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민족에게 지은 죄악을 회개하자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이유
반석과생수 ㆍ 2013-08-18 (일) 22:33 ㆍIP: 74.xxx.79 ㆍ조회: 175
http://usaamen.net/news/board.php?board=free&command=body&no=8745&
개신교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지은 죄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
어떤 분이 기독교의 죄악을 열거하고 그 안에 개신교인들을 집어 넣었으나 그런 죄는 요즘 시대를 사는 개신교인들이 동의하지를 않을 뿐만 아니라 인정하지를 않는다. 개신교인들을 천주교의 기독교인의 범주 안에 끼워 넣지 말아야 한다. 천주교는 그동안 교황이 몇 번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정도면 되었지 언제까지 어느 정도를 해야 하는가?
설령 위로의 차원에서 개신교인들이 유대인들을 찾아가 허그하고 포옹하고 용서를 빈다고 할 지라도, 그런 모습이 이슬람인에게는 별로 달가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함께 그러는 모습이 오히려 이슬람인을 자극하고 이슬람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오히려 이슬람 선교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위로의 차원이나 혹 용서를 비는 차원에서 할지라도 이슬람인들이 보는 그런 공개적인/ 대대적인 방법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밀히 조용히 전도하면서 1:1 로 이뤄지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할 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유순하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을 전도하면서 얼마던지 조용히 용서를 빌거나, 위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공개적/행사적인 그런 차원의 것은 옳지 않다.
“유대민족에게 지은 죄를 청산하자”는 이 움직임의 배후에는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지탱해온 개혁주의신학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에 비추한다. 가장 복음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대체신학으로 규정하고 사라지게 하겠다는 무서운 발상을 가졌기 때문에 위험하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우신 교회, 하나님의 가장 큰 비밀인 교회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이스라엘(유대인)을 세우려는 것 자체가 무서운 발상이요, 무서운 궤계이기에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가장 성서적이요 복음적인 개혁주의 신앙을 사라지게 한 후에 자리잡게 할 것은 세대주의 신학과 세대주의 신앙이기에 위험하다. 세대주의에는 좋은 점도 있으나, 특히 종말론(제림론)에 있어선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기에 위험하다. 한 예로서 예루살렘 제3성전 건축이라든지, 제 3 성전이 이뤄지면 재림이 온다는 등, 감람산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등,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천년왕국이 이뤄진다는 등등의 관점이 비성적이기에 위험하다.
이러한 운동을 펼치는 분들이 주로 세대주의자들로서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반대한다. 신사도운동은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이 교계 신학자들의 중론이다.
이스라엘은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민족에 속한다.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자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전도의 대상이기에 마땅히 전도를 해야 한다. 전도하면서 그들이 우리의 죄악을 제기한다면 마땅히 사죄를 해야 한다. 허나 신사도운동가들이 세대주의로 무장하여 개혁신앙을 타파하려는 무서운 발상엔 반대한다. 하나님의 가장 큰 비밀이요, 주께서 세우신 교회를 없애고 유대인을 그 자리에 세우려는 계획은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신사도운동가들이 추구하는 그 운동에 우리는 따라갈 수 없다.
"신사도운동이 가르치는 "동일시 회개"란:
다른 사람이 대신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해준다는 것을 동일시 회개기도라고 하고 신사도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 원리는 비성경적이며, 천주교회에서 사제에게 죄를 고하면 사제가 그 죄인을 대신해서 회개기도 해주는 것, 고해성사와 같은 원리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자기의 지은 죄는 주님과 자기 자신과의 일대일의 만남이 있어야 하며 개별적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타파하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사도성 세대주의 신학을 타파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권면한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6-8절)
송만석 장로의 발언
http://www.usaamen.net/news/board.php?board=news&command=body&no=5405
1.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아랍인과 유대인이 화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연합되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다.
2.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된 것처럼 이방인이 구원받기 위해 이스라엘이 희생이 된것이다. 이방인들이 돌아오고
이스라엘이 돌아오면 역사가 완성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돌아오기까지 이스라엘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을
겪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이스라엘을 많은 다른 국가중의 한 국가로 보지 말고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마지막 카드가 될것이다.
3. 4) 종국적으로 모든 나라의 운명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와 맞물려 있다.
4. 오늘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몇몇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가리키고 있는 여러곳에 선포하는 임무를 맡기고 있다.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는 것은 모든 민족들이 볼수 있도록 하나님이 높이 든 구원의 상징이다. 이 시대에 모든 민족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계획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중요하면서도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5. 모든 민족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때가 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는데 그들이 어떻게 공헌 했는지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그때 가서는 어느 민족도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변명할수
없을 것이다.
부르클린 성명서
http://www.usaamen.net/news/board.php?board=news&command=body&no=7590
- 우리는 예루살렘의 평화를 지지한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평안과 안전을 지키며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선포하며, 예루살렘을 나누려는 어떠한 계획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임을 결의한다.
또한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아랍도 이스라엘과 동일한 마음으로 사랑할 것이다.
- 우리는 교회가운데 뿌리내리고 있는 대체신학이 사라지도록 노력할 것을 결의한다.
