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뉴에이지 배교의 주동력이 카발리스트 신지학자들임을 블로거는 여러 번에 걸쳐 말해 왔다. 그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기독교 속에 침투해 왔는데, 그 중의 하나인 "세대주의" 역시 어떤 형태로든 뉴에이지 신지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세대주의는 메시아닉 유대교(Messianic Judaism), 유대기독교(Judaeo-Christianity), 크리스천 시오니즘(Christian-Zionism) 등으로 불리는 이스라엘회복운동 또는 유대뿌리운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블로거는 "세대주의" 관련 글을 "유대뿌리운동" 카테고리에 싣는다.]
이 글에서는 먼저 "세대주의"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을 위해 세대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을 간단히 간추리고, 세대주의와 미스테리 종교와의 관계는 후에 차차 밝혀 보도록 하겠다.
세대주의와 이스라엘회복운동
플리머스 형제단의 존 넬슨 다비가 확립하고, C.I. 스코필드가 그의 관주성경을 통해 널리 퍼뜨린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 여러 세대에 따라 나뉜다는 그들의 주장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세대주의의 특징으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점과, 역사를 여러 개의 시대로 구분해서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모습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점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교회와 이스라엘을 엄격하게 별개의 것으로 구분한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둘"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2:13, 갈라디아서 3:28, 에베소서 2:14-15 참조)
스코필드의 제자이자 세대주의 달라스신학교 설립자 L.S. 체이퍼는 하나님이 서로 다른 두개의 목적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참고영문<<)
그들에 의하면, 다윗의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배척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상나라는 부득불 연기되었으며, 교회는 그 사이를 메꾸기 위해 잠시 등장한 존재이다. 따라서, 교회 시대는 하나님의 통치사 중에 잠깐 삽입되는 것으로서, 교회는 오순절에 생겨서 대환난 전에 들림을 당한다(환난전 휴거)고 주장한다. 따라서, 구약 전체와 신약의 종말론은 기본적으로 오로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구약적 관계를 위한 계시로서, 여기에 교회의 역할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구약"은 아직도 모두 유효하며, 이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모든 언약은 문자 그대로 메시야의 재림 때에 이 땅 위에서 온전히 회복되고 성취된다고 한다. 표로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신약교회를 불가분 삽입된 것으로 보며 구약적 입장을 고수하는 이런 세대주의는 자연적으로 교회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대신 이스라엘을 먼저 내세움으로써 유대교를 강조하고, 따라서 시오니즘을 주장하게 된다. 말하자면 세대주의에 따른 종말의 스케치는 모두 유대 시온왕국(천년왕국)의 건설 과정에 대한 것뿐이다. 물론,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것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유대인의 이스라엘 귀환(알리야)을 돕는 것 등이다.
(세대주의에 의하면) 교회의 휴거 후,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언약(구약 예언)의 "문자적" 성취는 크게 보아 "유대왕국의 회복"과 "유대종교의 회복" 두가지다. 여기에는 성전의 회복, 유대왕국의 회복, 제사와 절기 등의 유대 의식법의 회복등이 포함된다. 즉, 바로 "시오니즘"이 의미하는 그것들이다. 정형남 선교사는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을 설명하며, 이것이 세대주의의 주장과 같다고 말한다.
마지막 줄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과 교회는 분명히 다른 데도 불구하고,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잘못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6:15-16 참조) 위의 표에서도 보듯이, 바로 이것이 세대주의의 주장이다. 관심 있는 독자는 이 부분에 관한 참고글로 정이철 목사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문제점<<을 읽어 보기 바란다.
p.s.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세대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성경을 비유적/상징적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블로거도 성경을 해석할 때, 문자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은 우선 문자적 해석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주의해야 할 것은 신사도들의 성경의 풍유적인(allegorical) 해석이다. 하지만 성경을 100%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또한 중의(重意)적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휴거에 대한 참고글: 진노전(Pre-wrath) 휴거 - 계시록의 대환난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
2010/12/18 16:06
[다음은 미주아멘넷 자유게시판<<에서 김** 님의 글에 대한 반박글로서 thomas 님이 올린 글입니다. 유대뿌리/이스라엘회복운동인 "메시아닉 쥬" 운동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고 있어서 스크랩합니다. 참고로, 김**님은 자신이 인터콥이 아니라 모퉁이돌(24시간기도)에 속했다고 말합니다.]
김** 님! (2) 메시아닉주/인터콥/다락방
"인터콥의 후원자이고 아프간 단기사역의 경험자"이신 김** 님께 알려드립니다.
(1) 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셨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셨습니다!
"메시아닉주는 유대교 크리스찬의 별칭으로 김*철 감독(이단 류*수 추종신도로 집사) 화재 영화 '회복'의 주인공들을 말합니다/ 한편 류*수 목사는 다락방지도자로 이단정죄를 받았으나 15여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서는 교계의 결정과는 별개로 다른 신자들과 소속교단을 떠나 자유롭게 교류가 이뤄지고 있고 목사들님 사이에서도 신학교 동기동창별로 또는 향우회로 인적교제가 활발합니다."
