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학살설 논쟁] 신성남, 그는 과연 <교회 개혁>을 외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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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지적하는 것은, 더 이상 이런 무책임한 글들이 남발되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함입니다.권현익목사/ GMS선교사l승인2015.11.11l수정2015.12.20 18:46

지면 상의 논쟁으로 대충 마무리 할 수 있는 일을,  한 개인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그를 지적하는 것은,  더 이상 이런 무책임한 글들이 남발되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함입니다.

▲ 권현익목사 / GMS선교사

신성남 집사는·<어쩔까나 한국교회>의 저자이며, 현재 감리교 목사님이 운영하는 당당 뉴스에 교회 개혁을 위한 칼럼이 계속 연재되고 있습니다.

 

1. 여러 차례의 권면

학문적(?)인 토론에서 왠 이런 인신 공격의 상황으로 바뀌었는가? 라고 당황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그 동안의 상황을 먼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성남 집사님은 카스텔리옹의 글을 근거로 <칼뱅의 학살>은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확신할 뿐 아니라, 그 확신을 근거로 칼뱅을 <살인자>라고 <단정>하고 <정죄>하는 글을 당당 뉴스에 <신학은 '정통', 사역은 ‘밥통', '칼뱅'의 제네바 학살과 종교개혁사의 그늘>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 글을 접한 저는 역사를 공부하는 늦깍기 학생의 신분으로 카스텔리옹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는 <쓰레기 자료>에  불가함을 조목 조목 1 차 사료를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논쟁이 계속 이어지려면, 저의 글을 반박하여 카스텔리옹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일 수 밖에 없는 새로운 근거를 제시하여야, 집사님이 주장한 <칼뱅의 살상>은 역사적 사실 혹은 객관적인 글로 인정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저에게 다음과 같은 메일로 이 논쟁을 마무리 하려고 하였습니다.

"결론은... 저는 제네바 학살이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는 카스텔로의 <주장>을 다양하게 <비평>은 하되, 그냥 <묵살>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최종 해석>은 <학계>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본인의 메일에서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스스로 <시인>하였음에도, 카스텔리옹의 주장은 묵살하지 말자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카스텔리옹의 주장이 사실인데, 칼뱅의 학살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카스텔리옹의 주장이 별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는 자기 고백인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이 최종 <해석>은 <학계>에 맡기자는 제안은 본인 스스로를 <새로운 사료>라도 발표한 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럴려면 역사 전공자도 아닌 분이 애초부터 이 문제를 논할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했던 부분이 아닐런지요?

 

2. 누가 교만하단 말인가?

제 글을 반박할 학술적인 능력이나 역사 사료를 갖고 있지 않다면, 제한된 자료 속에 너무 성급하게 역사적 사실인냥 감정적인 글을 올려 죄송하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지성인이요, 학자다운 자세요, 교회 개혁을 외치는 개혁자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수 차례의 권면에도 집사님은 저를 <교만>하다고 지적하는 메일을 보내주셨는데, 교만의 근거가 “카스텔로가 ‘사실무근'이라는 그 <용감한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요? 자신의 주장만 옳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틀리거나 악의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또한 무슨 경우인지요.”라 하셨는데, 이를 두고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본인의 글이야 말로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자료를 근거로 칼뱅의 학살에 대하여 <확신>을 넘어,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처럼 살인자로 몰았던 그의 <용감 무식>한 <확신>을 두고  <교만>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3. 그의 주장인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개 가죽> !!

집사님이 주창하는 교회 <개혁>은  <구혁>(狗革) 즉, <개 가죽>에 지나지 않는 무의미한 <공허한 외침>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개혁자>는 <내 몸>을 살리겠다는 일사 각오의 자세로 <자기 몸>의 일부분을 짤라내는 것이 개혁자의 진정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신 집사님은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교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날카로운 비수로 집요하게 난도질하고 까발리면서, 정작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무한히 <너그러운 것>은 진정한 개혁자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제 글을 보신 어느 분의 댓글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자기 개혁>이 없는 사람이 외치는 교회개혁은 꼭 이렇더라구요. ‘제가 잘 몰랐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말도 안하는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어쩌고 저쩌고…”

 

4. 그에게서 <세르베의 비열함>이 !!

