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구촌사랑나눔 김해성 목사, 불 지른 중국 동포 용서하고 장례 도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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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들의 안식처가 불에 탔다. 10월 8일 밤 11시 30분경,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이주민 지원 NGO '지구촌사랑나눔' 건물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마는 30분 만에 진압됐지만, 1층 급식소를 전부 집어삼켰다. 쉼터에서 생활하던 이주 노동자 10명이 화상·낙상·질식 등으로 입원했고 2억 원가량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원인은 방화였다. 경찰이 CCTV를 확인한 후 범인을 찾아냈다. 지구촌사랑나눔 쉼터에 입소한 지 3일 된 중국 동포였다. 그는 1층 급식소에 불을 지른 후 화재를 피해 건물 4층에서 뛰어내리다 머리를 크게 다쳤다. 급히 구급차에 실려 가 뇌 수술을 받았지만 3일 후 사망했다.

 

  
▲ 이주민들의 안식처였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지구촌사랑나눔 건물에 화재가 났다. 10월 8일 밤 11시 30분경, 한 중국 동포의 방화로 1층 급식소가 전소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10월 23일, 고대구로병원에서 중국 동포의 장례 예배가 열렸다. 집례는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 목사가 맡았다. 김 목사는 장례 후 관을 화장터까지 옮겨 줬다. 수술비와 입원비, 장례비, 화장터 비용까지 도합 1500여만 원을 전부 지구촌사랑나눔이 지불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자신의 건물에 불을 지른 사람의 장례를 치러 준 것이다.

 

예수의 사랑을 실천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을까. 10월 24일 잿더미가 된 현장에서 김해성 목사를 만났다.

 

"처음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망연자실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을 때는 화가 솟구쳤다. 자신을 먹여 주고 입혀 준 곳에 불을 지르다니. '어디 낯짝이나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그 사람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가 수술을 받고 있어 만날 수 없었다.

원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화재가 난 뒤 사흘쯤 지나면서 마음이 찔려 왔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일곱 번씩 일흔 번도 용서하라'고 매주 침 튀겨 가며 설교했는데, 나는 왜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을까. 말씀대로 살라고 외치면서 나는 정작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 목사는 불을 지른 중국 동포를 다시 찾아갔다. 그는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김 목사는 의식을 찾지 못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을 원망했던 것을 용서해 달라고. 어서 정신을 차리고 회복하라고. 혹시나 이대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내가 당신의 장례를 책임지겠노라고. 결국 그는 깨어나지 못했고 김 목사는 그의 장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졌다.

 

  
▲ 김해성 목사는 불을 지른 중국 동포를 용서하고 장례를 책임졌다. 처음에는 그를 원망했지만, 설교한 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회개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그 중국 동포에게 용서를 빌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 번 마음이 감동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 목사의 축적된 삶이 극적인 순간 예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한 것이다. 김 목사는 20년 넘게 이주민 사역을 해 오면서 3000여 명의 장례를 도맡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유를 따지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장례를 부탁하면 무조건 무료로 장례를 치러 주었다.

 

"지금까지 장례를 부탁하는 사람을 한 번도 거절한 적 없다. 그 사람이 어디서 무슨 일을 저질렀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우리 건물에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이중 잣대가 생긴 것이다. 나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고 회개했다.

 

직원 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방화범은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두 가지로 보자고 설득했다. 불을 지른 것은 경찰이 수사하고 있으니 그쪽에 맡기고, 우리는 우리 일을 하자고 말이다. 반대하던 직원들도 동의했다.

병원에서 그 사람의 형제들을 우연히 만났다. 사정을 들으니 참 딱하더라. 그 중국 동포는 2년 전에 이혼했다. 아이 둘을 늙은 아버지의 손에 맡기고 네 달 전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오자마자 여권과 돈이 든 가방을 도둑맞고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김 목사는 그 중국 동포의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올 수 있다면 맡아 기르겠다고 형제들에게 약속했다. 김 목사의 행동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를 연상하게 한다. 사실 김 목사는 한결같은 이주민 사역으로 '이주 노동자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하지만 김 목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다. 창세기 18장과 19장에서 아브라함과 롯은 지나가던 나그네를 붙잡아 자신의 집에 들여 후하게 대접했다. 롯의 경우, 소돔 사람들이 쫓아와 나그네를 내놓으라고 할 때 자신의 두 딸을 내어 줄 테니 제발 나그네들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나그네인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지금까지 사명대로 최선을 다해 이들을 대접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가족을 내어 줄 정도로 사랑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김 목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한 일은 결코 적지 않다. 김 목사는 23년 동안 이 땅의 나그네인 이주민들을 대접하기 위해 사역하고 투쟁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13번이나 입원했고, 한 번은 구속되어 수감 생활도 했다. 지구촌사랑나눔은 현재 가리봉동에 집단 거주하는 이주민들의 식사부터 복지, 의료, 교육, 일자리 등 거의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 김 목사는 20년 넘게 이주민들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책장에는 노동과 외국인에 대한 책들이 빼곡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 목사는 이번 화재로 색안경을 끼고 이주민들을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지난해 한 중국 동포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국내에 있는 중국 동포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을 피하게 되고 바깥에도 잘 나가지 못했다. 한국인들의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때문이었다.

 

"이주민, 특히 중국 동포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언론에서도 이주 노동자들의 범죄를 크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10년 기준으로, 외국인들의 강력 범죄는 한국인들의 1/5밖에 안 된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범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 전소된 급식소는 현재 휴업 상태다. 전기와 인터넷이 끊겨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과 쉼터도 활용할 수 없게 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급식소 옆에는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화재가 난 지 보름이 지난 지금, 지구촌사랑나눔은 불타 버린 급식소뿐 아니라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과 쉼터까지 모두 휴업한 상태다. 불은 1층만 전소시키고 진압됐지만, 전기와 인터넷 등이 모두 끊겨 업무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4층 쉼터에서 생활하던 이주민 100여 명은 옆 건물 이주민 일자리 센터를 임시 거처로 삼았다.

금전 피해도 심각하다.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재산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됐다. 피해자 네 명은 아직 입원 중이다. 이들은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고 앞으로 어떤 치료를 얼마나 더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다. 모든 게 불안한 상황이지만, 김 목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얘기한다.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또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4층에 100여 명의 이주민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도시가스 배관이 있었고, 지하에는 산소 탱크도 있었다. 우리 직원이 화재를 일찍 발견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소방서에 신고했으니 망정이지, 잘못하면 대형 참사가 될 뻔했다.

사실 건물은 얼마 전 리모델링한 상태였다. 교인들이 열흘 동안 땀을 흘렸는데, 30분간의 화재로 모두 새까맣게 타 버렸다. 처음에는 교인들도 원망하고 분노했지만, 이제는 첫 마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자는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겉은 타 버렸지만 속은 새롭게 된 셈이다."

 

  
▲ 지구촌사랑나눔은 하루빨리 이주민 지원을 재개하기 위해 다음 주부터 센터 복구 공사에 들어간다. 사진은 화재 피해를 입기 전 급식소 모습. (사진 제공 지구촌사랑나눔)

지구촌사랑나눔은 부상자 치료와 센터 복구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린다. 다행히 화재 후 곳곳에서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필요한 금액이 모두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하루빨리 이주민 지원을 재개하기 위해 다음 주부터는 센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