(2) 김** 님께서 언급하신 "메시아닉주" 또는 "유대교 크리스찬"은 Jewish Christian Adoptionist라고 신학자들은 부릅니다. 고유명칭은 Ebionites 입니다.
이들을 "메시아닉주"라고 하는 이유는, 이들이 정통 유대교의 정치-군사적 메시야觀과는 달리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흠없는(의로운) 완벽한 희생제물로서 세상 죄를 지신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3)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들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침례[세례]를 받기 전까지 인간이었는데 세례[침례]時에 하나님의 아들로 adopt(양자)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성적 교섭에 의해 태어났다고 하여, 그들의 경전 중의 하나는 마태복음을 아람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1장과 2장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전이 남아 있지는 않고 "이단감별사^^" 이레니우스의 유명한 反이단서에 그렇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이들은 예수님이 완전한 의인으로서 흠없는 희생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예배]드릴 필요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양자로 입적하셨고 그의 의로움을 흠향하셔서 창조주 (유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살리셨고 승천시켰다고 말합니다.
더 오래된 필사본들에는 누가복음 난외주에 나온 You are my Son. Today I have begotten you.가 쓰였는데, 초대교회 때 발흥한 이들 "유대인 크리스챤 어답션니스트"들의 악용으로 후대의 누가복음 필사자들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를 선호했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5) 이들은 예수믿는 사람이 되려면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코셔, 안식일, 할례 등 구약성서에 나오는 수백가지 율법을 지키는 일이 "유대인 크리스챤"되는 필수조건입니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데 사도행전 21장을 보면 바울의 마지막 전도여행 후 체포되는 과정에 야고보의 얘기가 나옵니다.
Ebionites는 야고보를 저들의 지도자로 여깁니다.
사도 바울이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책망한 일이나, 갈라디아서를 포함한 여러 서신에서 이방인으로서 크리스챤이 된 성도들에게 구약의 율법 조항을 따를 필요가 없다며 이를 강요하는 "유대인 크리스챤"들을 강력히 <<저주>>한 말씀이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6) 히브리어는,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토를라이프 보만, 허혁 옮김, 분도출판사) 같은 책에서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물질적으로 구체적이고, 動적이며, 도구로서 사물을 표현합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정치-군사적 권력으로 이해하듯이,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을 받아들일 수 없듯이, 오늘날도 "왕의 대로"니 "예루살렘 회복"이니 하며 이땅에 實在하는 사물과 存在하는 實際와 사실에 관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다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터와 건축물에 집착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와 역사에 빌트-인되어 있습니다.
(7)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3절에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할 때 <<나셨고>>의 과거형은 헬라어에서 번역할 때 Ebionites를 반박하는 중요한 성경구절이었습니다.
로이드존스의 <로마서 강해> 제7권 p131에는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KJV과 RSV를 비교하며 <나셨고>의 시제에 관한 설명을 합니다. 그부분의 한글 번역은 잘못된 부분으로서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어야 합니다.
...여기서 물론 우리는 기독교 교리의 완벽한 요약과 줄거리를 매우 눈부시고도 놀라운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 셈입니다. 복음은 무엇에 관한 것입니까? 복음은 우리로부터 출발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난제나 체험 등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과 관련하여 행하신 일의 위대한 선포요, 공표입니다. 그 아들은 그(성부 하나님)와 [거기] 함께 있었고, 영원에서부터 “아버지 품 속에 있는” (요1:18), 시초(始初)가 없는, 아버지와 동등하게 [영원한] 분이십니다…
그 성구(요1:18)는 그(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습니다” (롬1:3 <개정>; “made of the seed of David according to the flesh”) 그 아들이 영원에서부터 아버지 품 속에 항상 계셨다는 논쟁점을 사도가 어떻게 증명하는지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나셨다(was made)”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것을 부분적으로 증명합니다.
그러면 그 뜻은 무엇입니까?… [그]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토록 계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 전에 있었던 무엇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니고, 또는 그가 그때서야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He began to be something that He was not before -- not that He has begun to be, or that He has now come into existence.
로이드 존스의 made of에 대한 해석의 중심은 그 동사의 시제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시점이, 다윗의 후손인 요셉과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에게 (실제로 이 지구상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나신” 기원전 4(?)년 쯤의 그때가 아니라, 다윗 때에 그리고 그 보다 더 전인 영원부터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즉 과거에 있었던 일을 바울이 과거시제를 써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 김** 님이 옹호한 "유대교 크리스챤" adoptionist는 <<영존>>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이점을 핵심 ***에게만 몰래 전수한다는 다락방의 류*수 씨나, 그의 "추종 신도"라고 김** 님께서 밝히신 김某 감독의 "회복", 쭝국판 *** 사이비 영지주의자인 위트니스 리의 ***들이 떠드는 "예루살렘 회복"을 ***고 다니는 인*콥 "사역자"들의 *舌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참고 기사: 베뢰아 신학 주장하는 인터콥 최바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