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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 예배가 성경적인가?

 

                                                                                                                     이인규

 

미국의 마이클 비클이 대표로 있는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는 24/7 예배를 슬로건으로 사용한다. 24시간, 7일, 365일 동안 쉬지 않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인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IHOP-Korea를 비롯하여 KHOP(Korea), AHOP(Asia), GHOP(Global), JHOP(Justice)등의 유사 명칭을 모방하는 단체들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단체외에도 교회와 심지어 기도원들까지 포함하여 수많은 단체들이 24/7 예배를 표방하는 곳이 상당히 많다.

물론 24시간, 7일, 365일 찬양과 기도를 드린다고 하여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용어와 사상에 담겨져 있는 개념이 비성경적이며, 그 명칭을 사용하는 단체들은 거의 대부분이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라는 것이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신사도운동과 유사단체들의 뿌리와 중요교리

 

우리가 ‘신사도운동’이라고 하면 넘어지고 쓰러지며 금가루나 금이빨과 같은 현상적인 집회를 하는 것으로만 알든지, 혹은 피터 와그너와 관련된 단체만을 신사도운동으로 국한하여 말하는 것으로 아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그 유사단체와 그들의 사상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신사도운동은 하나의 Movement를 말하므로 어느 특정한 교회나 교단, 단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과 교리를 지지하는 광역적인 개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느 단체는 신사도운동의 현상적인 집회만 모방하는 곳이 있지만, 어느 단체는 그런 현상적인 집회가 전혀 없지만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교리와 사상을 그대로 따르는 곳도 있다. 또는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교리와 사상을 약간 수정하여 달리 가르치는 곳도 있는 것이다.

 

신사도운동이라는 개념의 유래는 1930년경에 시작된 늦은비운동(읠리엄 브랜넘), 캔서스예언그룹(밥 존스, 폴 케인, 마이클 비클), 빈야드운동(존 윔버), 토론토브레싱(존 아놋), 백투예루살렘과 영적도해그룹(신디제이콥스, 조지 오티스, 존 도우슨, 루이스 부쉬)과 신사도연맹(피터 와그너)을 모두 포함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 특히 마이클 비클은 캔서스예언그룹(KCF)과 빈야드(포도원교회)를 거쳐 IHOP(국제기도의 집)으로 계속 변화했던 장본인이며,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과 동일한 뿌리를 갖는다. 다시 말하여 IHOP은 유사 신사도운동이다.

 

특히 브랜넘의 ‘늦은비운동’은 현재 신사도운동의 사상과 동일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임파테이션,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 예언과 계시, 기적과 표적을 강조하는 현상적인 집회등은 모두 늦은비운동에서 가르치던 내용이었다. 특히 브랜넘은 자신을 계시록의 천사라고 주장하였으며, 하와와 사탄이 섹스를 하여 가인을 낳았다는 통일교와 같은 이단적인 교리도 가르쳤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1965년 성탄절을 앞두고 운전을 하다가 정면으로 차와 충돌하여 사망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늦은비운동이 와해되어졌다.

그 후 늦은비 운동에서 사역하던 폴 케인과 현재 큰믿음교회의 변승우목사가 영적아버지라고 부르는 밥 존스가 마이클 비클을 만나면서 함께 예언과 계시를 하는 캔서스예언그룹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캔서스예언그룹에서 7년동안 사역하던 어니 그루엔이라는 사람이 그들의 예언이 모두 거짓과 조작이었다는 폭로를 하므로서 캔서스예언그룹도 분열되고 만다.

그 후에 존 윔버가 피터 와그너를 만나게 되며 빈야드운동이 시작되었고, 부흥을 이루게 되자, 마이클 비클은 포도원교회(빈야드는 포도원이라는 뜻)로 명칭을 바꾸게 되며, 얼마 후 빈야드가 쇠퇴하게 되자, 다시 IHOP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한편 피터 와그너는 2차로잔회의에서 지역귀신에 대해서 발표한 영적도해 그룹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사상은 지역마다 귀신이 있어서 그들을 대적하여 사단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야 한다는 소위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는 곳이며, 그들과 함께 신사도운동연맹을 발족시키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성행하면 연합하고, 퇴락하면 흩어지고, 비판을 받으면 다른 명칭으로 변모하는 사람들로서 거짓 기적과 표적, 무당과 같은 예언과 계시를 부흥의 수단과 방법으로 이용하는 자들이다. 신사도운동과 이 유사단체들의 교리적 특징은 다음과 같으며, 필자는 이들을 이단종합백화점이라고 부른다

