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기초한 칭의

 

                                                                            박영돈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하나님의 의는 구원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의 행위일 뿐 아니라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의 성격도 띤다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했다 (3:24). 그 선물은 바로 칭의의 선물이다그 선물이 주어질 수 있는 근거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이다(3:24). 하나님이 불의한 자들을 의롭다고 할 법적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제공한 것이다.

즉 당신의 아들을 인간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담당할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것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3:25).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진노의 대상이 될 희생 제물로 내어 주심으로써 그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을 뜻한다.

따라서 로마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의는 그 의미가 상당히 포괄적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심판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객관적인 행위를 뜻하는 동시에 그 사건이 믿는 자에게 주관적으로 미치는 칭의의 선물을 함의하며그로 인해 드러나는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3:26).

 

악인을 의롭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혐오하신다고 했는데 바로 그 일을 행하는 자신을 의롭다고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희생하신 것이다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의 칭의뿐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칭의의 법적 근거인 것이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심판과 구원거룩과 자비가 완벽하게 결합된 의로움의 탁월한 결정체가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과 소망대로 고난의 종이며 속죄단에 드려질 어린양으로 오셔서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형벌을 받기 위해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셨다칭의에 대한 바울의 기독론적 선언은 이런 구약적 배경에 뿌리내리고 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바울은 칭의를 십자가 뿐 아니라 부활에 근거해서 이해하였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린 속죄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어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칭의의 확증이다그래서 바울은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전15:17).

 

활은 우리의 칭의뿐 아니라 예수의 칭의에 대한 확증이다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그가 죄인이 아니라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셨다 (1:4; 딤전3:16).

십자가는 부활을 전제하며 부활은 십자가의 완성이다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로 결합되어 칭의의 온전한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따라서 칭의의 근거는 우리 안에 전혀 없고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한 의로움에 있다. 불경건한 자가 의롭다 함을 얻는 근거는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 부여되는 인간 밖의 의로움이기에 신자는 자랑할 것이 없다 (3:27).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기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논지를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확증하며 더욱 발전시킨다. 3:37의 자랑할 것이 없다는 선언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기에 육체를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씀이 평행을 이룬다 (4:2). 일하는 것은 자랑의 근거가 될 수 있으나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것은 모든 육체의 자랑을 배제한다바울은 계속 경건치 않은 자일을 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신다는 말을 통해 칭의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경건이나 우리가 일한 것에 전혀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을 각인시킨다 (4:4-8).

 

믿음마저도 의롭다 함을 얻는 근거가 될 수 없다만약 바울이 칭의의 근거로서 믿음을 말했다면 믿음이 또 하나의 행함보상받아야 할 일이나 공로가 되며 그가 힘써 강조한 내용과 완전히 상충되는 주장을 한 셈이 된다믿음의 가치는 믿음 자체가 아니라 오직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데 있다믿음은 행위와는 대조적으로 칭의의 근거가 전적으로 우리 밖에 있는 하나님의 행하심즉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곧 믿음의 유일한 가치와 효력은 이것이다경건치 않은 자자신 안에 의롭다 함을 받을 근거가 전혀 없는 죄인들에게 완전한 칭의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고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따라서 믿음은 우리 밖에 있는 의로움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의로움을 붙잡는 빈손이며그 의로움이 법적으로 우리에게 인정되는 방편이다믿음이라는 채널을 통해 우리 안에 전혀 없고 우리의 행위나 경건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의로움이 우리 것으로 인정된다비록 바울의 가르침에서 전가라는 명시적 언급은 없을지라도 그 논리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다는 언급이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 죄가 예수께 돌려져 그의 죄가 되었다는 말씀을 (고후5:21) 우리 죄가 그리스도에게 옮겨졌다 혹은 전가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다우리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는 없을 것이다죄의 전가라는 명시적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전가를 인정하면서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된다는 생각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원천 봉쇄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모순처럼 보인다.고린도후서 5:21에서 우리 죄가 예수께 전가되었다는 것과 역으로 그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사상이 평생을 이룬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교리적 비약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해석학적 귀결이다이미 살펴보았듯이바울서신에 전가의 의미를 전달하는 본문들(4:25; 5:12-21; 고전1:30; 고후5:21;2:20-21; 3:8-9)과 다양한 이미지들이 존재함에도 이런 의미를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것은 올바른 성경 해석이 아니다전가 개념을 도외시하면 칭의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앞에서 분석했듯이전가 개념에 대해 라이트가 특별한 반감을 보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개인의 칭의그리고 율법과의 관계에 대한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라이트 (Tom Wright)는 의의 전가보다 참여로 인한 칭의를 고집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각 개인에게 머무는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고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는 의로움으로 칭의의 법적 근거를 확보한다는 점을 부각시키지 못한다그러나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는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어 처리된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더 적극적인 의로움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라이트의 비난과는 반대로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속죄로 말미암아 죄인들에게 인정되는 의로움의 실체에 확고히 뿌리내리지 않은 칭의이야말로 법적 허구가 되는 것이다.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IVP]