재판 중에 자기 논리의 정당성을 밝혀내려던 세르베는 “삼위일체는 초대교회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우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교부 유스티누스의 권위로 확고히 무장하여 정당성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 때 깔뱅은 토론을 중단하고, 유스티누스의 <책>을 갖고 올 것을 요청하였고, 그 책을 <펼쳐> 유스티누스가 삼위일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인정>하는,  마치 유스티누스가 개혁자들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몇몇 문장들을 손가락으로 지적하면서 증명해 보였던 것입니다.

당시 세르베는 언어에 출중한 면도 있었지만, 겸손하지 못하고 자신은 특별한 언어의 은사를 받은 것 마냥  떠들고 다녔음에도 헬라어를  겨우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헬라어 원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드러나자, 세르베는 <크게> <화를 내면서> 자신이 잘 읽지도 못하는 헬라어 원전이 아닌, 자신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 역본>을 가져 다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칼뱅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라틴어 역본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 누구도 그 책을 번역하지 않았거든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결국 세르베는 그 책을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음에도, 마치 유스티누스의 책에 매우 익숙한 학자인 것처럼 큰 소리만 쳤던 것이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책을 갖고 오라고 한 행동은 오늘날 말로 <사료>를 근거로 토론하겠다는 것입니다. 저의 두 번에 걸쳐 올린 반박한 글들은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제가 읽은 책을 근거로 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글입니다.

왜, 신성남 집사에게서 세르베가 보이는 이유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5. 엉터리 자료를 근거로 한 그의 글 '정통', 사역은 ‘밥통’을 비판

이제 신성남 집사님이 올리신 “신학은 '정통', 사역은 '밥통' '칼뱅'의 제네바 학살과 종교개혁사의 그늘”에 대하여 이것이 얼마나 부정직하고, 불명예스러운 글인지를 밝히려고 합니다.

 

(1) 칼뱅주의자들은 국정 교과서를 고집하는 현 정부와 같다???

신 집사님은 <국정교과서>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이렇게 글을 시작합니다.

“국사 교과서를 가지고 <장난>치려는 자들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 <교회>도 그런 <발칙한 꼴>을 보지 않으려면 종교개혁사를 <조금>이라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말고 <진상>을 <사실대로> 알리고 <바르게> 가르쳐야 옳다고 본다."

마치 자신은 역사 전문가이며, 칼뱅주의자들은 역사를 숨기고 왜곡하고 미화하려는 <현 정부>처럼 그는 아주 자신만만하고 확신에 찬 글로 시작합니다. 과연 어떤 글이 계속되는지 기대해 보도록 하죠.

 

(2)  그는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그에게서 <세르베의 비열함>이 보인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신 집사님이 인용하였다는 책들은, 사실 집사님이 <본 적>도, <읽은 적>도 없으며, 남의 글을 <도둑질>한 것들로 분명한 정황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카스텔로(Sebastian Castellio, 1515-1563)'의 <글>과 나중에 이를 인용한 전기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위의 내용들은 여러 사람들이 <글의 출처>를 요구하는 댓글들이 올려지자, <슬그머니> 그의 글에 <추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제가 처음에 <출처를 추가>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저의 잘못>입니다.”라고 겸손스럽게 잘못이라는 표현까지 하셨는데, 과연 <실수>였을까요? 아뇨 아예 제시할 자료가 없었던 것입니다.

집사님은 자신의 글이 <두 저자>의 글을 읽고 인용한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완전한 빨간 거짓말>입니다. 역사 전공자도 아닌 그가, 어떻게 카스텔리옹의 글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단 말인지? 한글로 번역된 책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글을 어떻게 읽었다는 것이며, 신 집사님의 글 어디에도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문구를 제외한 카스텔리옹의 글에서 직접 인용했다는 흔적이 단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츠바이크>의 글만 읽고 인용했다는 것인데, 과연 츠바이크의 책도 읽었을까요? 단언컨데, 읽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제시한 <제목>의 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한국어로 번역된 츠바이크의 책들입니다. 그 어디에도 그가 말한, <출처: "양심의 자유(세르베투스 사건을 중심으로)" 에서 발췌>를 증명할 책 이름은 없습니다. 이는 자신이 인용했다는 책을 처음부터 갖고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읽지도 않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세르베 비열함이 보인다고 단정할 수 있지 않을런지요?