 

1) 오중직분과 은사(사도와 선지자)

2) 기적과 표적의 현상 집회와 영적치유, 내적치유 집회

3) 예언과 계시

4) 도미니온(일곱산, 통치신학, 킹덤나우, 트렌스포메이션)

5) 개방신학(열린신학)

6) 영적도해(이원론적 지역귀신, 백투예루살렘)

7) 24/7예배(다윗의 장막)

8) 종말론적 성취(대추수, 오순절 성취, 신부운동, 요엘의 군대등)

9) 임파테이션(기름부음, 성령과 은사의 전이)

10)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

11) 중보기도(중보자와 예언기도, 대적기도)

12) 요엘서, 다니엘서와 이사야, 계시록등의 극단적세대주의적 성경해석

13) 정통기독교에 대한 욕설과 비난(종교의 영, 사탄의 개)

 

우리나라에서는 신사도운동에 대해서 고신(2007년)과 합신(2009년)에서 이단성/교류금지로 공식 발표되었으며, 고신에서는 2011년에 별도로 IHOP까지를 함께 규정한 바 있으며, 현재 많은 교단에서 조사를 하고 있으며, 그 뿌리가 너무 깊고 너무 넓게 퍼져있지만 반드시 밝혀야만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선교단체들과 대형교회들이 이 운동을 지지하고 있으며 신사도운동과 IHOP등의 인사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의 여러 가지 교리와 주장 중에서 가장 먼저 이들의 외형적인 예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24/7 예배에 대해서 살펴보자.

 

2. 24/7 예배의 문제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24시간 찬양과 기도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이 개념은 잘못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감성적으로 예민한 청년들을 전자악기의 찬양과 같은 방법을 통하여 미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점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으며, 이것을 상세하게 살펴보자.

 

(1) 하프와 보울 사상

이들이 주장하는 ‘하프와 보울’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어떤 상태”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즉 하프는 찬양을 상징하고 보울은 기도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계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은 계5:8의 거문고가 하프(Harp)이고 금대접(Bowl)은 기도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기도는 금대접이 아니라 그 대접에 담겨져 있는 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대접(Bowl)은 무엇인가를 담는 용도 외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16장의 “하나님의 진노를 쏟는 대접”도 동일한 ‘Bowl’ 이기 때문이다. IHOP에서 Bowl 이라는 단어를 어떤 특별한 임재상태의 개념에서 기도로 본다면 계16장의 진노의 대접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가? 이와 같이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래 이단단체들의 상용수법이다.

본문은 “하프와 보울”이라는 단어가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과 함께, 예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유일한 중보자임을 뜻하는 내용이다. 즉 하프와 보울이라는 단어가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며, 이들은 이렇게 성경을 엉터리로 인용하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이 마치 성경적이라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2) 다윗의 장막

또한 24/7 기도라는 용어가 ‘다윗의 장막’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들은 다윗도 24시간/7일 동안 찬양과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을 하면서 우리도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24/7 동안 드리는 예배와 찬양에 임재하신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24시간/7일/365일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으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기도에 시간 제한이 있는가? 몇분을 기도하면 안받아주시고, 24시간/1주일/365일을 기도하여야만 받아주시는가?

과연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기도 외에 또다른 조건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기도를 받아 주시는가? 예배를 끊임없이 드려야만 하고, 일렉트릭 사운드의 기타와 드럼으로 찬양을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그 기도를 받아주는가? 고사리와 같은 손으로 어린아이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외면하시는가?

 

IHOP이 주장하는 것은 소위 “다윗의 장막의 회복”’이다.

다윗의 장막에 대해서 그들이 특별히 인용하는 아모스9:11-12를 살펴보고, 그 구절을 인용한 사도행전15:16-17을 살펴보자.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항상 전체적인 내용이 아닌 부분적인 내용뿐이며, 성경이 말하는 내용과 전혀 다른 부분적인 해석일 뿐이다.

