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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태론자들의 천국관

  

                                                                                                                   이 인규

 

양태론자들의 교리적인 특징 중에 하나는 그들이 사후에 가는 천국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설마 그렇겠느냐? 라고 반문을 한다. 물론 신학적인 뿌리 자체가 없어서 양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태론이 중요한 교리가 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사후천국과 하늘보좌의 개념이 부정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양태론자들은 왜 그러한 주장을 할까?

양태론자의 경우에 하나님 자신이 곧 예수로 이 땅에 오셨고, 예수는 부활하고 승천하여 성령으로 오신 것이 된다. 즉 한 인격이 세 양태로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온 것이 곧 양태론이기 때문이다. 즉 양태론자의 경우에는 이미 하나님이 예수로, 예수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가 계시는 하늘보좌, 즉 천국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할 때에 양태론자의 경우에 하나님과 예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성령이 그 최종적인 과정이 된다.

 

어떤 변형적인 양태론자들은 (비록 변명에 불과하지만) 성부하나님과 예수는 성령과 함께 삼중적으로 동시존재한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지만, 결론적으로 변형된 양태론(상호내재라고 부른다)으로 보아도, 그들의 공간적인 개념의 동시존재적인 주장을 따르자면,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 몸 안에서 성령과 함께 동시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계시지 않게 된다. 즉 그들이 주장하는 천국의 개념은 오직 성도들의 몸 안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공간적으로 제한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통신학이 말하는 페리코레시스, 즉 상호내재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단적인 상호내재 논리로 궁색한 변명을 하는 양태론자들은 성부가 성자를 파송한 것과 성령을 파송한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없다. 십자가에서 누가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그들은 설명을 못한다.

 

정통신학은 하나님의 내재성과 함께 하나님의 초월성을 동시에 언급하여야만 한다. 성경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은 어느 공간이나 장소에도 임재하시고. 또한 공간을 초월하신다.

물론 정통신학에서도 하나님 나라(천국)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적이며, 내면적이고, 현재적인 개념을 가르치며 성도의 몸. 교회도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양태론자들이 주장하는 천국의 개념은 분명히 정통신학과 다르다.

 

눅14;17에서 "천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뜻하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과 그의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재한 것”을 동일한 것으로 보거나(마11;28 눅11;20), 또 겨자씨의 성장(마13;31)과 크게 부풀게 된 빵, 혹은 밭에 뿌려진 씨앗(막4;3-20)의 관점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내면적이고 영적인 실체이며 확장되어지는 개념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성경은 종말적으로는 장차 임하는 심판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표현하고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정통신학적인 개념에서 하나님나라, 천국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가지 개념으로 분류되어진다. 이것을 과거적인 개념, 현재적인 개념, 장래적인 개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통치적이며 영역적인 개념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순종하는 개인적인 성도로 구성되는 내면적인 개념

셋째는 궁극적이고 종말적인 장소적인 개념

 

즉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신정통치를 하는 하나님의 영역이었으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었다. 또한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낙원도 천국이며, 성도와 교회로 정의된 내면적이고 확장적인 영역도 또한 천국이다. 또 우리가 예수님 재림 시에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도 최종적으로 성취된 천국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과 함께 통치하였던 영역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또한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도래하였으며, 우리의 사후영혼들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불려지는 낙원에서 거할 것이며,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신령한 몸, 썩지 않는 몸으로 영원한 생명을 살게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천국은 현재적이며 진행적이며 확대되어지며, 종말적으로 완성되어지며 그 통치영역을 더욱 확장하며 진행될 것이다. 즉 영역적이며 개념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영역적인 의미를 포괄한다고 본다. 장차 하나님의 새예루살렘 도성은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양태론을 주장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신학적인 뿌리가 없다는 것이며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양태론은 성경적인 오류를 피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양태론자들은 마치 기독교가 죽어서 가는 곳만을 천국, 하나님의 나라라고 칭하는 것인 줄로 잘못 착각하고 있거나, 혹은 고의적인 매도와 조작을 하고 있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정통신학에서 하나님나라는 세가지의 개념을 갖는다.