 

(3) 글 도둑질(도용)의 증거

 

댓글에서 신 집사님은 칼뱅의 학살을 증명이라도 하듯, “칼빈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자…” 라고 인용문을 적은 후에  출처: "양심의 자유(세르베투스 사건을 중심으로)" 에서 발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책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는 어떻게 이런 자료를 갖고 왔을까요? 당연히 그가 즐기는 인터넷에서 <훔쳐>왔지요.

신 집사님은 인터넷에서 떠돌아 다니는 글을 <퍼왔음>에도 마치 자신이 <실제로> 읽고 인용한 것처럼 아무런 <양심의 거림낌> 없이 출처를 올린 <비양심적>인 증거는 바로 이 사진입니다. 사진의 윗 부분은 신 집사님이 밝힌 <출처: "양심의 자유(세르베투스 사건을 중심으로)" 에서 발췌>이며,  아랫 부분은 어느 세미나의 글을 인터넷에 올려 놓은 출처인데, 두 곳의 <글자체>나 <글자 위치>나 <따옴표>나 심지어 <괄호 안에 적힌 글>의 내용까지 <모두>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제목의 책이 없음에도 이 두 자료는 어떻게 이리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일까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인터넷에서 단지 <ctrl+v> 했다는 증거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덧붙혀 아주 뻔뻔스럽고도, 저질스럽게 “칼뱅의 원전 자료는 <직접> 확인 못 했습니다. 혹시 본 내용에 오류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양심에 화인을 맞지 않고서야, 훔쳐온 글을 마치 츠바이크의 글을 읽고, 직접 인용한 것처럼, 어떻게 이런 거짓된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비양심가의 글이 과연 칼뱅의 학살을 주장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글이 될 수 있을까요?

그는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서 <칼뱅의 학살>이라고 치면,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는 글을, 마치 자신이 읽고 확인한 것처럼,이런 글을 올리고 있음에도 과연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요?

집사님은 처음부터 출처를 올리지 못한 자신의 실수라는 겸허한 변명에 그 스스로가 자신의 얼굴에 거짓이라는 똥칠을 하신 것입니다.

책 한 권 읽지 않고, 어떻게 500년 전의 역사를 인터넷 글로만 감히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정말 <무식이 용감>이라 말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런 무책임한 글들에  <1차 자료>를 갖고 반박할 아무런 가치도 없지만, 저라도 나서지 않으면 이런 주장이 훗날에는 역사적 사실 혹은 정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서술하였던 것입니다.

한쪽은 본인이 읽은 책과 1차적 사료를 근거로 서술하는데, 한쪽에는 인터넷에서 <ctrl+c, ctrl+v>로 들이대는 <무논리>를 넘어, 상대는 조총으로 싸움에 임하는데 용감무식하게 칼만들고 전쟁에 나간다는 <무댓뽀>(無鐵砲) 정신으로 논쟁에 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는 무책임하게 아닐 수도 있다는 <카더라> 통신의 대표적인 행태인 <아니면 말고…>

 

(4) 신 집사님의 유일한 학적인 출처는 오직 인터넷 ???

집사님의 글 가운데, <목회자의 학력 세탁>에서 “한 기독 매체의 기사( www.lawnchurch.com 원문보기) 에 따르면, 개신교는 약 90% 이상이 대학을 나오지 못한 저학력 목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 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런 사이트는 열어 볼 수도 없는 정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것들을 근거로 황당무계한 주장에 대하여 어느 목사님께서 이렇게 반박해 놓으셨더군요.

