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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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낙원으로 간다. 물론 낙원을 우리는 천국, 혹은 천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낙원과 천국은 그 의미가 좀 다르지만 물론 낙원도 천국이다. 알기쉽게 말하자면 낙원은 천국의 영역 내에 포함되어진다고 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천국은 넓은 의미를 갖지만, 그러나 궁극적이며 종말적인 천국은 예수재림 후의 구원 받은 자들의 영원한 거처를 말하며, 낙원은 재림 전에 죽은 자들 중 의로운 자들의 영혼이 예수님의 재림까지 시한적으로 머무는 영적인 개념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낙원도 천국, 하나님나라의 영역이며 천국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낙원이란 카톨릭이 주장하는 중간 장소적인 개념과 같은가?

정확히 표현하자면, 낙원은 사후영혼이 가는 영적개념(靈界)으로서, 어떤 물질적이고 장소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태적인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낙원이 지구 상 어느 장소나 지역에 실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낙원은 카톨릭이 말하는 연옥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그곳은 부자와 나사로의 경우와 같이 회개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낙원은 구체적으로 신약에 세 번이 언급된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우리는 먼저 낙원에 대한 정통신학적인 견해를 살펴보자.

물론 성경적인 개념을 외면하면서, 교리와 신학을 우선적으로 살펴보자는 뜻은 아니다.

이 용어적인 개념을 정통신학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함이다.

먼저 아가폐 성경사전을 본다.

  

"또한 낙원은 의로운 자가 죽은 후에 사는 거처로 간주되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낙원과 반대되는 곳은 악인들이 죽은 후에 가는 음부(스올/하데스)로 간주되어 있다. 예수님과 함께 처형을 당하는 강도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예수께 요청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는 그 날 그 강도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241쪽)

          

다음 데일리 성경 교리연구를 보자.(38쪽)

 

<중간기 상태의 개신교의 견해>

중간기 상태는 역사 이래로 죽은 자들의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에 의한 최후의 심판 때까지 대기하는 시간, 혹은 그 기간의 상태를 말한다.

(1) 인간은 죽음과 동시에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며 그 영혼은 중간기 처소인 '낙원'과 '음부'로 각각 들어간다. (눅16:23-25)

(2) 최종심판은 죽음 직후 이루어 지지 않는다. 세상 끝 날에 각인에 대한 최종심판이 있다. (계20:12-15)

(3) 영생과 영벌의 장소는 세상 끝날 이뤄질 천국으로서의 신천지와 영원한 지옥이다.(계20:10) 지금의 중간기 상태는 완전한 영생과 영벌의 상태와 족히 비교될 수 없다.

(4) 중간기 상태에서는 최종심판에 영향을 줄 회개의 기회가 일체 없다.(시6:5. 눅 16:25-26. 히9;27)

(5) 중간기 처소인 낙원과 음부에도 각각 축복과 형벌이 있지만 새하늘과 새 땅에서의 행복과 형벌에는 비교될 수 없다.(계20:10)

 

즉 낙원은 죽은 자의 영혼이 거하는 영적인 장소이며, 예수의 재림 후에 신체적인 부활을 하게 되면 천국에서 영원히 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가장 잘 묘사된 것이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성경구절일 것이다. 다음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이다.

            

"이 비유에 나오는 사후생활에 관한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은 사후생활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적어도 사후생활에 관하여 되돌이킬 수 없이 좋은 가능성과 바꾸어질 수 없이 악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덧붙혀 말해야 한다."(도널드거스리, New Testament Theology 820 쪽)

 

크레그 볼룸버그의 "비유해석학"을 인용한다.

 

"그래서 이 비유의 중요한 교훈이 이런 경향을 따른다고 말할 수 있다.

(1) 나사로처럼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들은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 이끌려 갈 것이다.

(2) 부자처럼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을 맛볼 것이다. (263쪽)

 

즉 정통 개신교는 분명히 심판이 세상 끝날 때에 예수님 재림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십자가의 강도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십자가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며, 그렇다면 그 강도는 예수님 재림이전에 심판도 없이 천국에 갔다는 이야기일까? 다시 말해서 엄격히 말하자면, 천국과 낙원은 동일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천국,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매우 광역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것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에서는 궁극적이고 종말적인 개념의 천국을 말한다.

낙원은 성경적인 의미로 볼 때에 중간상태의 개념으로 볼수 있다.

          

바울은 고후 12장 4절에서처럼 낙원에 갔다 온적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심판없이 천국이라는 장소에 갔다가 다시 올 수는 없다. 구약에도 낙원은 세번 묘사된다

느2;8의 삼림. 전2;5의 동산. 아4;13의 과수원 이며 에덴동산을 가르킨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낙원을 죽은자의 영혼이 최후의 심판까지 대기하는 중간적인 상태의 개념으로 보고 있으며 그러나 최종심판에 영향을 주는 회개의 기회가 없다.

카톨릭은 연옥이라는 중간개념을 설명하며 연옥은 영세를 받았으나 공덕이 부족하여 천국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소정의 정화기간이 되면 천국으로 옮기는 곳으로 믿으며, 이것은 본인과 친지와 가족의 기도와 간구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중세의 면죄부 사건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천국은 현재적이며 진행적이며 확대되어지며, 종말적으로 완성되어지며 그 통치영역을 더욱 확장하며 진행될 것이다.  영역적이며 개념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영역적인 의미를 포괄한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종말적인 개념의 장소로 생각하는 곳도 물론 천국이다.

천국에 대한 현재적이고 내면적인 의미만을 강조함으로 인하여, 종말적이며 궁극적인 개념을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

 

성경에는 변화산 사건이 있다.

이 변화산 사건에 대해서 복음서들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마태: 죽기 전에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마16:28)

마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막9:1)

누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있다.(눅9:27)

 

모세와 엘리야는 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죽어야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왕국을 "죽기 전에" 보여주었으며 "죽기 전에" 미리 주님이 왕권을 갖고 오는 것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정통신학이 말하는 낙원과 천국을 더 살펴보자....

 

#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도 예수님은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는다"(눅16:25) 라고 했는데, 여기서 아브라함은 부자가 가기를 아주 갈망하는 아주 안락한 곳에서 - 분명히 지옥불이 타오르는 곳이 아닌 - 의식을 가지고 거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부활 전이기 때문에 나사로도 구약의 성도와 같이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신자 들도 죽은 후에 바로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겼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하다. (웨인그루뎀의 조직신학, 중, 520쪽)

 

# 대다수의 사람들은 천당을 이 세상에서도 누리고, 또한 미래에도 영원히 있게될 하나의 상태로 생각 한다. 그러나 성경은 천당이 <하나의 장소>임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거할 곳이 많은 아버지의 집>인 것이다. 신자들은 그 안에 있고 불신자들은 그 밖에 있게 될 것이다. 의인들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뿐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받게 될 것이다.(루이스 벌콥, 기독교 신학개론, 379쪽)

 

물론 천당이란 단어는 성경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서 가는 궁극적이며 종말적인 천국도 하나의 장소적 개념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3)

 

-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12:7)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12:23-24)

 

-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2-24)

 

-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8-10)

 

-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116:15)

 

-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계6:9)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 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20:4)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직접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