 

양태론자들의 견해로서는, 하나님이 예수로, 예수가 성령으로 변화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셨기에 천국보좌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에 예수의 인격적인 재림도 부정하여야만 한다. 또한 그들의 천국관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며, 우리 몸 안이 유일한 천국이 되어진다.

 

그렇다면 지방교회의 천국관을 보자

 

- 죽으면 천당(국)간다는 말은 이교도의 가르침입니다. 사탄이 한 최대의 거짓말 중 하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하늘 어디엔가 있는 집)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교도적인 거짓 사상이 버젓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믿음 생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을 변질시킴으로 참된 성도들 생각 속에서 말끔히 씻겨져야 할 누룩인 것입니다.(지방교회 게시판의 글)

 

-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소위 하늘에 속한 저택이라는 것에 대한 미신적인 관념을 붙들고 있는데 요한복음14장3절은 그들이 주 예수께서 그들을 위해 그러한 저택을 예비하사 하늘로 가셨다고 믿고 있는 근거이다.(새 예루살렘. 205쪽)..... 그러한 미신은 여러 세기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단 믿는 이가 죽으면 그는 즉시 하늘에 속한 저택으로 간다고 전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또한 이 구절에 따라 하늘에 속한 저택이 완성될 때 주님이 다시 오사, 믿는 이들을 이 저택 안으로 영접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위트니스 리의 새 예루살렘, 206쪽)

 

-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죽으면 주 예수를 믿는 한,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들이 일단 죽으면 그들은 천당에 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여러분이 왕국의 비밀을 안다면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의 왕국, 315쪽)

 

-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는 아닐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으로부터 오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왕국, 329쪽)

 

그렇다면 또다른 양태론자인 권신찬 구원파의 천국관을 보자:

(권신찬교회의 홈페이지 - 질의와 응답에서)

- 143. 천년왕국과 천국과 교회

천국과 하나님나라와 하늘나라는 성경에 구별되어 있다. 천국은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아니다.

 

-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천국)

하나님나라와 천국과 하늘나라가 다르다.

하나님나라(교회), 낙원, 천국(지상천국, 천년왕국)은 시작과 끝이 있다.

하나님나라는 거듭난 자들 즉 영생을 얻은 자들이 성령과 함께 하는 교회이다.

 

물론 구원파의 주장은 성경과 다르다. 마태복음에서 “천국”은 다른 복음서에서 “하나님나라”로 동일한 표현을 하고 있으며, 어떤 성경구절은 한 구절에서 천국과 하나님나라를 구별이 없이 동시에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락교회 출신인 인터콥의 최바울도 역시 천국의 비밀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며, “천박한 기독교인들이 천국의 비밀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양태론자인 베뢰아의 주장은 무엇일까?

 

- 오늘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은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주께서 죄를 담당하셨기에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미 내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가 죽으시고 하늘로 들어가신 후에는 천국이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천국은 예수그리스도 자신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뢰아원강, 2005년, 771쪽)

 

베뢰아가 말하는 “천국”은 우리 몸 안을 뜻하며, 성령과 예수의 구별이 없다.

또한 베뢰아가 말하는 “재림”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다”는 것이다. 베뢰아는 위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여야만 할 것이다.

또한 베뢰아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셨던 천국을 부정한다, 즉 하늘보좌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르기 전까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천사가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 하나님이 아들을 위해서 하늘을 창조하시고 하늘에 아들의 보좌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보좌에 오르시기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하늘에 두시고 천사들이 그 이름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때 그 이름을 맡아 영광을 돌리는 자가 있었는데, 이렇게 최고로 영광받은 천사가 바로 주의 이름으로 온 여호와의 천사였습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361쪽)

 