“검색해보니 2008년 전국 교회 수가 58,000개라고 한다. 아마 거기서 크게 변동은 없을 것 같다. 현재 감리교회 수가 6,474개, 감리교 목사 수는 11,017명.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현역 감리교 목회자들 중 4년제 대학을 안나온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 개신교 목사들 수가 10만명이라 하더라도 감리교 목사만 따져도 90%라는 수치가 나올 수는 없다. 게다가 장신, 총신, 한신, 고신, 서울신, 성공회, 침신... 4년제 신학교가 교단별로 얼마나 많은가?

사실 예수님도 대학 안나오셨는데 학력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도 맞고, 기초적인 학문 소양이 없는 비인가 신학교 출신의 목사들의 자질 문제도 심각하지만, 무슨 주장을 하건 간에 사실 <확인>은 좀 하고 써야 한다.”

 

(5) 그에게서 조찬선 목사의 모습이 !!

조찬선 목사는 <기독교 죄악사>라는 책을 통하여 <없는 죄악>도 만들어 내어 역사적 사실인냥, 거기에다 마치 자신이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짓 십자가를 매고 <기독교를 대표>하여 과거 죄악사를 밝히고 사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은 그런 악한 부류와 다른, 보다 정직하며 고결한 존재인 것처럼 부각시키고 싶었겠지만, 그의 글 자체가 천주교의 자료에서 훔쳐 온 천주교의 대변인 노릇을 하였음을 첫 번째 글을 통하여 밝혔습니다.

신성남 집사 역시, 조찬선 목사 못지 않게, 칼뱅에 대한 <자기 원한>을 <단 한권>의 책, 그것도 인터넷의 부정확한 자료를 의존하여 또 다른 소설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신 집사님은 “저는 제네바 학살이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밝혔음에도 칼뱅을 살인자로 어떻게 몰아가고 있는지, 칼뱅의 명예를 어떻게 훼손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칼뱅의 무고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독자들의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 칼뱅과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과 4년 동안 적어도 58명을 처형하고, 76명을 시외로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 중에 10명은 참수형이었고, 35명은 마녀사냥처럼 처참한 화형이었다. 그들은 "이 부패한 도시에 실질적인 도덕과 기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칠, 팔백명을 처형할 교수대가 필요하다"고까지 말했다. “

- 위의 내용은 일고의 가치가 없음을 저의 글을 통하여 밝혔기 때문에, 상식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위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맹랑한 글임을 금방 알아 차릴 것입니다.

2) “심지어 칼뱅은 "이단을 처형한다는 일은 결코 그리스교도적 사랑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신자가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 물드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목적을 위해서는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엄청난 주장이다.”

- 위의 내용은 츠바이크가 칼뱅의 글에서 인용한 것처럼 말하였지만, 츠바이크 역시 역사학자가 아니라 극작가이기에 별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혹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수 차례 읽었지만 이런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칼뱅은 이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매우 합당한 말을 했다. 아무리 이단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가르치지 않은 채> <무섭게>(위협, 혹은 고문을)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지배가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책에서 “교황체제의 압도적인 야만성은 가증스러우며, 하나님의 끔찍한 보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해 받는 이들이 준비된 변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용되기는 커녕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박해를 받는 이들은 소송의 시작부터 어떤 변호도 주어지지 않고, 어떤 논쟁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련한 자들을 고문하여 사지를 절단하며, 이들이 말을 못하도록 혀를 잘라버리고는 천천히 괴롭혀 죽였다.” 라고 자신의 책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칼뱅을 비난하는 이들은 지금 제가 펼쳐 놓은 이 책에 없는 내용이 있다고 주장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목적을 위해서는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고 하였는데, 칼뱅의 책에서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도시>를 그들의 주민들과 더불어 동일한 처벌 속에 가두신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주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 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신 13:12 이하)

슈테판 츠바이크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칼뱅>을 대입시켜 마치 칼뱅이 이런 말을 한 것처럼 조작하고 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런 악한 의도가 드러난 것으로 보아 과연 그의 글이 객관적인지를 신 집사님께 묻고 싶습니다.
 

3) “ 한 출판업자는 칼뱅을 비난했다고 해서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혀를 잘렸다. <어떤 사람>은 '예정설'을 반대하는 말을 했다고 해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게다가 '자크 그뤼에'란 사람은 단지 칼뱅의 정책을 반대하고 그를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극한 고문을 받은 후 처형되었다.”