 

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행 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과연 본문이 종말적으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실제로 회복된다는 뜻인지 살펴보자.

사도행전 15장 본문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유대인들 중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몇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그들은 기독교인이면서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오늘날과 같이 믿음 외에도 율법적 행함이 필요하다고 하는 혼합적 율법주의자들이다.

 

행 15:1-2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를 포함한 몇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질문을 하기로 하여 보낸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예루살렘공의회는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다.

 

행 15:10-11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그리고 결론적으로 야고보가 정리를 한 것이 바로 성경본문이다

 

행 15:15-21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예수의 동생이자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로 알려진 야고보는 아모스 구약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었는데, 이 구절에서 “다윗의 장막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 것이다.

즉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며 더 이상 구약의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장막을 다시 회복하여 율법을 지키자는 뜻과 전혀 반대의 뜻이다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 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라는 최소한 율법적인 규정만을 지키라고 전하는 이유는 바로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그 글(율법)을 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4가지의 규정만을 지키라고 전달하는 이유는 두가지인 것이다.

 

(1) 이방인들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자를 괴롭히지 않기 위하여

(2)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유대인들이 있기 때문에

 

즉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를 위하여 최소한의 규정 4가지를 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다시 살펴보자

 

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행 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아모스는 ‘그 날’(In that day)이라고 기록하였으나 누가는 야고보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이후에’(After this)라고 본문을 바꾸었다. 왜 야고보는 구약본문을 바꾸었을까?

또 "옛적과 같이 세우고"는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로 바뀐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즉 야고보는 아모스의 예언이 신약에서 이미 성취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율법의 행위로 얻는 구원은 예수를 믿는 은혜로 이미 바뀌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야고보는 허물어진 다윗 왕국을 다시 세우고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낸다는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하여, 유대인의 율법주의의 배타적 구원관이 무너졌으며,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다시 세워진 믿음과 은혜의 구원관으로 전환됨을 강조하기 위하여 본문을 인용한 것이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이후에 유대인들 중에서 일부 남는 자롤 포함하여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이 기업을 얻게 되어진다는 것이며, 율법론적인 구원관이 무너지게 되며, 은혜와 믿음으로 얻는 구원관으로 회복되어진다는 것이다.

구약 아모스선지자를 통한 예언이 이 날에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즉 신사도운동에서 ‘다윗의 장막’을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여 다시 종말론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오류이며,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약에 구약적인 다윗의 장막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본문을 인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자는 이상한 의미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3) 신약시대에 다윗의 장막이 회복되어야 하는가?

신약성경은 ‘장막’이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구약의 장막은 Tent for meeting God (하나님을 만나는 회막)이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제사 당사자를 위하여 대신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이었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가 크고 온전한 장막이 되심에 따라 옛 장막은 찢어지고, 신약에서 장막은 곧 사람의 몸을 뜻한다. 그 곳이 바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이다.

 

고후 5:1-4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벧후 1:13-14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구약에서는 장막을 그림자이며 예표적인 의미로서 “회막”(Tent)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그 장막의 실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짓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 되신다.

 

히 9: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그러나 천국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이므로 별도의 장막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주 하나님과 예수가 계신 곳이 곧 성전이기 때문이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

 

그리고 계시록에서 장막이 언급되는데, 계시록의 장막은 구약에서 언급되는 ‘다윗의 장막’이 아니라 ‘하나님의 장막’이며 곧 천국이 장막이 되는 것이다.

 

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아직도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다윗의 장막은 더 크고 온전하신 예수라는 장막이 오신 이후에 이미 무너졌고, 그 장막은 예수님의 도래와 함께 다시 세워졌으며,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구약의 예배와 찬양이 다시 회복되어야할 이유도 없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다윗의 장막이 다시 회복되어야 하는가?

 

(4) 구약의 성전예배가 다시 회복되어져야만 하는가?