- 하나님의 사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왔기 때문에 아들이 하늘에 들어가시기 전에 이미 하늘에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자가 보좌에 앉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좌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르실 때를 위해 예비된 것이고, 이 하늘은 다른 천사들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사자가 통치하고 다스리고 있었습니다.그러나 하늘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수행하던 일은 아들이 올라오면 중단됩니다. 그래서 여호와로서의 활동은 멈추는 것입니다. 아들이 오르시기 전까지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역사합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535쪽)

 

베뢰아에서는 아브라함은 낙원에 있었으며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부자와 나사로에서 아브라함은 낙원에 있었다고 성경은 말하기 때문에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천국, 곧 하나님나라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베뢰아는 미처 보지 못한 것 같다.

 

(마태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누가13: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아직도 베뢰아는 아브라함이 낙원에만 있었으며, 천국과 하나님나라에는 없었다고 변명을 할 것인가? 천국과 하나님나라가 우리 몸 안이라고 주장하는 베뢰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우리 몸 안에 있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사후 천국을 부정하는 양태론자들은 다음 성경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3)

 

-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성경에는 변화산 사건이 있다.

이 변화산 사건에 대해서 복음서들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마태: 죽기 전에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마16:28)

마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막9:1)

누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있다.(눅9:27)

 

모세와 엘리야는 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죽어야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왕국을 "죽기 전에" 보여주었으며 "죽기 전에" 미리 주님이 왕권을 갖고 오는 것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계 6:9-10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엎드려 대주재이신 하나님께 신원하는 것을 본 사도요한의 기록은 무엇인가? 이곳은 하나님은 안계시고 아브라함만 있는가?

베뢰아의 주장을 들어보자. 예수가 이 땅에 오시고 부활하기 전에는 하늘보좌가 비어 있었다고 주장을 하며, 여호와라고 불리는 천사가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베뢰아는 우리와 다른 성경을 사용하는가?

 

- 어떤 사람은 아들이 하늘에서 오셔서 다시 하늘로 가신 줄로 착각하지만, 예수는 아버지 품속에서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가 부활하여 하늘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가 올라가시기 전에는 보좌가 비어있었습니다. 보좌는 여호와의 이름으로만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서 받은 것입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603쪽)

 

베뢰아의 양태론은 성경의 오류를 설명하기 위하여 더욱 무리한 거짓주장을 하게 된다, 베뢰아의 입장에서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신(Spirit)”은 어떤 존재인가?

베뢰아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은 천사였다고 주장한다.

 

- 구약의 하나님의 신, 하나님이 보내신 영들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108 페이지)

 

- 구약시대에는 모두가 천사에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마귀론 61페이지)

 

- 창세기 1장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위를 운행하시니라" 할 때의 그 신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65 페이지)

 

물론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현현이 하나님의 사자로 언급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구약의 여호와가 모두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였다는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조작이 된다.

그렇다면 베뢰아에게는 ‘여호와’는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의 이름이고, ‘하나님의 신’은 성령이 아니라 천사가 되어 버린다. 더욱이 하나님은 하늘보좌에 계시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의 몸만이 천국일까?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당연히 신약에서 성도는 성전이 되어진다. 그 이유는 성령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이 거하는 우리 몸은 성전이 되어진다.

그러나 성도들의 몸만이 유일한 성전일까?

하나님께서 우리 몸 안에만 계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무소부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래 스데반은 하나님이 성전이라는 손으로 지은 건물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충만히 계신다고 말하였으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보좌에 <하나님>이 계시며 그 우편에 <예수가> 계시는 것을 보았다.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행 7: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행 7: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행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행 7: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 7: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스데반이 말한 성경본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충만히 편재하시는 분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3-24)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8-10)

 

하나님과 예수가 계시는 천국, 하늘보좌는 어느 구름 옆이나 어느 별에 자리잡은 물질적이며 특정한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적인 개념이다.

양태론을 주장하다 보니,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까지 부정하게 되며, 예수의 재림도 내면적인 재림으로 주장하게 된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모든 단추가 잘못 채워지며, 마지막 단추는 채울 곳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