- 예정설을 반대한 죄로 화형을 시켰다는 말이 허황된 것은, 카스텔리옹이 이런 사건들이 칼뱅의 초기 5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밝혔고, 그도 칼뱅과 함께 사역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카스텔리옹이 침묵하였다는 것은 그런 사건이 없었거나, 그런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카스텔리옹 역시 교장의 위치에 있었기에 그 역시 살인에 동조한 죄가 있습니다. 카스텔리옹의 주장에는 단 한 사람의 이름도 거명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화형이 없었던 확실한 근거가 미확인되는 <어떤 사람>을 화형할 것이 아니라 <볼섹>이라는 사람을 화형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임에도 그를 죽이지 않고 추방하였다는 것입니다.  “칼뱅과 칼뱅의 예정설을 따르는 이들을 우상숭배자”라고 비난한 죄명으로 볼섹은 시의회로 부터 추방을 당하였다는 기록은 역사가들이 기록하고 있는데, 카스텔리옹의 말하는 화형에 대해서는 그 어떤 역사 기록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 썰전에서 제가 강조하는 역사는 <사료>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방송하였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우리 아버지는 일본이 죽일려고 했던 제 1순위였다라”고 주장하지만, 역사 사료는 없고, 고작 자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전부라면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다”이었습니다. 이렇듯 칼뱅이 학살한 것이 명백한 사실인 것은 이것을 증명할 사료는 마땅히 없지만 우리 아버지 카스텔리옹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꼴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칼뱅에게 억하심정과 원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 객관성을 지닌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지나 가다가 본 사람의 증언이라도 역사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 화형이라는 공개적인 처형에 그 어떤 누구도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지어낸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4) “또한 칼뱅과 그의 종교국은 <80세 노인>과 그녀의 딸을 무참하게 처형했다. 헌데 그 유일한 사유는 자녀들에게 <유아세례> 주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 이 주장이 거짓인 것은 칼뱅이 사역할 시작할 당시 유아 세례를 거부하는 아나밥티스들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두 차례에 걸쳐 추방한 기록이 있습니다. 칼뱅의 아내 역시 아나밥티스 출신인데 그의 아내가 유아 세례를 거부하는 자들의 화형을 그냥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볼테르의 역사 서술에서도 증명하였듯이 화형이나 사형이 실제로 있었다면 그들의 이름이 거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카스텔리옹의 책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을 숨겼듯이 처형된 사람들의 이름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당시 어떤 역사 책에서도 어떤 사람이, 80세 된 노인이… 이런 식의 역사 서술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즉, 이 말은 카스텔리옹은 자신의 이름도 숨긴 채, 그의 책에서조차 <어떤 사람>이라는 막연한 역사 서술은 당시의 일반적 역사 서술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는 서술 방법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사견에 불과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떤 누가 죽었는데, 언제 죽었는지, 그 사람의 이름도, 그 사람이 죽은 날짜도 모르는 진술을 어느 누가 올바른 진술이라고 수용하겠습니까?
 

5) “특히 칼뱅 신학의 후계자로 자처하는 한국 장로교의 소위 ''개혁주의' 정통 보수 교단들인 '<합동>', '<고신>', 그리고 '<합신>' 등 대부분이 사실상의 <성직매매>인 중세적 <교회 세습>을 <노골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이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았다면 그의 심정은 어떨까. 과연 그런 <북한 공산당>식 <부자 세습>이 "성경만을 따르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개혁교회 목사들이 할 짓인가. 정말 <표리가 부동>하고 <양심머리 없는 작자>들이다.