구약에서의 예배는 장막, 성전과 같은 장소적인 예배였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배는 구약의 예배와 전혀 달라지는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아 오신다”는 것이다. 예배란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worship)라고 한다. 그 정확한 개념은 “존경을 나타내다” 혹은 “최상의 가치를 돌리다”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존경을 나타내는 경건과 의식을 뜻하며, 최상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수가라는 곳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다음과 같은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4:20)

 

사마리아사람들은 예배의 장소를 그리심산에서 드려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예배를 드려야하는 것으로 알았으므로, 여인은 예수님께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를 얼핏 읽어보면, 여인과 예수님이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여인은 예수님께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예배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신령과 진정’이란 말은 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는 뜻이다. 그러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것이다. 즉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내면적인 마음의 중심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다.

 

과연 IHOP과 신사도운동의 단체들이 현란한 일렉트릭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면 다윗의 장막이 회복되는가? 24시간/365일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그 기도를 받으시는가? 구약의 성전예배를 다시 회복하여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가? 우리가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고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다윗의 장막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5) 24/7 찬양과 기도

24/7 찬양과 기도를 주장하는 신사도운동 단체들은 다윗이 24/7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성경에서 그러한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필자는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모두 찾아 보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었다.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대하 30:21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칠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위 성경본문이 24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 찬양하였다는 구절인가?

 

[공동번역] 예루살렘에 있던 온 이스라엘 백성이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며 칠 일간 무교절을

지키는데, 레위인과 사제들은 날마다 온 힘을 다 내어 야훼께 찬양을 불러 올렸다.

[현대인의성경]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룩을 넣지 않고 빵을 만들어 먹는 명절인 무교절을 7일 동안 기쁜 마음으로 지켰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악기를 힘차게 연주하면서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성경본문은 무교절 7일 동안에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무교절 7일 동안 날마다 찬양하였다는 것은 맞지만, 24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하여 찬양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상 6:31-32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

 

그들이 주장하는 글을 읽으니 성가대가 회막 앞에서 24시간을 정해 놓고 순서대로 찬송을 하였다고 해석을 하고 있는데, 웃음을 감추지 못하겠다. 그들은 계속하여 찬송을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한시적으로 찬송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더욱이 24시간 찬송했다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행된 것이다. 더욱이 “반열대로”라는 것은 24시간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년 동안에 24번의 순서로 교대하였다는 것이다

 

[공동번역] 그들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야훼의 성전을 지을 때까지 '만남의 장막' 곧 성막앞에서 성가대원으로서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현대인의성경] 그들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울 때까지 거기서 일정한 규정에 따라 그 일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또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레위지파 성가대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24시간 주야로 찬송만 하였다고 주장을 한다

 

대상 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위 성경구절도 24시간을 계속 찬송했다는 뜻이 아니다. 맡은 일에 전담하기 위해 항상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며 다른 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다.

 

[공동번역] 이상이 레위 지파 각 가문의 어른들 가운데 합창하는 임무를 띤 사람이다. 그들은 주야로 자기 맡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당번이 아닐 때에도 언제나 별관에 있었다.

[현대인의성경] 그리고 성가대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레위 집안의 족장들로서 예루살렘의 성전 구내에 살면서 밤낮 자기들의 직분에만 몰두하고 다른 일은 일체 하지 않았다.

 

또 다음 구절은 악기 연주자들이 24시간 연주를 했다는 뜻인가?

 

대상 16:4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대상 16:5 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대상 16:6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과연 16:6에서 “항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24시간 쉬지않고 하나님의 언약궤에서 나팔을 불렀다는 뜻일까?

 

[공동번역]

대상 16:4 다윗은 레위인 가운데 야훼의 궤를 모시고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감사 찬양을 드리며 예식을 집행할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임명하였다.

대상 16:5 책임자 아삽, 그 밑에 즈가리야, 우찌엘, 스미라못, 여히엘, 마띠디야, 엘리압, 브나야, 오베데돔, 여이엘. 아삽이 바라를 치면, 이들은 수금을 타며 소구를 쳤다.

대상 16:6 그리고 정해진 때마다 하느님의 계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사람은 사제 브나야와 야하지엘이었다.

 

[현대인의성경]

대상 16:4 다윗은 일부 레위 사람들을 뽑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노래하고 찬양하며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도록 하였다.

