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세대주의 신학의 비판|신학자료
2010.02.22 12:06
세대주의와 이스라엘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 연구위원
사이비종교피해자연맹 이단상담소장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대표
이인규

세대주의라는 신학적인 성향이 있는데 19세기 성공회 신부였던 존 다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세대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며, 그들은 “Plymouth Brethen”라는 명칭으로 시작하였는데, 그 “형제”라는 단어 자체가 교파를 초월하며. 목사제도를 없애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교파가 없어야 한다는 이 단체 역시 교리적인 문제로서 여러 개의 파로 분열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존 다비가 이끄는 형제교회는 매우 배타적이며, 다른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공격적이고 패쇄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며, 존다비의 동료들마저 교리적인 갈등으로 그를 외면하고 떠나는 일이 매우 많았다고 전해진다. 존다비는 자신의 교리를 “재발견된 진리”라고 말하였지만, 결국 기존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하고 반박하는 또다른 교리이었을 뿐이었다. 특히 이 배타적 형제교회의영향을 받은 교파로부터 우리나라에 구원파와 지방교회가 전파되어지는데, 우리는 이들을 극단적세대주의라고 부른다.

세대주의의 비판

세대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이며, 이들의 연관성과 지속성은 단절되어진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구약 백성에게 주려고 가져왔으나 그들이 그를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왕국은 일단 보류 혹은 연기되어 일단 한쪽에 제쳐 놓았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대, 즉 교회 시대를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즉 신약교회의 시대는 소위 “중대한 삽입(great parenthesis)”이라고 불려지는데, 이스라엘과 왕국 사이에 있는 시대가 되어진다.

이 세대주의의 특징은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점에서 교회는 7년 환란 전에 이 세상 밖으로 휴거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류시켰던 이스라엘을 위한 구약의 계획으로 다시 되돌아가신다는 것이다. 그 계획은 타락한 왕국을 회복된 이스라엘로 이끌어 오시는 것을 말한다. 즉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며, 미래적이며 즉 전천년왕국이다.
그들에게 신약교회는 중간에 삽입된 들러리 역할에 지나지 않으며, 신약교회가 휴거를 받은 후에야 이스라엘의 회개가 있을 것이고, 비로소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종말론은 언제나 이스라엘로 연계되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극단적 세대주의적 종말론자들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세가지 직분(왕, 선지자, 제사장)에서 특별히 왕적인 직분을 강조하게 된다, 인터콥 최바울 선교사의 책의 제목 역시 “왕의 대로”이며, 그가 주장하는 것은 “백투예루살렘”이다. 세대주의를 따르는 신사도운동권에서 예수의 왕권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히 8:6-10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구약은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집에 새 언약을 세우셨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다시 말하여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옛 언약이 잠시 보류되었고,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또다른 언약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옛 언약이 폐하여진 것이며 새로운 언약이 다시 세워진 것이다. 과연 히브리서 기자는 자의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였을까? 이러한 주장은 바로 구약 예레미야서를 반영한 것으로서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을 새운 것이다.

렘 31: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스라엘과의 옛 언약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어김으로서 파하여진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언약이 잠시 보류된 것이 아니며, 그 약속의 유효성이 지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파하여짐으로서 새로운 언약이 세워진 것이다. 이 약속은 애굽땅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한 그 첫 언약이다.

레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그렇다면 새 언약은 무엇일까? 새 언약은 선택된 민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세운언약을 말한다. 즉 예수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은 자발적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민족으로 적용되어진다.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마 8:11-12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다시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본 자손들은 쫓겨나고 동서로부터 온 다른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구원이 보류되어진 것이 아니라, 동서로부터 오는 많은 사람들로 천국의 자리가 대체되어진 것을 뜻한다.

마 22장에서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의 비유는 더 이상 천국백성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청함을 거부할 때에 그것이 보류된 것이 아니라, 대신 다른 손님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즉 혼인잔치에서 청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초청을 거절하자 이방인들로 그 자리가 대신 채워진 것이며, 그것은 나중에 다시 이스라엘이 초청을 받는다는 내용이 결코 아니다. 청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적다는 것은 보류가 아니라 거부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경적인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아들로 재해석 된다.

갈 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모든 혈통과 종족과 관계없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시 강조하고 있다.

갈 3:27-29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으로서 그 언약이 지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로 택하신 영적 개념의 백성으로 재적용 되어진다. 이스라엘이란 개념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백성으로서 영적인 개념으로 재해석 되어질 때에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었으며, 육신의 자녀가 아닌 영적인 자녀로 재조명되어진다.