- 정말 지나가는 개가 웃을 판입니다. 이런 표현은 신 집사님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그 많은 목사들 가운데 교회 세습을 한 목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된다고 다른 목사들까지 마치 북한 공산당인 것처럼 이렇게 매도해도 되는지요? 그래.. 일부분은 사실이니 인정하자. 그런데 감리교와 다른 교단들은 이런 세습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그의 논리라면 그런 교단은 신학도, 목회도 <모두> <밥통>이라 논할 가치도 없는 교단이라는 말인지…

 

6) “과거 칼뱅의 제네바 학살 못지않게 더욱 더 무서운 것은 현재 교인들의 영혼을 <조용히 말살>하고 있는 '유사 교회'들의 타락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 신성남 집사는 제네바의 학살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본인 스스로 말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기정 사실처럼 말하고 있는 것은, 학살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내 글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사실처럼 믿고 싶다는 <자기 고집>인 것입니다. 신 집사님 본인이 출석하시는 교회는 <영혼 말살>과 거리가 먼 교회에 출석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교회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일부의 목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야지, 왜 칼뱅과 그 후손들의 교회를 싸 잡아 매도하는지…

 

6. 그는 뒤 늦은 비리를 알리는 재방송 전문가인가?

그의 글 소재들의 많은 부분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다 알려져 있는 <교회의 비리>나 <목사들의 일탈>을 무슨 대단한 <특종 뉴스>라도 되는 듯, 늘 <뒤 늦은 방송>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개혁이 이 분에게는 <비리 폭로> 정도라 생각되는지 열심히 사명처럼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댓글을 통해 신성남 집사에게 이런 당부를 하셨습니다. “ 중요한문제는 나쁜 기독교인이 누구라는것 이러한 매체에 대고 굳이 꼬집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 다알고,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의 비아냥을 마치 새로운 개념의 <기독교인 비판>내지 새로운 글제목의 아이템인냥 , 그 아이템에 충실한 글을 써대면....참 답답해지더군요. 진정한 글은 제목과 시류흐름에 돌을 던져 파문을 보고자하는 그 심성으로 쓰는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아우름으로 바라보아야 진정한 글이 됩니다….”

댓글을 올리신 분의 지적처럼 그의 글의 많은 부분은 부정적인 내용 뿐입니다. 주 메뉴가 목사를 비판하는 일과 헌금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을 건드려야 신 집사와 처럼 교회를 부정적으로 보려는 세력들을 규합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성남 집사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래서 교회가 개혁이 되든가요? 그에게서 배울만한 종교 개혁자들이 없으니 종교 개혁자들은 어떤 자세로 개혁을 했는지 공부하라고 말할 수도 없고…

 

 

<  결 론  >

 

신 집사님의 글들 가운데  근거가 확실하지 않는 인터넷에 떠 돌아 다니는 자료를 부풀리거나 <확대 해석>한 그런 자료들을 기초하여 전부가 사실인 것처럼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파장을 일으키려는<선동가>의 대표적인 모습을 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모든 목사와 모든 교회가 비리의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오해>하며, <곡해>하도록 만드는 그런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그분이 지적하는 내용 전부가 거짓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부를 전체로 싸잡아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늘 공격의 대상인 목사님들 가운데 자신의 생애를 드려 애써 수고하는 이름 모를 수 많은 목사님들까지 포함하여 비난한다면, 과연, 그가 무슨 자격으로 그럴 수 있단 말인지… . <당신이> 한번 <목사>를 해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욕하며 자란 사람>은 욕한  <당사자를 닮는 법>이라… 진정한 개혁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비판할 뿐 아니라, 그 비판에서 <열외되는 정말 귀하고 소중한 분들>을 보호하려는 <따뜻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남을 향한 <비난의 손가락>을 이젠 <자신을 향하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신 집사와 같은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어 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 비난의 내용을 삶으로 실천하려는 자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부터 먼저 돌이키며, 나부터 정직하게 살 뿐 아니라, 나부터 헌신하면서도 어렵게 어렵게 꺼저 갈 듯 작은 신앙의 불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의 불을 꺼뜨릴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소망을 갖게 하며, 복음의 능력을 전해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성남 집사님은 자신이 올린 거짓된 글에 깊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손을 얹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개혁은 자기 자신에게서 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집사님이 아무리 핏대를 높여 소리를 외칠지라도,  그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며 회개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닮아 개혁의 길을 가겠습니까?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 가죽>에 불과한 <헛소리> 일 뿐입니다.

 

 

 

권현익목사/ GMS선교사  hdherald@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