이스라엘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동안 교회는 중동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버려졌고 대신 그 자리에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로서 이스라엘의 자리를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1:1에서 "하나님이 자기 박성을 버리셨느냐 그럴수 없느니라"라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벌하기는 하셨지만 결코 포기하지는 않으셨으며
이제 하나님의 때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계신다.
-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기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부인하는
것이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 기독교인들에 필요한
것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이방인들이 누리고 있는 복음에 대한 거룩한 질투심을 갖도록 하는 것임을 결의한다.
- 오늘날 열방으로의 복음전파가 확산되고 있으며 미전도종족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
또한 예수님과 십자가에 대해 마음을 굳게 닫았던 유대인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님께로 돌아오고 있다. 이는 구속사의 시계가 마지막 때를 가르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유대인이 빠진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불가능하다.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된 선교는 다시 유대인으로 완성될것이기 때문이다.
이재훈목사의 발언
1. 이재훈 목사는 그동안 유대인 선교가 소외된 것은 성경해석에 대한 오해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중심으로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대체
신학'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가지신 계획,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계획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선교가 가려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2. 둘째, 구약의 이스라엘이 교회로 대체되었다는 신학으로 인해 구약의 모든 이스라엘의 역사를 교회의
역사로 해석해 버린 것 이다. 어거스틴으로 부터 초대교회로 부터 일부 신학자들에 의해 내려왔던 신학의 정통에
의해서 많은 복음주의권에서도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대체 신학'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가지신 계획, 역사적인 위치,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계획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선교가 가려지게 된 두번째 오해가 있다.
3. 구약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을 통해 성전을 세우신다고 말씀하시고 솔로몬을 통해 역사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그러나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성전이 이루어졌다.
4. 약속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구약과 신약이 한 유니티를 이루고 있다는 관점을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시작할때 이스라엘 회복과 이스라엘 선교는 중요하게 부곽되고,
로마서 9-11장에서 간증하다시피 고백하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우리가 이해하게 된다.
5.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우리는 주후 70년, 135년 유대민족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징벌로 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한다.
십자군이나 홀로코스트의 과거역사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에 대해 무시하고 정죄하고 잘못행했던 많은 부분에 대한 무지를
가지고 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들이 나치에 의해 끌려갈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의 울부짖음을 못들은 척 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남아있는 감정적인
역사적인 상처가 있다.
6. 복음전도에 있어 많은 장벽들이 있다. 물론 유대인들이
하나님앞에 한 죄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장벽이 있다.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모든 민족과 개인에게 있는 장벽이 있다. 그것은 민족을 넘어 개인의 책임이다. 개인이 하나님앞에 가지고 있는 장벽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민족 누구로 부터
받았던 상처로 인한 장벽이 있다면 바로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 회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장벽을 치유하고
회복을 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오해와 무지라는 장벽때문에 이스라엘 선교에 대한 많은 장벽들이 있었다.
7.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가 있다. 이방인으로서 원가지에
접붙임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우리를 향한 경고이다. 18절에 자랑하지 말라고 했고,
20절에는 교만하지 말라고 했다. 자랑하고 교만하지 말라는 이유는 우리 많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교만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 이미 예언하신 것이다.
이번 집회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있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영적 자랑과 교만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http://www.usaamen.net/news/board.php?board=news&command=body&no=7594
copy 글: 이멘냇 리플란 : 반대하는 이유의 글 펌
72.xxx.16
1) 무천년설, 2) 후천년설, 3)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4) 역사주의적 전천년설 입니다.학자들마다 보는 눈이 다르기에 이러한 네(4) 개의 설로 나뉘는 것입니다.
물론 공부하면서 위의 4개의 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며, 각 자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1)을 선택하고, 어떤 분은 2)를 지지하고, 어느 분은 3)을 선호하고, 어떤 분은 4)를 더 선호/선택/지지하는 것입니다. ( page 1)
72.xxx.16
그런데, 원글의 님들은 자기들이 좋아하고 지지하는 “세대주의”를 기초로 하여, 행사를 하고, Event화 시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위의 네(4) 가지의 설 가운데 하나인 “세대주의”로만 모든 사람들을 몰아가려는 것이기에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만약, 다른 설을 좋아하는 분들 역시, 각 각 따로 event 화시켜 주장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4가지의 Event가 발생하여 교인들에게 일대 혼돈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신중한 분들은 절대로 위의 네(4) 가지의 설 가운데 하나를 절대화 하질 않고, Event 화 시키지도 않는 것입니다.
위의 원글의 님들이 “왜 저럴까?”를 생각해볼 때, 결론은 다른 설 3개는 모른체 “세대주의”만 배웠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니면 어떤 세대주의의 책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재림론은 중요합니다. 천년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네(4)개의 학설이 있던 말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 계명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12)
내일 그리스도의 재림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 순간까지 교회생활/ 믿음생활/가정생활/직장생활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고, 오늘도 내 주위의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땅끝까지(동.서.남.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입니다. (page 2 )
72.xxx.16
원글의 님들은 모두 세대주의에 빠졌고, 그러기에 유대인 중심적인 사고방식만 가졌고, 이상한 구호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역시 중요합니다.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건 아닙니다.
(page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