 것은 요구한다.

성전 재건을 위한 도시계획서, 그리고 옛 성전을 그리워하며 황금사원 근처에서 기도문을 외우던 유대인들의 장면에서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은 정치적 타협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안임을 영화 스스로 모순되게 말하고 있다.

이제 영화가 말하고자 하던 성전 재건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으로 돌아가 보자. 성경이 정말 성전 재건을 지지하고 있는가? 기독교는 유대인들이 성전 재건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영화에서도 말하고 있고, 기독교의 일부에서도 주장하는 성전 재건의 근거는 다니엘서 11장과 마태, 마가, 누가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 끝날에 대한 징조, 그리고 요한계시록 11장의 성전 보존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러나 소위 제3성전의 재건의 근거라고 제시하는 성경의 구절들은 오래 전부터 종말론 특히 시한부종말을 추구하는 이들이 사용했던 것들이다. 성경에 대한 그릇되고 왜곡된 성경 해석은 사회나 개인의 삶에 엄청난 문제들을 일으킨다. <제3성전>의 영화 역시 이런 왜곡된 성경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