대상 16:5 이 직무를 맡은 책임자는 제금을 치는 아삽이었으며 그를 돕는 자들은 스가랴, 여이엘, 스미라못, 여히엘, 맛디디아, 엘리압, 브나야, 오벧-에돔, 그리고 또 다른 여이엘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비파와 수금을 타는 자들이었다.

대상 16:6 또 브나야와 야하시엘 두 제사장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정규적으로 나팔을 불었다.

 

더욱이 24반열에 대해서 신사도운동과 IHOP은 24시간 교대로 사역을 하였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24반열이라는 것은 일주일씩 사역을 담당하였던 제도이며, 일년에 2번씩 돌아오는 순서를 뜻한다. 구약의 성전에서는 제사장을 24반열로 정하여 일년에 두 번씩 차례가 오도록 하였던 것이다. 제사장과 성가대와 파수꾼들은 모두 24 반열의 순서를 정하였다고 성경은 말한다. 주석적인 증거를 보자.

 

(호크마 주석)

[대상24:19] 이와 같은 반차로...수종들었더라 : 24반열로 조직된 제사장들은 각기 순번을 좇아한 주일씩 돌아가며 봉사하였다(왕하 11:9). 한편 이러한 제사장의 24반차 제도는 신약 시대에까지 지속되었는데(눅 1:8) A.D.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더불어 끝나고 말았다.

 

(아가페성경사전 1513쪽)

- 제사장의 봉사는 그들의 반차에 따라 규정되었다. 대상24:7-18은 비록 다윗이 다스리는 기간 동안의 반차의 근원이 의문시 되어 왔지만, 24 반차를 열거하고 았다. 이 배열을 보면 각 반차들이 매년 2주간 동안 성전을 통해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음을 알 수 있다.

 

(톰슨주석성경)

23:1-26:32 다윗은 임종을 앞두고 성전에서 봉사할 레위사람들의 책임을 체계적으로 분담시킴으로서 성전 제사 제도를 더욱 탄탄하게 정비하였다. 원래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자들로서 성막 봉사등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 내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도록 임명되었다. 이러한 체계적 직무 분담은 성전 업무의 능률화는 물론 효과적 인원관리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즉 24반차 제도를 통해 대부분의 레위인들은 일년에 두 주씩 봉사하게 되었으며 남는 기간 동안에는 율법 연구나 기타 여러 직무에 두루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이다.

25:1-31 성가대의 조직 : 다윗은 성전에서 봉사할 제사장들과 그들을 돕는 레위인들의 순서를 조직해 놓고 나서, 이제 성전에서 여호와를 찬양할 성가대를 24 반열로 조직한다

 

오히려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자손에서 선출된 성가대는 24시간이 아니라, 새벽과 저녁에 두 번 찬송을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대상 23:27 다윗의 유언대로 레위 자손이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되었으니

대상 23:28 그 직분은 아론의 자손에게 수종들어 여호와의 전과 뜰과 골방에서 섬기고 또 모든 성물을 정결케 하는 일 곧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과

대상 23:29 또 진설병과 고운 가루의 소제물 곧 무교전병이나 남비에 지지는 것이나 반죽하는 것이나 또 모든 저울과 자를 맡고

대상 23:30 새벽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축사하며 찬송하며

대상 23:31 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 명하신 규례의 정한 수효대로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

대상 23:32 또 회막의 직무와 성소의 직무와 그 형제 아론 자손의 직무를 지켜 여호와의 전에서 수종드는 것이더라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은 모두 문자적이거나 부분적이며, 자신들의 주장을 성경적으로 짜맞추기 위한 인용일 뿐이다.

 

눅 2:36-37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주야로, 밤낮으로”라는 단어가 24시간 쉬지않고 계속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그렇다면 안나라는 선지자는 84년을 계속 금식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되는가? “주야로, 밤낮으로”라는 단어는 하나의 관용구로서 전념하였다는 강조적인 의미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위 본문은 S 단체에서 인용하는 성경구절이기도 한데, 84년을 계속 금식하고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가?

 

혹시 “쉬지 않고 기도하라”(살전5:17)는 성경구절에 대해서 24시간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밥도 먹지 말고. 계속 기도만 하라고 해석을 하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