롬 9: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위의 로마서 9장6절 본문의 이스라엘이란 단어 중, 전자는 육적이며 혈통적인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지만, 후자의 이스라엘은 영적이며 신실한 내면적인 믿음의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키는 것은 분명하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보고 “참이스라엘”이라고 말씀 하셨을 때에(요1:47),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었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으로서 혈통적의 의미가 전혀 아니었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신 참이스라엘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혈통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면적인 개념이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벧전 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된 것이며, 제사장이 되며, 그의 나라가 되고, 소유된 백성이 되어진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 나라를 거절하였고, 하나님은 그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에클레시아에게 주었다. 그 교회는 이스라엘 대신에 접붙임을 받은 것이다.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은 것이다.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코넬료를 만나기 전에 베드로가 보았던 환상은, 결코 음식물에 대한 율법이 아니라 베드로가 가진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율법주의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예루살렘의 거룩한 성은 이스라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 것이 아니며, 새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하늘에서부터 내려오게 된다.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적 개념은 신약에 와서 교회라는 선택적 개념으로 바뀌게 되어진다. 이제 신실한 내면적 믿음으로 자발적인 참여를 한 하나님의 참백성이 그 새 예루살렘 성의 기둥이 될 것이다.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스라엘 열두지파는 예수를 좇는 믿음의 백성들이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삼판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마 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참고 3:9)

유대인들은 사단의 회로도 비유되었다. 진정한 이스라엘의 조건은 표면적이거나 육신적, 혈통적이 아니며, 내면적인 신령과 마음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롬 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세대주의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왕국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이방인들의 교회가 세웠으며, 그 교회가 형성된 후에 다시 유대인들이 회심을 하므로서 유대인만의 왕국이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더욱이 세대주의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단 하나의 성경구절은 행1:6 뿐이다.

행 1:6-8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언제인가를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말씀하셨다. 세대주의 학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되지 않는다면, “회복되지 않는다”고 답변을 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와 기한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 언젠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승천을 앞둔 시점이다.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메시야로 알았던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그 기대를 포기하였는데, 예수가 다시 부활하신 능력을 보고, 제자들은 정치적인 메시야로서의 기대를 다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스라엘이 언제 회복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답변은 1장8절에서 나타난다.
성령이 임하면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모든 족속들에게 전파되는 성령에 의한 하나님나라의 확장이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하신 것이다. 즉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확인하고 정치적인 메시야로서의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인가를 질문한 것이고, 예수님은 항상 답변해 왔던 방식대로, 질문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답변을 하신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국한된 정치적인 회복이 아니라,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성령의 총체적인 사역시대를 언급하신 것이다.

세대주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성경구절은 또 하나가 있다.

롬 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과연 본문에서 “온 이스라엘”이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킬까?
본문의 앞부분을 보면 접붙힘이 언급된다, 즉 이방인은 새로운 나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나무에 접붙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뿌리가 거룩한 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는 구절의 뿌리는 다른 뿌리가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뿌리를 뜻한다. 온 이스라엘은 모든 이스라엘 만족이 아니라, 구원을 받기로 선택된 이스라엘만을 뜻한다고 본다. 그러한 해석이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들어오기 까지”라는 앞부분의 의미에 적합하다. 충분한 숫자의 이방인들이 들어오면 완악하지 않았던 남아있는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그 뒷 구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롬 11: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개역성경은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라고 번역함으로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 순종치 않은 것처럼 잘못 번역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였다는 뜻이다.

[공동번역] 전에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표준새번역]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KJV] For as ye in times past have not believed God, yet have now obtained mercy through their unbelief:

[NIV] Just as you who were at one time disobedient to God have now received mercy as a result of their disobedience,

즉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대신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구원을 받기로 택함을 받은 일부 이스라엘을 온 이스라엘로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문맥에 맞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완악한 이스라엘의 숫자만큼 이방인들이 대신 채워졌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앞구절에서 이방인들이 참감람나무에 접붙힘을 받는다는 내용과도 연결이 된다.

하나님은 충분한 숫자의 이방인을 부르시기로 작정하셨고, 또 남은 유대인들도 부르시기로 작정하셨다, 그 부르시기로 작정한 남은 유대인들을 온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시기로 하셨다면, 성경에 기록된 앞부분의 구절과 뒷부분의 구절은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 되어질 것이다.

구약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에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9장8절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전하는 멧세지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신약에서 아모스 본문은 그 이스라엘 자손을 별도로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들과 모든 이방인을 함께 포함시키고 있다.

행 15:15-17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곧 아이합의 24/7 예배이다. 최근에 신사도운동과 아이합등에서 극단적 세대주의와 이스라엘 회복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세대주의의 잘못된 비성경적인 해석과 오류는 수없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세대주의와 종말론을 연계한 사이비 세대주의는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신사도운동의 단체들이며, 그리고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는 인터콥이나 G12, KIBI등이다.

메시아닉쥬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일단의 무리를 “메시야닉쥬”라고 부른다. 세대주의에서는 이것을 이스라엘의 회복의 징조 혹은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이 메시야닉쥬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기는 하되, 그들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며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보지 않으며, 단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 메시야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구원론은 율법주의이며, 그들의 교회론과 종말론도 기독교의 것과 다르다.

우리는 이스라엘 중에서 회심하여 예수를 믿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메시야닉쥬의 견해는 자신들이 교회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약속을 갖고 있는 별도의 하나님의 왕국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사와 종말에서 중요한 모티브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